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획이란 무엇인가에 꽂혀서 한동안 고민해 보게 되었다. 기획력이 없어서 고민이라는 말, 기획력이 있는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말. 그렇지만 객관적으로 능력치를 증명해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딘가 모르게 기획력이라는 말 자체가 참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 고민하다가 내리게 된 결론, 기획력은 글쓰기라는 생각이었다. 가만 보면 기획력과 글쓰기는 공통점이 많다. 글쓰기 능력이 없다고 해서 당장 주어진 일을 못하거나 하진 않으니까 바로 드러나는 능력이 아니라는 점, 마땅한 자격증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 중요하지만 급하게 필요하진 않다는 점. 이러한 점 때문에 나는 기획이라는 종류의 일이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무슨 일을 하든 상관없이 항상 기획하듯 처리한다고나 할까. 새로운 일을 할 때, 어려운 일을 할 때, 잘해야 하는 일을 할 때 더더욱. 기획에 대해 고민하다가 이런 내용을 오랫동안 고민해 온 사람이 있었으리라 생각했다. 유튜브 동영상을 통해 처음 접하게 되었던 페이퍼로지 님의 책에 뭔가 체계적인 내용이 담겨있을 거라 생각했다. 기획력은 곧 글쓰기가 먼저라는 확신을 갖게 해주었다. 그동안 혼나가면서 어깨 너머로 배웠던 기획 일을 이렇게 체계적으로 잘 정리해 놓았다는 점에서, 뒤늦게 이런 책을 만나게 된 것이 조금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딘가에서 기획자를 구한다면, 따로 사람 뽑지 말고 그냥 이 책 하나 선물해주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알찬 구성이 마음에 든다. 논리적으로 글 쓰는 방법, 업무를 관리하는 도구뿐만 아니라, 가독성이 높게 퇴고하는 방법, 키워드를 재구성하는 방식, 설득력을 높이는 발표, 그리고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최소한으로 필요한 디자인, 덤으로 발표를 돕는 말하기 기술까지 한번에 담고 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말은 PPT를 하려면, 절대 PPT 프로그램을 먼저 열지 말라는 말이었다. 워드를 먼저 켜서 하려는 말을 모두 정리하고 나서 디자인을 하라는 것. PPT는 하려는 말을 포장하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 기획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일주일 넘게 고민했는데, 나름의 답을 찾고 또 정리할 수 있었다. 기획자라는 타이틀은 없었지만, 어쩌면 나는 평생 기획하는 일을 해왔던 것인지도.
업무에 적응하는 신입사원의 시기에 다양한 종류의 일을 경험합니다. 어느 정도 업무에 적응하고 난 후, 1인분을 해낼 수 있게 되면 매일 주어진 일만 반복하는 일이 아닌 이상 새로운 일을 기획하는 순간이 오는데요. 이때 기획력이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 준비한 일이 잘될지 그렇지 않을지 드러납니다. 기획력이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해본 경험에서 말씀드려 보자면, 일하는 시작과 과정, 결과까지 모두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기획력이란 정말 놓치고 싶지 않은 필수능력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기획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조금 막연해집니다. 실체가 불분명한 능력이라고 볼 수 있겠죠. 기획력이 있고 없음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 기획력이 없다고 한들 당장 주어진 업무를 수행하는 것에 문제가 생기지도 않고요. 그러니까 기획력이란 능력은 상당 시간 수면 아래에 가라앉아 있다가, 이전에 없던 새로운 업무를 기획해 보는 경험이 생길 때, 비로소 드러나는 역량인 셈입니다.
이전에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진행해 본 경험이 있다면, 새롭게 맡은 프로젝트의 종류가 다르더라도 상대적으로 진행이 수월합니다. 다른 일도 마찬가지겠습니다만, 기획 역시 경험 싸움인 셈이죠.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의문점이 듭니다. 그렇게 다 경력직만 원하면 도대체 신입은 어디서 경험을 쌓나? 하는 본질적인 의문점이 말이죠.
그동안 저는 스스로 제가 일했던 경험을 돌아보면, 저는 늘 프로젝트 단위로 일했던 것 같습니다. 기존에 운영하는 걸, 어떻게 하면 더 잘 발전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함과 동시에 회사의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했으니 말이죠. 그러다 보니 이전 선배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보고, 어깨 너머로 따라 해 보면서 자연스럽게 기획력을 길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저렇게 대응하고, 저런 상황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임기응변하는 거구나 하면서 말이죠.
사실 왜 기획이 어려울까 생각해 보면, 기획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에 다니기 전까지 기획을 해볼 일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저도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공부만 했던 일반 학생이었습니다. 대학교 조별 과제에서 조장을 맡아 자료조사부터 발표까지 혼자 모든 영역을 전부 다뤄보지 않는 한 일을 기획할 리 없죠.
경력이 쌓여 중간관리자가 되면, 여러 명과 함께 진행하는 프로젝트 여러 개를 동시에 운영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일을 맡게 됩니다. 그러니까 언젠가 기획력을 요구받는 시기가 온다는 것이죠. 물론 기획하지 않아도 되는 직군이 있을 테니 그건 예외로 두겠습니다.
