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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g satisfied Sep 23. 2024

24'05 삿포로에서 먹은 것들


독일에 사는 친구가 지난 5월 일본으로 휴가를 왔다. 삿포로에서 일주일 정도 머무른다고 하여 반가운 마음으로 삿포로로 갔다. 4월 독일 방문 때 보고 겨울까지 못 볼 줄 알았는데, 깜짝 만남이 성사됐다.  물리적으로 가장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인데, 올해 가장 자주 만난 친구가 될 것 같다. 겨울 삿포로 인상이 좋아서 삿포로의 봄도 궁금했다. 눈이 없는 삿포로에 실망할까 봐 걱정했는데, 그건 기우였다. 눈이 없는 삿포로는 한적한 도쿄(?) 같아서 좋았다. 오히려 눈 축제가 열리는 겨울보다 사람이 적어서 여유 있게 시내를 돌아다닐 수 있었다. 삿포로를 방문한 5월 말 한국은 이미 무더위가 시작되어 여름옷을 꺼내 입었는데, 삿포로는 여전히 추웠다.  우리나라 (추운) 초봄 날씨와 비슷했다. 지난겨울 삿포로의 추위를 맛본 나이기에 경량패딩을 챙겨가려 했는데, 온 가족이 나를 말렸다. 몰래 히트텍만 하나 챙겼는데, 히트텍이 없었다면 난 아마 동사했을 거다.. ㅎㅎ 일식을 좋아하는 나에게 일본 여행의 목적은 푸드투어다. 물론 시내 구석구석 아기자기함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일본여행하면 역시 먹방이다. 웬만하면 다 맛있지만, 특별히 맛있게 먹었던 식당 위주로 여행의 기록을 남겨본다.

5월, 눈이 없는 삿포로 풍경들
오타루에서 친구와 나(왼), 삿포로 맥주박물관 풍경(오)


1. 삿포로 라일락 축제의 라멘쇼


삿포로에 도착하자마자 먹은 첫 끼는 라멘이었다. 내가 도착한 날이 라일락 축제의 마지막 날이어서 운 좋게 라일락 축제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라멘을 맛볼 수 있었다. 라일락 축제는 매년 라일락 꽃이 만개하는 5월 중순부터 약 2주 동안 삿포로 오도리 공원에서 열리는데, 라일락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라멘쇼다. 전국의 라멘집에서 선별된 이십 개의 라멘 집이 오도리 공원에서 2주 동안 장사를 한다. 라멘 가격은 980엔으로 모두 동일하고, 매표소에서 라멘티켓을 사서 원하는 라멘집 부스로 가서 주문하면 된다. 라멘쇼 세션 옆으로 맥주, 와인, 그 외 다양한 음식들을 파는 부스들도 즐비하다.

나는 생강이 들어간 쇼우(간장) 라멘을 시켰다. 노천에서 쌀쌀한 바람을 맞으며 뜨끈뜨끈 라멘을 먹으니 상당히 맛있었다. 동생과 친구들이 시킨 츠케멘, 마늘라멘, 유자라멘도 맛있었다. 일정상 라벤더 축제의 마지막날 삿포로에 도착해 라멘쇼를 한 번 밖에 즐기지 못한 게 아쉬웠다. 다음 삿포로 여행은 라벤더 축제에 맞춰 와야겠다.

라일락 축제의 라멘부스(왼)와 노천테이블(오)
생강 쇼우 라멘(왼), 동생의 츠케멘(오)
마늘라멘(왼), 유자라멘(오)


2. 토리톤 스시


일본 맛집투어 중 빼놓을 수 없는 메뉴는 스시다. 스시집을 갈 때 항상 어려운 건 어느 스시집을 갈 것인가다. 일본은 선택지가 많지만 그만큼 실패확률도 높다. 지난겨울 여행 때도 성공적인 오마카세를 위해 열심히 구글맵 서칭을 했었다. 결정장애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후라노-비에이 투어 때 만난 가이드님이 토리톤 스시를 추천해주셨다. 오마카세는 아니지만 가성비 좋고, 맛도 좋아 현지인도 많이 찾는 스시집이라며 추천해주셨다. 추운 겨울, 애매한 시간(오후 4시쯤)에 갔는데도 30분이나 웨이팅을 했다. 결론적으로 굉장히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이번에도 스시는 토리톤에서 스시를 먹기로 했다. 같이 간 동생에게 꼭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지난번에는 맥주박물관 근처에 있는 코우세이점을 방문했는데, 이번에는 시로이코이비토 과자공장을 다녀오는 길에 있는 마루야마 지점으로 갔다. 비슷한 시간대에 방문했는데, 이번에는 웨이팅 없이 바로 착석할 수 있었다. 코우세이점이 지점이 마루야마 지점에 비해 더 큰데, 시내에 더 가까워서 그만큼 손님도 더 많은 것 같다. 마루야마 지점은 주거지역에 있어서인지 웨이팅이 많진 않았다.

토리톤스시 마루야마점

토리톤 스시는 얼핏 보면 회전초밥집 같아 보이지만, 회전초밥집은 아니고 즉석초밥(?) 집이다. 키오스크로 메뉴를 주문하는 즉시 셰프님들이 스시를 만들어 준다. 가끔 회전초밥집을 가면 생선이 말라있는 경우가 있는데, 토리톤 스시는 주문 즉시 바로바로 조리해 나오기 때문에 신선한 스시를 맛볼 수 있다. 그리고 토리톤 스시의 좋은 점 중 하나는 한국어 메뉴가 있다는 점이다. 주문은 아이패드로 하는데, 한국어 지원이 된다. 물론 특수부위 같은 경우 번역이 잘 안 되는 경우도 있지만, 사진이 제공되기 때문에 주문이 어렵지 않다.

