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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빈 Sep 27. 2022

나는 해로운 학생이었다

<스물, 안(眼)>

  나는 학업과는 거리가 먼 학생이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서 게임을 할 생각에 항상 들떠 있었고, 집에 도착해서 가방을 벗는 것보다 먼저 했던 것이 컴퓨터를 키는 일이었다. 나에겐 부모님이 오시기 전까지의 시간만이 주어졌고, 가방을 벗는 시간조차 아까웠으니 말이다. 나는 한 게임만 진득하게 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게임을 했었다. 그 당시 나이에 어울렸던 아르피아, 동물농장부터 아직까지도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메이플스토리, 던전 앤 파이터 그리고 몰래 부모님 이름으로 아이디를 만들어서 했던 루니아전기나 붉은 보석까지. 이때의 나이가 고작 11살 즈음이었다.


  여느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년이 점점 올라갈수록 학업에 대한 압박은 심해졌고, 나는 어쩔 수 없이 학원을 다니게 됐다. 아직까지도 처음 학원을 다녔을 때가 생생하다. 정확히 말하면 학원은 아니었지만 초등학교 5학년 무렵 방과 후에 실시하는 영어 보충 수업을 다녔을 때, 거기서 하는 팝송 따라 부르기가 그렇게 싫어 혼자만 입을 꾹 닫고 있었던 나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때도 나는 혼자 게임을 하는 상상을 하고 있었을 테다.


  타고난 성격 탓도 있겠지만 어린 나이부터 많은 게임을 한 탓에 나의 집중력은 그리 좋지 못했다. 더군다나 관심은 항상 딴 곳에 있었으니 어느 학원을 가도 성적이 좋아질 리가 만무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영어학원을 가서 다시 파닉스를 배웠고, 단어를 잘 외우질 못 해 항상 친구들보다 늦게 집에 가곤 했다. 명절에 책상에 앉아 수학을 하다 이항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해 한참을 혼나고 엉엉 울었던 기억. 친구들은 공부를 다 하고 피시방에 가서 게임을 하고 집을 갈 때, 나 홀로 쓸쓸히 집으로 향하던 기억. 숙제에 모르는 문제가 있어 친구들에게 물어보고선 이해가 되질 않아도 이해가 된 척 일어나던 기억. 이처럼 공부는 나에게 있어 아픈 상처였고, 앞으로도 계속해야 한다는 사실은 더 큰 외로움이었다. 때문에 고2 무렵 나는 모든 학원을 끊어버렸다.


  학원을 다 끊어버린 이유에는 공부가 힘들었던 것과 적성에 맞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나를 이해해주는 선생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모르는 것이 있어 번쩍번쩍 들어 대던 손의 높이는 점점 낮아졌고, 반복되는 질문에 지쳐하는 선생님들의 눈빛을 계속해서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지금에서야 왜 그런 눈빛이었는지 왜 그렇게 답답해했는지 이해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들 역시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좋고 나쁜 선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좋은 선생은 무엇이고 나쁜 선생은 무엇인가. 여기에 대한 대답은 아직 찾아내질 못했다. 그러나 학생에게 해로운 선생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못해본 적이 없는 선생"이라고. 못해본 적이 없는 선생들은 못하는 학생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은 항상 잘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런 선생님들에게서 내가 주로 듣던 말은 "네가 더 열심히 안 했기 때문이다. 다른 애들만큼 더 해봐"와 비슷한 말들 뿐이었다. 그들은 모른다. 똑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뒤쳐진다는 것을. 그럼에도 그냥 "네. 열심히 할게요."라고 대답했던 이유엔 자존심이 너무 상해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을 뿐이란 것을. 설령 솔직히 말하더라도 핑계로 치부될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는 사실을.


  그들 역시 못하는 우리를 보며 해로운 학생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나 같은 학생이 있다면 다른 선생과 비교하며 신세한탄을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선생들과 같은 급여를 받음에도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더 많은 감정을 담아야 하니까. 허나, 학생과 교육자의 관계는 단순히 급여로 연결된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가 아니다. 설령 맞더라도, 아닌 것처럼 여겨져야 한다. 교육자로써 자신이 추구하는 진정한 교육을 전달하는 것에 보람을 느끼는 것. 어쩌면 그것이 똑똑한 두뇌보다도 더 필요한 교육자의 자질이 아닐까. 그래야 나처럼 상처받는 이들이 사라질 테니까. 그리고 그들이 자라 똑같은 배움을 전할 테니까.


  이것은 비단 공부에 대한 배움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해, 좋은 자식과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좋은 선후배가 되기 위해 그리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우리는 언제나 교육자이자 동시에 배우는 이가 될 필요가 있다. 때론 금전적, 자기중심적 효율보다 그렇지 않은 것들을 행하는 것에서 오는 행복이 더 클 때가 있다. 내가 잘 알려준 후배가 언젠가 높은 자리에 서서 그 덕이 나의 덕이라고 하며 고맙다고 찾아오는 날이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처음으로 공부를 못했던 내가 고맙다는 생각을 해본다. 난 적어도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있을 테니까. 그런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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