기획력을 기를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실수를 통해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일을 하다가 실수해서 선배에게 엄청 혼나면서 배우면, 기획은 둘째치고 일단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뇌에 확실히 각인할 수 있었으니까요. 자잘한 실수를 저질러서 혼나면서 미리 배워두면, 나중에 일어날 큰 사고를 막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중에 기획할 상황이 되어서야 비로소, 그동안 쌓아왔던 경험으로 부랴부랴 몸으로 부딪쳐 가면서 익히는 것만으로 충분한지 궁금합니다. 언젠가 나에게 닥쳐올 미래라면, 지금 미리 연습해 볼 수는 없을까요?
1.
기획력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글쓰기다
기획이란 전체 구조를 잡는 일입니다. 건축으로 비유하면 설계라고 볼 수 있겠죠. 전체를 설계해 보려면 부분을 어느 정도 경험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에게 회사의 중요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일을 맡기기 어려운 것이죠. 자연스럽게 기획의 경험을 갖췄을 것이라 예상되는 사람이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기획해 본 경험이 있거나, 부분적인 업무를 경험해 봤거나. 이도 저도 애매하면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이죠.
앞서 설명한 것처럼 기획력은 실체가 불분명합니다. 이처럼 실체가 불분명한 내용을 이해할 때는 비슷한 예시를 이용하면 쉽습니다. 실체가 불분명한 기획력을 한마디로 이해해 본다면, 글쓰기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글을 쓰려면 글을 쓰기 전이 되었든, 글을 쓰고나서가 되었든 전체적인 구조를 설계해야만 하기 때문이죠.
글쓰기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은 많이 듣지만, 글쓰기 능력을 판별할 마땅한 기준이 모호합니다. 글쓰기 능력이 없다고 해서 당장 주어진 일을 못 하거나 하지도 않고요. 글쓰기 능력은 중요하지만 급하진 않은 역량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기획력과 글쓰기는 공통점이 꽤 많지 않나요?
글쓰기 말고 설계하는 경험을 또 어디에서 얻을 수 있을까요? 어려운 수학 문제 풀기는 어떤가요?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공식을 열심히 암기하면 정해진 문제를 푸는 데에는 조금 도움이 되지만, 숫자가 조금만 바뀌면 손을 댈 수 없는데요. 특히, 난도가 높은 문제는 공식만 암기해서는 풀 수 없습니다. 원래 수학 문제는 공식을 열심히 암기하여 대입해서 푸는 것이 아니기도 하고요.
수학 문제를 풀 때, 풀이 과정을 잘 쓰는 게 중요하다고들 말합니다. 풀이 과정을 잘 쓴다는 것은 세세한 계산 과정 하나하나를 쓰는 것뿐만 아니라 전체 구조를 잘 잡았는지도 중요한데요.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려면, 문제를 풀기에 앞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지 단계를 나눠서 설계하는 형태로 접근해야 합니다. 이렇게 문제를 풀기 전, 풀이의 전체 흐름을 미리 설계해 보는 경험이 간접적으로 기획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기획력이란 어떤 일에서든 생각해 볼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새로운 일일수록, 어려운 일일수록, 잘해야 하는 일일수록.
2.
기획력의 시작과 끝
업무 관리표 만들기
논리적인 글쓰기는 설계하는 경험을 줍니다. 논리적인 글쓰기야말로 기획력을 기르는데 좋은 훈련이 되긴 합니다만, 글만 쓸 줄 안다고 해서 모든 기획이 끝나지 않습니다. 일단 글은 혼자 할 수 있지만, 일은 같이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기획과 실행을 위해서는 한 가지 도구가 더 필요합니다. 바로 한눈에 진행 상황을 알아볼 수 있는 업무 관리표입니다.
업무 관리표라고 하니 뭔가 거창한 것 같지만, 논리적인 글쓰기의 개요 짜는 것에 연장선에 불과합니다. 저는 글을 쓸 때 가장 먼저 어떤 소재를 놓고 글을 쓸지 생각하는데요. 어느 정도 소재가 대충 정해지면, Why 질문부터 던지기 시작합니다. 이 소재를 다루는 일이 왜 필요한지, 이 소재를 알면 도대체 뭐가 좋은지부터 생각하는 것이죠. 사실상 이 Why 질문을 던지는 순간, [기획]이 시작된 것입니다. 기획력의 정체는 다름 아닌 Why 질문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Why 질문은 기획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중요합니다. 왜 해야 하는지 목적과 이점만 명확하면, 나머지는 전부 부가적인 요소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Why가 명확해지면, 문제를 좀 더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다면, 어떻게 해결하면 되는지 생각하는 건 매우 쉽습니다. 단지 그 방법대로 한다고 해서 잘 해결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을 뿐이죠. 그 문제는 해결했지만, 오히려 또 다른 문제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요.
