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되는 방식>
시베리아 기단에는 사람들의 입김이 있다. 그 추운 곳에서 옷을 잔뜩 여미고 있다가 문득 갑갑한 마음에 장갑을 벗을 때도 있을 것이다. 일단 충동적으로 벗긴 했지만, 순식간에 몰려오는 냉기는 손을 잔뜩 시리게 하겠다. 그렇다고 다시 장갑을 바로 끼기엔 아직은 갑갑하며, 그렇다고 또 그냥 두기엔 시리다 못해 아파지는 손이 신경 쓰일 테다. 호오, 호. 호흡이 부족할 만큼 길게 입김을 내뱉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손이 다시 시릴 정도로 돌아올 테고, 동상에 걸려 손을 절단하는 일도 없을 테다. 적어도 너는 그래야만 한다. 그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기단의 일부가 되고 있을 테다. 이왕 입김을 뱉는 김에 한숨도 섞어 내쉬는 것이 좋겠다. 아마도 나를 떠올리며 쉬는 한숨은 아닐 것이다. 단지 눈을 좋아하지만 더 아파질 손이 무서워 만지지 못하는 아쉬움에서 나오는 한숨일 테다. 난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 덕에 시베리아 기단에서 너의 지분은 조금이나마 늘어났을 테니까.
고작 "~것이다"나 "~테다"라는 말로 밖에 끝낼 수 없는 것은 잘 알지 못하는 탓이다. 시베리아를 가본 적이 없으니 그 추위를 여실히 느끼긴 불가능하다. 시베리아 허스키가 썰매를 끄는 영상들이나 보고, 뉴스에 한파 주의보라고 말하던 어느 겨울날 한강 앞에서 바람을 맞으며 이 정도면 너와 비슷하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최선이다. 사실 이것은 그리 중요한 이유는 아니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제는 잘 알지 못하는 탓이다. 지금의 너를. 전엔 갑갑한 것이 싫어 장갑도 마다하던 너였는데. 지금은 너무나 추운 탓에 장갑을 벗지 않았을 수도, 시베리아의 장갑은 더욱이 갑갑해 아예 끼지 않았을 수도 있으리라. 지겹게 내리는 눈과 밝게만 느껴지는 배경에 눈이 싫어졌을 수도 있겠다. 애초에 시베리아 기단에 너는 닿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그냥 네가 내게 조금은 닿아줬으면 하는데, 내게 닿는 것은 찬 바람뿐이라 여기에 네가 있다고 생각하고 싶은 것이다. 너는 아직 갑갑한 걸 견디지 못할까. 눈이 아직도 좋긴 할까. 만약 싫어졌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아직도 네가 궁금하다. 대답을 못하는 것이 부끄럼 때문이라면 속삭여 말해줘도 좋다. 소곤소곤 속삭여도 거기에선 입김이 될 테니 기단에 실어 보내줬으면 좋겠다.
네가 시베리아 기단에 있다면, 나는 북태평양 기단에 머물 것이다. 우습게도 이 여름에 우린 참으로 만나기 힘들겠다. 여름에 나보다 멀어지는 너인 이유도 있겠지만, 너의 자의로 나를 만나기 싫어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나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간혹 오호츠크해 기단을 다독여 잠시 집으로 돌려보내고, 그 틈에 너의 마음도 조금은 바뀌어 내게 다가오는 날. 우리는 그렇게 만날 수 있을 테다. 그럼 우린 만나 오래도록 이야기를 나누자. 못다 한 이야기들을 하며 한참 비를 뿌려대자. 만나서 기쁘기에 우는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좋은 시간을 보냄에도 예견된 결과를 알기 때문에 우는 것일 수도 있겠다. 내일은 비가 잔뜩 왔으면 좋겠다. 우리는 장마전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