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
주변에 엄청난 극찬과 추천에도 이상하리만큼 당기지가 않았던 영화였다.
'젊은 거장'이라는 호칭이 제법 어울릴 '하마구치 류스케'의 하위 버전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미야케 쇼와의 첫 만남은 한 대 맞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농아가 듣지 못하는 세상의 소리와 우리가 듣지 못하는 농아의 목소리는 '코로나'라는 시국과 묘하게 겹쳐 마스크로 인해 사운드를 녹음할 수 없는 영화와 마스크를 착용한 체 영화를 자막으로서 봐야 하는 '영화 존재론'에 대한 논쟁이 오버랩이 된다. 더 나아가 퇴장하는 관장과 복싱을 계속하려는 여성 복서를 통해 일본의 상황에 대한 감독의 코멘트에 대해 논할 수도 있다. 이런 정치나 영화론을 말하기 것보다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이 영화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것은 무엇보다도 정직했기 때문이다. 본론부터 말하자면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이라는 제목과 별개로 우리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아도 그녀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공격만 하고, 가드를 하지 않는 그녀에게 코치는 그러지 말라고 하지만, 왜 그녀가 공격만 하는지 알 수는 없다.동생이 그녀에게 기분이 왜 이리 안 좋냐고 묻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녀가 작성하는 글에서도 그녀의 감정이 100% 적힌다고도 보장할 수 없다. 이건 그녀도 마찬가지이다. 길거리에서 그녀에게 욕을 하는 행인이나 경찰들이 자기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녀와 그녀가 살고 있는 사회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그녀가 대화가 통하는 것은 관객이 아닌 오로지 자신이 몸으로 부딪치며 속한 조그마한 사회이다.
(이 영화가 유독 노동을 보여주는 이유가 있다.)
영화 중반, 편지로서 그만두겠다고 말하는 남학생에게 코치가 관장님께 직접 말하라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거부한 체 코치에게 그만두겠다고 말하고 간다. 영화는 그 남자의 편지를 절대 보여주지 않는데, 이와 별개로 여주인공의 문자는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에서 영화가 생각하는 '말'과 '글'의 태도가 나온다. 다른 장면을 이야기하자면, 관장님은 기자와 인터뷰 중에 그녀가 자신의 질문에 대답을 했다고 하였다. 그때까지 관객은 그녀가 말을 할 수 있는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은 후반부, 신발 끈을 묶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 싸울 마음이 없으면 안 해도 된다고 물어보았을 때 확인된다. 그녀는 '네'라고 정확하게 말한다.
결국 말과 텍스트가 상대방에게 도착해야 한다는 것.
관장님의 옆에서 사모님이 허락을 받고 그녀의 일기를 낭독을 한다. 낭독과 동시에 그녀가 일기에 적었던 일상과 이애 부합되는 영상이 오버랩이 된다. 일기에 적힌 '글'은 영화 내내 우리에게 보여주었던 그녀가 흘린 땀과 몸짓과 하나가 된다. 언행의 '성의'와 '진솔함'이 실존하는 상대를 향해 동반되어야 한다는 미야케 쇼의 태도는 하마구치 류스케와 정반대에 위치한다. 이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진짜 대화를 하고 있고, 여러 상황에 감정을 내뿜는다. 농아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이야기할 때 육체가 실존해야 함을 이 영화는 여주인공인 키이시의 놀라운 연기력과 몸짓, 미우라 토모카즈의 아련한 몸짓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녀가 관장님과 같이 운동을 하다가 왈칵하여 순간 흘린 눈물, 그리고 일기를 듣고 답장이나 격려를 하지 않은 체 경기 후 휠체어를 타고 사라지는 관장님의 마음은 관객에게 남겨진다. 그들의 눈 안의 마음. 눈에서 나온 마음은 서로에게 전해졌을까?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이라는 미완성된 문장이 제목인 이유는 이 지점에 있다. 결국 실존하는 육체의 눈을 들여다보며 갖춰야 할 자세와 태도에 대한 영화이고, 그녀와 같이 땀 흘린 사람들만이 완성할 수 있는 문장이며, '공감이자 대화의 시작'인 셈이다. 그리고 그 태도만이 그녀를 다시 뛰게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