어쨌든 Why 질문을 시작으로 문제 정의인 What과 해결 방법인 How까지 결정된 상태가 기본적인 설계 단계입니다. Why, How, What이 명확하게 정리되면, 육하원칙의 나머지도 하나하나 연결지어서 생각하면 됩니다. 일단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명확해야 Who를 결정할 수 있겠죠. 일본어로 번역하는 프로젝트를 미국인에게 시킬 수는 없으니까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누가 할지 정해져야 그 사람의 상황과 역량에 따라 어디에서 일하게 될지 Where를 결정할 수 있고, 하루에 얼마나 시간을 내어 수행할 수 있는지를 파악하여 When을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위와 같이 육하원칙에 따라 업무별로 누가 언제까지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업무 관리표가 탄생합니다. 이러한 업무 관리표는 필연적으로 MicroSoft의 Excel이나 Google Drive의 Spreadsheet로 만들게 되죠. 예전에는 Excel을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저장과 공유의 편의로 요즘엔 Spreadsheet로 만드는 편입니다.
간단하게 방법을 소개하자면, 중요한 순서대로 왼쪽에서부터 오른쪽으로 배치합니다. What-Why-How-Who-Where-When 순서로 배치하는데요. What에 열 4개를 할애합니다. A열에 대분류, B열에 중분류, C열에 소분류, D열에 업무 내용을 작성하여, 최대한 업무를 작은 단위로 쪼갭니다. E열에는 업무 내용별로 왜 해야 하는지 작성하여 업무 사이의 유기적인 연결고리를 생각합니다. F열에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하는지 작성하는데, 앞에서 작성했던 Why에 연관되도록 작성하게 되죠.
G열에는 업무를 진행할 담당자는 누구인지 작성합니다. 누가 진행하는지에 따라 H열인 Where가 결정되기도 하니까요. 마지막에 I열에는 마감 기한을 입력하는데, 상황에 따라 월별로 나눠서 실제 업무 진행도를 보여주는 Action Plan 형태로 만들기도 합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앞서 설명했던 육하원칙이 모두 포함된 형태로 업무 관리표를 만드는 것이죠. 다음은 내용 없이 제목만 상단에 만든 기본 표입니다.
굳이 왜 번거롭게 이런 업무 관리표를 만들어야 하나 싶을 수 있습니다. 만일 하는 일이 한 가지라면 이런 업무 관리표를 만드는 건 상당히 비효율적인 일이 됩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업무를 한번에 진행하려고 한다면, 업무 관리표를 만들어 일하는 체계를 잡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업무별로 중요한 일과 급한 일을 구분할 수 있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새로운 일에 대해 쉽게 대응할 수 있기도 하고요. 이러한 이유로 귀찮음에 투덜거리면서도 업무 관리표를 만들게 됩니다.
3.
모두가 갖춰야 하지만
배우기 애매한 기획력
누가 대놓고 이렇게 하는 거라고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기획력을 갖춘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기회를 얻으면서 어깨 너머로 알음알음 익힐 수 있었습니다. 저는 저만의 기획력을 이런 식으로 다듬어 왔습니다만, 누군가 이런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알려주는 콘텐츠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지금까지 설명해 드렸던 논리적으로 글 쓰는 방법, 업무를 관리하는 도구뿐만 아니라, 가독성이 높게 퇴고하는 방법, 키워드를 재구성하는 방식, 설득력을 높이는 발표, 그리고 프리젠테이션을 위한 최소한으로 필요한 디자인, 덤으로 발표를 돕는 말하기 기술까지 기획이란 무엇인지 한 번에 알려주는 자료가 있다면 더욱 좋을 것 같았습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기획력을 체계적으로 다듬어 보고 싶은 마음에 찾아보니, 좋은 책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페이퍼로지의 보고서 첫걸음이라는 책인데요. 이 책에서는 앞서 제가 설명했던 보고서에 사용되는 글쓰기 노하우를 모두 담고 있으면서도, 매우 본질에 충실히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논리적인 글쓰기 능력과 매력적인 글쓰기 능력에 관심 있는 분이 있다면, 이 책을 일독해 보시길 조심스레 추천해 드려 봅니다.
사실 저는 이 저자를 책으로 접하기 전에, 저자의 유튜브 영상을 통해 저자의 기획력을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요. 해당 영상을 통해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홍보물에서조차 기획에 따라 얼마나 달라 보일 수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저자가 기획자로서 역량이 얼마나 뛰어난지 충분히 맛볼 수 있었죠. 똑같은 정보를 보여주는데도 어떻게 전달해야 와닿는 콘텐츠가 되는지 보여주는 과정을 통해 다시금 기획의 중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기획에 대해 글을 쓰면서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매사에 Why 질문을 던지면서 일했는데요. 즉, 기획자라는 직함만 붙어있지 않았을 뿐이지, 평생 기획하면서 살았던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번 기회에 기획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네요.
글은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입니다. 이왕 글을 쓴다면, 단순히 글만 쓰고 말 것이 아니라, 효과적으로 생각을 전달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읽는 사람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기획력, 참 매력적이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