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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가족

by 강 라헬

위대한 가족


본가는 언제나 음식이 흘러넘쳤다. 그도 그럴 것이 종갓집이기도 했거니와 장사를 크게하셨던 친정은 물건을 구입하러 오는 모든 상인에게 국밥을 대접하는 것이 선대로부터 내려온 내력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부엌은 언제나 분주했고 사시사철 뒤꼍의 무쇠가마솥 속에서 끓고 있는 곰국도 분주하다. 먹는 이가 상인들 뿐만은 아니다. 동네의 아낙들은 무엇이든 돕는다는 이유로 식전부터 우리 집으로 온다. 그네들의 먹거리도 우리집 부엌에 있었으니까.


나는 그것이 싫지 않았다. 대가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집안에 사람이 많은 것이 좋았다. 윗집인 가게에는 늘 상인들로 붐볐고 아랫집인 살림집도 먹는 사람들로 언제나 그득했으니까. 나는 친할머니처럼 뒷짐을 지고 할머니 뒤를 따라 마당을 오고가는 것이 그렇게도 좋았다.


하루 한 끼, 조반은 반드시 아랫집에서 모두 모여 먹는다. 엄청난 효자이신 아버지는 할머니와 겸상을 하시면서 수발을 드신다. 그 상에는 남자들만 앉을 수 있고 여자들은 문지방 너머 대청마루에서 조반을 먹는데 그릇을 스치는 수저소리와 조심스레 음식을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 열 명이 넘는 사람의 흔적은 없다.


아침에 한번 아드님의 수발을 받으며 장남의 얼굴을 보는 그 시간을 할머니는 귀히 여기셨다. 다음날 조반상에서나 볼 수 있는 귀한 아드님을 그윽한 눈으로 보시는 할머니가 그립다. 식사 후 곰방대에 불은 붙여 할머니 입에 물려드린 아버지는 “ 어머니, 다녀오겠습니다.”인사를 드리고 윗집으로 가신다.


할머니의 상은 늘 생일상의 차림새였고 엄마는 똑같은 찬을 올리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럼에도 가끔 엄마를 못 마땅해 하시는 할머니가 미웠다. 왜냐하면 할머니가 상을 물리시고나면 바로 윗집으로 가서 통금시간까지 장사를 하셔야하는 엄마가 불쌍해서였으리라. 또한 작은어머니들만 칭찬 하시고 내 엄마를 귀히 여기지 않으시는 할머니가 무척이나 싫었으니까.


“일을 할 줄 알아야 남도 부릴 수 있다“라고 엄마는 늘 말씀을 하셨다. 특히 먹거리에 진심인 엄마는 밥알 한 톨도 소중히 여기셨기에 밥상위에는 물론 밥그릇 안에 밥알이나 음식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으면 벌을 서야했다. 밥상위에서의 예절을 중하게 여기시는 엄마를 비롯해서 친가의 사람들은 먹는데 또한 진심이셨다. ‘복스럽고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는 아버지가 만드신 가훈이다.


‘고기도 먹을 줄 아는 사람이 잘 먹는다’라는 말이 있다. 허나 우리 집은 고기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먹거리를 잘 먹고 감사하면서 먹는다. 우리 집의 밥그릇의 밥은 언제나 고봉밥이었고 국 대접 또한 지금의 냉면그릇의 크기인 것을 기억한다. 나는 어렸을 때에도 이웃의 아이들보다 많이 먹어야 했다. 이유는 잔병치레가 많기도 했지만 현기증 때문인지 얼굴도 노랗고 거무틱틱한 것이 할머니의 표현에 의하면 검불 같아서다. 허기 허기적 걷는 내 모습은 흡사 배고파서 걷다가 꼭 쓰러질 듯 했다니까 말이다.


그래서일까, 어른들은 나를 먹이기 위해 안달이 난 사람들 같았다. 정육점에서 소를 잡았다고 연락이 오면 아무리 바빠도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그곳으로 가서 소의 골과 간을 참기름과 소금을 찍어서 내 입에 쑤셔 넣듯이 넣으셨다. 뱉어내면 넣고 또 넣고. 나중엔 나도 체념을 했는지 그냥 주시는 데로 넘겼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이 좋으셨나 보다. 소골과 간도 모자라 소의 생피까지 먹이시는 아버지의 정성 탓인지 지금의 나는 위대(胃大)하다.


요즘 집에 있는 날이 많다. 그래서일까 먹는 양도 대단해 졌다. 두 달 전 보다 3Kg가 늘었으니까. 때마침 헬스장도 리모델링을 이유로 한 달간 휴관이다. 언니가 병원에 계시기에 추석 모임도 없다. 그렇지만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나다. 무엇인지 모를 화를 다독이기위해 녹두빈대떡을 부치고 새우전 그리고 만두와 토란국을 끓였다. 음식을 만들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또 다스린다. 그리고는 한상 근사하게 차려놓고 먹는다. 아버지를 엄마를 아들을 그리워하면서.


나를 비롯해서 친가의 가족들은 사촌은 물론 모두가 위대하다. 먹기에 진심인 위대한 가족이란 말이 증명이나 하는 듯 가족사진을 보면 누구라도 느낄 터이다. 때깔 좋고, 풍채 좋고, 품성 좋은 친가의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위대하다. 그런데 엄마는 위대 하지 않다. 다만 위대(偉大)하실 뿐이다. 종갓집 맏며느리로 또 나의 엄마로 그분은 위대하실 뿐이니까.


나는 희망한다. 胃大하지만 偉大하기도 한 나를. 그리고 가장 큰 나의 세계인 가족들이 내가 엄마를 위대하다고 했듯이 아들들도 나를 위대하다고 해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 많은 속물일지언정 그럼에도 희망한다. 그나저나 나는 그저 위대한 것으로 만족해해야 할 테다. 어쨌든, 내일 아침 무엇을 먹을까를 고민하는 나는, 진정 위대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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