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여행은 준비가 90%다. 메모장에나 엑셀로 리스트를 작성하고 빠진 물건은 없는지 하나하나 점검해야 여행에서 당황하지 않는다. 특히 영아는 챙길게 많다. 분유만 먹는 아기, 분유와 이유식을 같이 먹는 아기, 이유식만 먹는 아기로 나뉘는데, 두번째는 정말 각오해야 한다. 이유식을 떼고 일반식으로 넘어오면 짐이 현저히 줄어든다. 기저귀까지 떼면 난이도 급락.
우리 부부는 첫 아이가 9개월이 됐을 때, 그러니까 분유와 이유식을 같이 먹을 무렵에 후쿠오카로 여행을 갔다. 경험자들은 이 문장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것이다. 아내의 시어머니까지 동행한 여행이었는데 어른 셋이 녹초가 되어 돌아왔다. 준비물도 준비물이지만 아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일이 또 하나의 문제였다. 더군다나 기질적으로 예민한 아이니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가 뭘 믿고 그렇게 용감했나 싶다.
사실 아이와 함께 여행을 갈 때 준비물 목록에는 없지만 꼭 챙겨야 하는게 있으니 바로 각오다. 아이를 예뻐해주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공공장소, 특히 비행기 안에서의 울음과 짜증은 민폐다. 나는 민폐를 끼치러 간다, 곱지 않은 시선이 있을 것이다, 아무리 저출산 시대라도 아이 가진 것이 벼슬은 아니다 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생각해보면, 아이가 생긴 후 나는 아이와 함께 하는 개인 생활영역 뿐만 아니라 아이와 함께 하지 않는 직장생활에서도 같은 마음가짐을 갖게 됐다. 이건 아이가 생긴 후 곧바로는 느낄 수 없고 시간이 조금 지나야 체감된다. 출생 직후에는 축하의 물결에 잠겨 실체가 보이지 않으나 아이를 돌보기 위해 육아시간이나 조퇴 등을 사용하는 경우에는 명시적인 눈총을 받게 된다. 특히 교직원 모두가 한명도 빠짐없이 참여해야 하는 행사가 잡힌 날은 더 그렇다.(한명도 빠짐없이 참여한다는게 가능한 일인가? 왜 그래야 하지? 라는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지만 입밖에 내지는 않는다.) 버젓이 명문화된 권리지만 사용할 때 눈치를 안 봐도 된다고는 안 했다고 누군가 말하는 듯 하다. 인식의 변화는 제도 변화보다 늦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