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트 모던

by 마음은런더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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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즈강변을 따라 유명한 관광지들이 줄을 서 있다. 서쪽부터 걸으면 빅벤과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지나 런던아이를 볼 수 있다. 좀 더 가면 사람만 건널 수 있는 밀레니엄 브릿지가 나오는데, 이 다리 양 끝에 놓인 곳이 바로 테이트 모던과 성베드로 성당이다. 예술과 종교, 역사와 현재가 가느다란 인도교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낡은 공장이나 창고를 개조한 카페나 음식점이 수년째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 시조격이 테이트 모던이 아닐까 한다.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화력발전소를 외형만 유지한채 뜯어 고쳐서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내포하는 의미가 바뀌니 감히 성베드로 성당을, 그것도 대등한 위치에서 마주볼 수 있게 된 것 아닐까?

테이트 모던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주로 현대미술을 전시한다. 현대미술은 아름다움보다 난해함으로 대중에게 더 잘 알려져 있지만, 바로 이전 사조인 인상주의 작품도 보유하고 전시하고 있다. 미술관 위치도 매력이 있고 전시작품도 챙겨볼게 있으니 현대미술이라는 진입장벽 때문에 방문을 꺼릴 이유는 없다는 뜻이다.

테이트 모던이 다른 현대미술관들에게 좋은 선례가 되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시민 접근성이다. 밀레니엄브릿지를 건너오면 보이는 미술관 정문을 관통해서 후문으로 나갈 수 있게 설계되어 미술관이 시민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지나가면서 자연스레 작품에 노출될 수 있게 했다. 전시되는 작품들도 접근성에 한몫한다. 난해한 현대미술들만 있는게 아니고 그네나 미끄럼틀처럼 머리 아픈 해석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들도 있다.

나에게 테이트 모던은 건물 앞 트인 공간부터 템즈강, 밀레니엄 브릿지, 그 너머의 성베드로 성당까지 이어지는 풍경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미술관에게 ‘너보다 네 앞 풍경이 더 예쁘더라’ 라고 하면 큰 실례겠다. 그렇다기 보다는, 테이트 모던이 품고 있는 풍경이 멋지더라는 의미로 받아주면 좋겠다. 날이 좋으면 그 앞에서 버스킹을 하는데, 여행자들에게 그만한 순간이 없다.

여행은 늘 일말의 후회를 남긴다. 테이트 모던은 ‘장소와 작품들을 더 공부하고 갈걸’, 성베드로 성당은 ‘입장료가 비싸더라도 들어가보고 주변도 더 둘러볼걸’ 하는 미련이 벌써 10년 가까이 머리속을 맴돈다. 런던에 다시 가려면 또 다른 10년을 지나야 한다.

오랫동안 가지 못한 런던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려고 찾아 읽은 런던 미술관 관련 책에 사진이 하나 있다. 테이트 모던에 설치된 그네(작품이다)를 3-40대로 보이는 백인 남녀가 타고 있었다. 그네를 저런 표정으로 탈 일인가 싶게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상상한다. 훗날 드디어 육아로부터 독립한 아내와 나는밀레니엄 브릿지를 건너 테이트 모던으로 들어간다. 여전히 놓여 있는 그네를 탄 방문객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그네와 표정의 부조화에 우리는 키득키득 웃는다. 미술관을 둘러본 뒤 1층 카페에서 음료를 테이크아웃해서 정문 앞 템즈강과 성베드로 성당을 바라보며 말없이 서로의 수고를 다독이고 육아 졸업을 자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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