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함 환자이기 이전에 치매 환자였던 엄마에게 기적은 연이어 일어났다. 엄마가 하늘나라 가시고 나서 그것이 기적이었구나, 하느님의 큰 은총이었구나 느끼고 또 느꼈다. 폐암 말기 판정을 받고 14개월 동안의 엄마의 마지막 삶은 신기함의 연속이었다.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의사의 목소리는 드라마 속의 바로 그 장면을 떠올렸다. 너무 비현실적이었고 어쩌다 우리 가족이 드라마 속의 비운의 주인공이 되어 있는지, 담담하게 말씀하시는 교수님의 작은 진료실에 따뜻한 햇살 한 줌도 꿈꾸듯 저만치 퍼져있었다. 눈물 때문인지 알 수는 없어도.
엄청난 고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서서히 모든 몸의 기능이 저하되고 근력이 소실될 겁니다.
마지막엔 강력한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또 드라마 속의 대사를 교수님은 조용히 읊조리고 계셨다.
엄마는 14개월 동안 서서히 걸어 다니시다가 앉아 계시고 결국 누워계시는 와상환자로 급속히 컨디션이 안 좋아지셨다. 그러나 가장 친한 친구인 치매는 엄마를 그대로 모른 척하지 않았다. 두 손 두 발 걷어붙이고 엄마 곁을 끝까지 지켰다.
엄마는 아프다는 말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와상환자가 되기 전 힘없이 걸으시다가 수없이 넘어지는 과정 속에서 훈장처럼 따라다니는 얼굴과 온몸의 멍에도 남의 일처럼 아프지 않다고 하셨다. 겨우 죽 몇 숟가락 넘길 수 있는 근력만으로 버틸 때에도 아픔을 호소하지 않았다.
친구인 치매는 그렇게 엄마의 머릿속을 하얗게 리모델링하고 하늘나라로 갈 여정의 길을 담담하게 준비시켜 줬다. 육신의 고통도 마음의 불안도 마지막 붙잡고 싶은 삶의 한 자락도 깨끗하고 맑게 정리해 주고 잊히게 청소해 주었다.
우리 가족은 지금도 이런 말을 자주 한다. 엄마가 그렇게 맑은 얼굴로 하늘나라로 갈 수 있었던 건 고마운 치매 덕분이라고.. 말기암 환자의 전형적인 육체적 으스러짐을 매일 눈으로 보았는데도 엄마의 표정은 당당했고 또 담담했다. 돌아가신 순간도 참으로 고우셨고 평온하셨다.
엄마, 엄마... 또 불러봅니다. 너무 그리운 엄마, 목소리가 듣고 싶은데.. 아직도 드라마가 끝나지 않아 비현실적인 엄마의 죽음을 인정 못하는 딸은 언제쯤 현실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치매야, 진심 고마웠어. 엄마의 마지막을 지켜줘서. 엄마가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지 않게 해 줘서. 너라는 친구가 엄마에게 왔을 때 절규했던 내가 미안할 정도로 넌 엄마의 가장 든든한 우인이었어. 지나고 나니 보이는 삶의 가치관을 잊지 않으려고 해. 죽을 것같은 고통의 시간이 지나면 그 끝에는 감사함이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