지난번 연훈과 방문했을 때 32 접시를 먹고서 스스로 굉장히 놀랐는데, 이번에는 사람답게 24 접시를 먹었다..ㅋㅋ 토리톤 스시의 큰 장점 중 하나는 가성비다. 참치뱃살, 성게알, 장어 등등 배가 터질 때까지 시켜 먹어도 만 엔 전후로 나온다. 그렇다고 퀄리티가 떨어지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퀄리티도 상당히 훌륭하다. 토리톤 스시는 다음 삿포로 여행 때도 재방문할 계획이다. 애매한 오마카세에 가서 모험을 하기 무서울 때는 토리톤 스시로 가자!

토리톤 스시에서 먹은 스시들
토리톤 스시에서 먹은 스시들

https://maps.app.goo.gl/WjzDDo4kgKLepAGZ6?g_st=com.google.maps.preview.copy


3. 수프카레-트레저


삿포로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 있다. 바로 수. 프. 카. 레. 삿포로 수프카레하면 가라쿠이지만.. 가보지 못했고 앞으로도 못 갈 것 같다. 왜냐면 늘 줄이 길기 때문이다. 가라쿠 대신 가는 곳이 트레저 수프카레집인데, 이곳은 가라쿠의 자매식당이다. 그래서 두 집의 맛이 비슷하다는 평들이 많다. 트레져는 시간대를 잘 맞추면 줄을 안 서도 된다. 올 겨울 삿포로 여행 때도 왔었는데, 맛있어서 이번에도 들렸다. 야채 수프카레, 함박 수프카레, 닭고기 수프카레 등등 여러 수프카레를 먹어봤는데, 개인적으로는 닭고기 수프카레가 제일 맛있다. 수프카레를 굳이 말로 묘사하자면 큼지막하게 썬 야채와 고기가 들어간 묽은 카레국(?)인데, 확실히 한국에서 먹는 카레와는 다르고 수프카레만의 묘한 매력이 있다. 수프카레는 맵기 조절이 되는데, 트레저는 1단계(안 매움)부터 40단계(매우 매움)까지 있다. 이 날 나는 4단계 맵기로 먹었는데, 상당히 매콤했다. 트레저에 두 번이나 방문했지만, 트레저를 삿포로 최고의 수프카레라고 말하긴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도 식당마다 된장찌개 맛이 다 다르듯이, 수프카레도 집집마다 특유의 맛이 있다. 삿포로에 올 때마다 새로운 수프카레집 도장 깨기를 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닭고기 스프카레
야채 스프카레(왼), 삿포로 클래식(오)

https://maps.app.goo.gl/M1vsxxXQn7hW4Qm77?g_st=com.google.maps.preview.copy


4. 모츠나베 전골 야마야


날씨가 예상했던 것보다 추워 국물 요리를 찾아 헤맸다. 그러다 가게 된 곳이 모츠나베 전골집이다. 야마야는 한국에도 체인이 있는 집이지만, 삿포로 시내에서 이자카야를 빼고 나니 갈만한 모츠나베 집이 거의 없었다. 결론적으로는 아는 맛이고, 한국에서도 맛볼 수 있는 맛이지만 맛있었다..ㅋㅋ 오차즈케가 유독 더 맛있게 느껴진 건 기분 탓이겠지. 이 날도 바람이 많이 불어서 오전 내내 바람을 맞으며 돌아다니다 보니 뜨끈뜨끈한 국물이 필요해 야마야로 갔다. 추운 날 삿포로에 갔는데, 담배 냄새나는 이자카야가 싫다거나 점심에 모츠나베를 먹고 싶다면 야마야를 추천한다. 전골 맛이야.. 재료도 신선하고, 나는 워낙 대창러버이기에 쉴 새 없이 행복하게 먹은 기억 밖에 없다. 점심에 오픈런을 했는데,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앉고 나니 입구에 줄이 쭉 늘어섰다.

야마야에서 바라본 삿포로 시내 풍경
오차즈케(왼, 중간)와 모츠나베전골(오)

https://maps.app.goo.gl/Ug1nRD9XtVFWA9HQ9?g_st=com.google.maps.preview.copy


5. 소바야 마루키(모밀집)


삿포로에서의 마지막 식사는 숙소 근처에 있는 작은 모밀가게에서 했다. 이 집은 기본에 충실한 집이다. 나는 판모밀에 미니 텐동과 타마고 튀김을 시켰다. 메인 요리인 모밀은 기본에 아주 충실한 맛으로 정말 맛있었다. 쯔유소스에 무를 듬뿍 넣고 계란토핑까지 커스텀해서 맛있게 먹었다. 튀김은 생각보다는 눅눅했다. 전에 노보리베츠의 유명한 모밀 집에서도 튀김이 생긴 것과 다르게 좀 눅눅해서 실망한 기억이 있다. 이게 북해도 튀김 스타일인가 싶기도 하다. 그래도 살짝 간이 베어 짭조름한 밥에 튀김을 얹어 먹으니 먹을만했다. 그리고 마지막은 삿포로 클래식 한 잔. 삿포로 클래식은 정말 희한하게 목 넘김이 부드럽다. 조금 오버를 보태자면 마치 구름으로 만든 맥주를 마시는 기분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침이 고인다. 조만간 다시 가야겠다. 삿포로 클래식 마시러.

판모밀과 미니 텐동(왼), 그리고 삿포로 클래식(오)

https://maps.app.goo.gl/o2AwSvY3hGzMvr13A?g_st=com.google.maps.preview.co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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