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헬의 72세 생일잔치)
에덴 파라다이스로 가는 길
에덴 파라다이스로 가는 길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뚜벅이로도 가능했기에 야심 차게 실행에 옮긴 길이다. 세 번의 지하철 환승과 한 번의 버스 환승, 그리고 도보로 넉넉히 세 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그곳 에덴 파라다이스. 9월 하늘이 맑고 내가 세상과 마주한날 그곳에 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시작은 8호선 암사역사공원역이다. 세 번의 환승을 거쳐 이천역에 도착했고 버스를 타고 ‘표교초등학교’에서 내려 30분 걷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들뜬 마음은 한 정거장 전인 ‘목리’에 나를 내려놓았다. 그곳은 길 양편에 밭과 비닐하우스뿐인 전형적인 시골길이다. 다음 버스가 도착하려면 90분을 기다려야 하는 시골의 정류장 신작로에서 나는 어쩔 줄 모르고 난감해했다.
앱을 켜니 걸어서 한 시간 거리, ‘애라 걷자, 이참에 고국의 초가을 시골풍경도 눈과 가슴에 담으면서’ 그렇게 나는 시골의 신작로를 걷고 다리를 건너 조금은 위험해 보이는 고속도로의 좁은 보도를 따라 걷고 또 걸었다. 노트북까지 넣은 결코 가볍지 않은 백백을 메고.
한 달 전, 72세 생일에 맞혀 호텔예약을 했다. 호텔이름이 내 마음에 꼭 들었다. ‘에덴 파라다이스 리조트’는 에덴과 파라다이스를 경험할 수 있을 듯 나를 유혹했으니까. ***예약하기 창에 뜬 호텔에 대해 알아보니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아름다운 정원, 옛 중세시대의 건물 같은 여러 개의 건물들, 티하우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식당이름 ‘세상의 모든 아침.’ 모든 순간이 자연과 연결되어 있다는 그곳은 72세의 생일파티를 홀로 하기에 안성맞춤이었으니까. 게다가 차 없는 내게 선물로 하늘에서 내린 듯한 느낌까지 들기에 예약을 하고 기대로 충만한 가슴을 품고 그날을 기다렸다.
입구에서 호텔건물까지 아름답게 정돈된 길은 양편의 수국과 갈대 그리고 초록초록빛을 뿜어내는 나무들이 활짝 웃고 있다. 만보 이상 걸은 걸음수를 위로라도 하듯 나를 반겨주는 느낌이었으니까. 드디어 마주한 호텔의 건물들. 오느라 애썼다며 환영하는 정원에서 흐르는 음악, 그리고 중앙건물 앞의 줄 지에선 분수대의 시원한 물줄기는 흐르는 음악에 맞혀 춤을 추듯 몸 사위를 한다. 그 광경은 마치 중세의 사열대 모습 같았다. 사열대가 나를 맞이하는 환상은 내가 그 성의 주인이 된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했으니까.
깨끗하고 정돈된 로비에서 친절한 직원의 함박웃음은 성의 주인이 된 것 같은 착각을 더욱 부추겼다. 안내받은 방은 아이보리톤의 벽지와 침구의 고급스러운 인테리어로 기분이 상쾌했다. 특히 욕실의 정결함은 안주인인 나의 마음을 더욱 편안하게 했다. 예상보다 늦게 도착했기에 서둘러야 했다. 예쁜 원피스로 갈아입고 정원으로 나갔다. 정원을 한 바퀴 돌고 예약한 ‘세상의 모든 아침’으로 저녁을 먹기 위해 계단을 사뿐히 지르밟고 걷는다. 원피스 자락을 나풀대며.
스테이크 훌 코스와 과한 와인도 한 병 주문했다. ‘세상의 모든 아침'에서 ’ 세상의 멋진 저녁‘을 먹고 마시며, 주문한 한 조각의 치즈케이크에 한 개의 촛불을 켜는 것으로 생일파티를 마무리를 했다. 반이나 남은 음식과 와인은 체면상 두고 왔지만 값을 생각하니 속이 시렸다. 해서 “조식 먹을 때 마실 수 있게 보관해도 되지요?”라며 스쿠르지영감의 검은 속을 내보였다.
방으로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매일 쓰기를 한다. 하루 동안 일어난 일들과 한 줄 메모를 잊어버리기 전 기록하기 위해. 포근하고 하얀 침구 속으로 몸을 눕히며 근사한 생일을 보낸 나에게 축복과 응원의 의미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깊은 잠에 들었다. 새벽까지 푹 잔 것은 와인 때문만은 아닐 테다.
이른 새벽, 해는 뜨지 않았지만 정원으로 나갔다. 여전히 분수대의 물줄기는 사열대의 모습으로 나를 밤새 지켜준 듯 그대로였고 잔잔한 음악 역시 여전했다. 음악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니 작고 정결한 교회가 나타났다. 문이 열려있기에 들어가서 잠깐 묵상을 했다. ‘어제 보다 나은 오늘을 가족에게 주셔요.’라는 마음의 소리는 가슴을 따듯하게 했다. 그 따듯함은 에덴에서 파라다이스를 경험한 것과 다를 바 없었으니까.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해가 떴는지 ’ 세상의 모든 정원‘이 눈앞에 와 있다. 작고고운 그리고 소중하다고 느껴지는 자연의 냄새와 광경이. 그렇게 평안한 아침은 너무도 오랜만이다.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예기치 않은 곳에서의 아침묵상이 이렇게 마음에 평안을 주는 것에 대해 놀라움을 참을 수가 없어서인지 촉촉해진 눈가를 문지른다.
서둘러 방으로 들어와 옷을 갈아입고 조식을 먹기 위해 ‘세상의 모든 아침’으로 향한다. 뷔페의 모양새로 완벽하게 차려진 조식 밥상. 내가 지극히 좋아하는 음식이 지천이다. 토마토카프레제, 애그베네딕트, 그리고 상큼한 샐러드와 갓 구운 빵과 커피등. 나의 침샘을 자극하는 음식 때문에 정신까지 혼미했다. 안 그래도 대단한 식욕은 한잔의 식전 와인으로 도가 지나칠 정도로 거한 조반을 마감했다. 목까지 차오른 포만감을 느끼면서도 뭔지 모를 모자람은 남기고 온 와인 때문일지도.
직원의 함박 미소를 뒤로하고 호텔을 나선다. 가는 길에 식물이 가득한 ‘에덴’ 티 하우스에 들려 밀크티와 따듯한 스콘을 주문했다. 노트북을 열고 야심 차게 준비한 나 홀로 생일파티를 야무지게 써 내려간다. 잘해왔고 잘하고 있고 잘할 수 있을 것에 마침표를 찍으며. 내게 남은 앞으로의 날들 모두가 에덴에서 파라다이스를 누리고 경험할 수 있을 만큼의 덕을 쌓아가길 희망한다. 그리고는 73세 생일도 이곳에서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때는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