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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빈 Jun 30. 2022

이런 삶도

<누군가가 되는 방식>

  종이컵은 물을 한참을 머금은 채로 고민하고 있었다.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하면서 말이다. 벌써 여직원의 푸념을 듣고 있었던 것이 5시간을 훌쩍 넘어가고 있었다. 평소에 가지고 다니던 텀블러를 대신하여 종이컵은 수차례 물을 머금고 토해내길 반복하고 있었다. 언제 밑바닥이 찢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몸은 흐물흐물 해져 있었고, 립스틱과 잘게 씹힌 자국들로 범벅이  머리 덕에 종이컵이라고 불리기도 어려운 형상이었다. 여직원의 반복되는 말들과 한숨 섞인 말들이 지루해진 탓에 제대로 듣지 않은 것은 꽤나 오래전이었다. 그럼에도 종이컵은 어느 정도 감사함을 느끼고 있었다.   사용되고 버려지는 . 그렇게 가버리는 친구들도 숱하게 많았으니까. 그런 삶들에 비해  괜찮은 삶이 아니겠는가. 종이컵은 물만을 담아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금씩 다가오는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럴수록 몸에 힘을 바짝 줬다.  밖으로 삐져나올 것만 같은 수분감을 계속해서 느껴야만 했다. 종이컵은 여직원에게 기회를 주려고 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채운 것은 스스로 비워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내 여사원은 컵을 들고 벌컥 물을 들이켰다. 종이컵은 쓰레기통으로 던져지는 와중에도 그녀의 표정을 보았다. 구겨진 종이컵이 쓰레기통 밑바닥에 있다. 그렇게 밑바닥에서 안도의 눈물을 흘렸다. 바닥은 금세 물로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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