(라헬이 갔었고 갈야할 길)
여로(旅路)
칠십 넘은 노모는 막내딸 결혼식 전날 밤, 딸의 손을 꼭 잡고 “남자는 화장실에서도 돈이 필요한 인사란다,” 라며 당부를 한다.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끼니 걱정은 안 할 테니 남편 잘 섬기며 순종하고 살아야 한다고. 이어 가늠키 어려운 의미의 눈물이 자글자글한 눈가 주름사이로 찔끔찔끔 흐른다. 그렇지 않아도 엄마를 철석 같이 믿고 사는 천방지축 막내딸이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엄마가 만들어놓은 탄탄한 그녀의 길은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리라 믿고 있었다. 그 길은 걸어가기만 하면 되는 길이었기에. 때문에 주저 없이 결혼이라는 환상의 세계로 한 아름 꿈을 안고 발을 담군다. 언니들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면서 그녀가 우주라고 믿었던 그 남자와. (프롤로그)
엄마의 속 고쟁이 안쪽에는 비밀창고가 있었다. 그곳엔 오로지 나를 위한 고무줄로 돌돌 말은 몇 꾸러미의 지폐가 퍼내도 또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들어있다. 그 샘물은 나만 알고 있다고 착각했는데,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비밀이었다. 그것을 하나씩 내게 쥐어줄 때마다 엄마는 자책감에서 벗어나는 심정이었을까. 엄마의 가슴속에는 커다란 혹이 들어앉은 느낌이었을 테다. 고령의 나이에 뱃속에 들일 때부터 부끄럽고 부담스러웠던 존재인 내가.
내 나이 스물에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다른 자식들은 모두 결혼하고 엄마 옆에 동그마니 있는 나의 존재는 일자무식의 그녀에겐 남편이고 동무고 신 같은 존재였으리라.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더욱 심한 딸 바보가 되어버린 엄마는 나와 그림자처럼 늘 함께 같은 길을 걸었으니까.
살아계신 동안 엄마의 눈물을 세 번 봤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처음 보았고, 내 결혼식 전날 그리고 남편의 직장발령으로 내가 지방으로 이사를 갈 때였다. 우리를 태운 차가 떠날 때 아파트 주차장에서 털썩 주저앉아 땅을 짚고 울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백밀러로 본 것이 거의 마지막이었으니.
그 후 엄마는 시름시름 편찮으셨고 이 년 만에 세상을 떠나셨다. 어쩌다 홀로 지킨 임종에 놀란 나는, 슬퍼할 겨를도 없이 둘째아이를 조산했고 장례식조차 참석치 못했으니. 나는 끝까지 엄마가슴에 아픈 손가락으로만 남겨져 있는 존재였다. 그렇게 막내딸을 가슴에 앉고 엄마의 여로는 끝났다. 셋째 언니는 ‘네 엄마는 너 때문에 돌아 가셨어’라고 지금도 나를 격하게 미워한다.
삶을 여로라고 했던가. 그런 의미에서 삶이란 여행이자 그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가는 것일 테다. 여행에는 수많은 길들이 있다. 그러나 엄마의 부재로 아름답고 게다가 견고한 성이었던 나의 길은 몇 갈래의 희뿌연 길이 되어 앞을 가늠키 어려웠다. 배움은 짧았지만 세상이치에 해박했던 엄마. 무언의 작은거인이 떠난 후 남편의 사치는 극에 달했고 생활은 엉망진창이 됐다. 결국 상속받은 것을 거의 탕진한 것을 안 언니에게 떠밀리다시피 비행기를 타고 미국으로 내쳐져야만 했으니까. 허나, 그때는 그 길만이 나를 구원해준다고 믿었다. 태평양을 건너며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이를 악물었다. 엄마가 안 계신 한국엔 올 일이 전무했으니까.
주책스러울 정도로 감정이 풍부한 나. 남들은 그냥 넘어가는 일에도 툭하면 눈물을 터트린다. 정글 같은 미국생활에서 한 줄 메모의 습관과 아들들이 없었다면 나는 길을 잃고 방황했을 것이다. 유난스런 나의 감정이라는 것은 정글 속에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었기에. 어느 때는 내가 왜 이 길에 서있는지 왜 걷고 있는지 생각조차 하기 싫을 때도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햇살은 따사롭고 그 햇살에 내가 뿌린 눈물이 찬란하게 빛나기도 했으니. 그 빛이 나의 길을 밝혀주었기에 지금 내가 이 길에 서 있음이다.
과거의 길은 이미 닫혔다. 미래는 나를 어느 길로 인도 하려는지. 기한도 알 수 없고 기약도 할 수 없으니 더욱 소중한 길이리라. 이제껏 내가 걸어온 길은 애써 꿈을 쫒는 과정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벅차고 힘이 들었을까. 엄마가 돌아가신 후 40년은 내겐 의지 할 곳 없는 외로운 여로였고 시간이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믿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 곱씹어본다. 그 것이 곧 내가 가야할 길이니까.
인생은 요리와 많이 닮았다. 준비할 것도 많고 다양하다. 쉽기도 하고 어렵기도, 그리고 달고 맵고 쓰다. 그리고 맛있어서 웃음을 주기도하며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게도 한다. 어떤 요리를 만들지는 요리가가 결정하듯 어떤 일생을 어찌 살지는 내가 결정해야 옳다. 과연 지금 만들고 있는 나의 남은 인생은 어떤 맛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미 닫힌 과거에 연연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남은 인생을 원망으로 낭비하고 싶지는 않기에. 자랑할 것 없는 인생이지만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기적이고 나의 길이다. 수많은 생각들이 나를 에워싸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계속 흐른다. 물론 나는 그 시간 안에서 천천히 그리고 묵묵히 길을 걷는다.
살아 있어서 아름다운 것들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나는 아직도 사랑을 꿈꾸고 있다. 젊어서는 사랑하기 위해 산다지만 나이 들어서는 살기위해 사랑한다는 말에 힘을 얻기 때문일 테다.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보물들. 쌓인 습작 노트와 글들이 나를 보고 웃어준다. 알고는 있었지만 미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하기에.
별처럼 아름답고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 남이 흉내 낼 수 없는 나만의 언어로 된 글을. 맑은 시냇물 같은 글을 써서 삶의 고백을 완성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또한 헛헛함으로 마음이 힘든 이들에게 사랑 담뿍 담은 따뜻한 한 끼를 먹이길 소망한다.
맞다. 나에게는 물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글과 따뜻한 밥을 먹이기 위한 일, 이 길이 아직 내가 이 세상에서 할 일임이 틀림없을 테다. 내 남은 여로에 다시 설렘과 기대를 포갠다. 그 일들과 함께 할 수 있길 희망하는 나에게 응원의 큰 박수를 보내면서. 사랑하는 가족과 소중한 친구들이 있기에 나의 길은 빛으로 그득할 테다. 그들을 더욱더 사랑하며 어깨동무하는 인생길은 살아볼만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