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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나다 Apr 07. 2024

딴짓하는 즐거움

합리적이고 유용한 일만 해야 한다는 압박에 대하여

 나는 오로지 재미와 취향 때문에 남들이 보기에 쓰잘데 없어 보이는 일들을 즐겨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모든 것이 압축되고 생략된 채, 생산성과 효율성을 중시하고, 엑기스만을 취하려고 혈안이 된 고효율의 시대에서, 나의 이러한 비효율의 극치로 치닫는 행동들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 대단히 비합리적이고 시간낭비처럼 비쳤을 것이다.



(하지만 대단히 효율적으로 보이는 그들도 sns나 유튜브 시청 등으로 시간 때우기를 하는 건 마찬가지인 게 인생의 재밌는 점이다.)



 어느 순간 나도 굴복하여 오로지 재미를 위한 일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이런 것들은 순전히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았으며, 자본주의 세계에서 돈을 가져다주지도 않았다.



 내가 제일 먼저 끊었던 행동은 옷 만들기였다. 미싱방은 수많은 천들이 방치된 채 기약 없는 기다림으로 봉인되었다. 중고로 산 공업용 미싱과 오버록기는 이미 먼지에 뒤덮여 화석이 되어가고 있었다. 밤을 새 가며 옷을 만들어냈던 과거가 아주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그 외에 끊은 행동들을 나열해 보자면, 그림 그리기, 산책하기, 인스타 그림계정 중지, 책리뷰 쓰기, 팟캐스트 방송진행 등이었다. 한마디로 돈 버는 게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들은 일절 다 끊었다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돈 버는 데 도움이 되는 행동들로 나의 하루를 꽉 채웠는데, 예를 들자면 부동산 공부, 티스토리 블로그 글쓰기, 유튜브 공부하기, 부업정보 알아보기 등등이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독서조차 실용적인 독서로 꽉 채웠다. 좋아했던 분야인 심리학, 뇌과학, 인간관계, 자기 계발 등의 분야에서 돈 버는 데 도움이 되는 기술인 부동산, 경제서, 마인드, 블로그 관련 책들로만 골라 읽었다.



 앞으로 나도 생산성 있는 고효율의 인간으로 거듭나고자 각성하기로 마음먹었다. 하루를 돈 벌 수 있는데 도움 되는 행동들로 꽉 채우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몇 개월을 달리다 우연히 도서관에 간 날이었다. 예약이 밀려 있던 절판책을 서둘러 다 읽고 반납 예정일보다 6일 일찍 반납하면서 뿌듯함을 느꼈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 그동안 했던 손필사의 방식을 생략하고 책을 읽으면서 노트북으로 한글 문서에 타이핑하는 방식으로 필사했다. (반납했던 절판책은 너바나 님의 '나는 부동산과 맞벌이한다'라는 책이었다.)



 반납일보다 6일 일찍 반납했다는 사실에 한껏 상기된 채 뿌듯한 마음으로 도서관 내부를 둘러보던 중, 신간도서 코너에서 한 책을 발견했다.



 사실 몇 개월간 재테크나 부동산 관련 책들만 읽었던 터라 다른 분야의 책장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기에, 이 책이 신간코너에 없었다면 발견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무심코 꺼내 읽다가, 심장이 뛰는 걸 느꼈다. 오랜만에 느껴본 감정이었다. 그 책에 있는 모든 문장을 죄다 필사하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느꼈다. 이 책과 비슷한 느낌의 책으로는 '불확실한 날들의 철학'이란 책이 있는데, 이 책도 참 좋아한다. 이 책도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이었는데 오랜만에 이 부류의 책을 만난 기분이었다.)



 생존을 위한 삶에 급급하다 보니, 열심히 사는 와중에 잠깐씩 샛길로 새고, 딴짓할 때의 달콤함이 두 배가 되어 나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생존에 충분한 필요이상의 돈을 벌게 된다면 누구라도 생존 이상의 더 고귀한 가치와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게 마련이다. 생각해 보면, '돈'을 충분히 가진다는 건, 생존 이외에 우리 삶에서 가치 있는 것들을 깊이 사유하고 누릴 수 있는 기회가 확장된다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궁핍하고 결핍이 가득찬 삶을 살아가면서 고귀한 가치에 몰두할 수가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돈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싶다면, 돈을  필요 이상으로 넘치게 벌어야 한다. 돈에 대한 갈증과 결핍이 채워지고, 더 이상 돈을 많이 버는 일에 급급하지 않을 때, 우리는 더 고귀한 가치에 집중할 수 있다. 그제야 진정한 삶의 의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잠깐씩 딴짓하는 즐거움은 갈증을 채워주는 단비처럼 적잖은 즐거움을 준다. 하나뿐인 삶을 생존을 위해 돈을 버는 데 급급하며 살다 끝마친다면, 그건 너무 슬픈 삶이 될 것 같다. 그러므로 열심히 살되 가끔씩 딴짓도 하자. 때론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일들이 나의 영혼을 다채롭게 채워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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