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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빈 Jul 05. 2022

피사체

<누군가가 되는 방식>

  나와 다르게 그 사람은 사진 찍는 걸 무척이나 싫어했다. 이유가 퍽이나 설득력 있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진을 보며 회상하는 일은 너무 과거에 사는 것 같다며 싫다고. 사진 따위로 떠오를 추억이라면 그건 추억도 아닌, 그저 그런 기억이라고. 진짜 추억은 가슴에 남아 언제든지 보인다며. 그 사람이 항상 입에 달고 살던 말들이었다.


  하루는 힘들게 모은 돈으로 같이 일본 여행을 갔을 때였다. 기념이랍시고 모든 것을 찍으려는 나와는 다르게 최대한 눈을 감지 않고 오랫동안 바라보는, 그게 그 사람이 추억을 담아내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오래 쳐다보면 눈이 아프지 않냐는 나의 질문에 추억을 담는 일은 원래 아픈 거라며, 어쩌면 추억이 아픈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이해가 안 된다는 나의 표정을 보곤 웃더니 넌지시 말했다. 추억을 떠올릴 때는 행복한 미래를 생각하며 꺼내볼 때와 우울한 현재를 도피하고 싶을 때, 이렇게 둘로 나뉜다고. 자신은 대개 후자라서 추억이 너무 아프다고.


  여행 마지막 날, 하도 졸라대는 내가 너무나 귀찮았는지 오사카 성에서의 단 한 장의 사진을 남겼다. 카메라 앞에 서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는 그 사람의 서투름이 귀엽게만 느껴졌다. 나는 타이머를 누르고 얼른 뛰어가 다정하게 사진을 찍어냈다. 그게 우리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진이었다. 사진을 내게 주며 되도록이면 내가 행복할 때 자신을 꺼내 회상해달라는 것이 그 사람의 부탁이었다. 나한테 추억은 좋은 의미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게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우리가 다시 마주한 것은 여행이 끝난 지 닷새가 안되던 때였다. 두고 간 짐이 있어 전해주려 찾아간 그 사람의 집에서였다. 수차례 두드린 노크에도 미동 없는 문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어본 문은 꽤나 미련 없이 열리고 말았다. 그 사람은 연탄 구름 속에서 뜬 눈으로 가을 별들을 다 헤고 있었다. 얼마나 많이 세었는지 눈동자 속에 별들이 은하수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눈이 부셔 손으로 눈을 감겨주는 수밖에 없었다. 빛나는 것들만 가져가길 바라며. 그 눈에 가득 담았던 추억들과 같이 긴 여행을 떠나길 바라며.


  사진 한 장. 그 흔한 사진 한 장이 없었다. 장례를 지내는데 영정사진이 없어 꽤나 애를 먹었다. 그렇게 겨우 찾아낸 것이 다섯 살 정도로 보이는 유치원 단체사진 속 그 사람이었다. 어릴 때부터 사진을 싫어했나 보다. 잔뜩 찡그린 얼굴이 우습게도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장례가 끝나고, 어느 한 납골당에 안치되었다. 이렇게라도 찾아와서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는 걸까. 그렇게 마음대로 떠난 걸 원망해야 하는 걸까. 그 이후에 가끔 생각날 때면 납골당에 찾아가곤 했다. 다섯 살짜리 애가 꿈에 나올 것만 같아서. 사진을 찍기 싫다고 투정 부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아서. 그리고 너와 나는 같아서.


  항상 너를 찾아가서 건네는 말은 똑같았다. 사뿐히 세워놓은 우리 둘의 사진을 지긋이 바라보며 미안하다고. 부탁한 거 들어줄 수 없다고. 나는 힘들 때마다 찾아와서 너의 사진을 보고, 너와의 추억을 회상한다고. 이건 결국 내가 너를 보고 싶다는 말을 건넨 것이었다. 어김없이 찾아간 빈소에서 나는 또 똑같은 말들을 잔뜩 늘어놨다. 오늘따라 말이 길어지는 걸 보니, 오늘은 내가 너를 더 많이 보고 싶어 하나보다. 네가 그렇게 뭔가 한참을 바라보는 진짜 이유를 알 것만 같다. 나도 그렇게 널 찍어냈다. 그렇게 가기 위해 한 발자국, 두 발자국. 그러고 다시 돌아오기 위해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오늘은 문득 떠오른 말들을 덧붙였다. 추억은 원래 아픈 것도 아니고, 아픈 게 추억도 아니라고. 아픈 것까지도 추억인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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