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동범 Mar 02. 2022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_프롤로그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_01






선명한 어둠이었다. 끝도 없이 펼쳐진 자작나무와 가문비 숲을 온통 휘감고 있는 것은, 선명한 어둠이었다. 백야는 마치 선명한 빛이 머물고 있는 저물녘의 어느 순간처럼, 그러나 때로는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하는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펼쳐지기 시작했다. 백야. 그것은 낮의 빛도 아니고 밤의 어둠도 아닌 모습으로 극지의 공중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어둠이 몰려오고 있었지만, 어둠은 온전히 제 몸을 드러내지 못하고 저녁 주변을 어슬렁거리고 있을 뿐이었다. 어둠은 그저 신기루처럼 밤하늘을 배회하며 새벽을 지나고 있을 뿐이다. 


백야가 펼쳐진 툰드라를 달리는 것은 몽환의 순간을 지나는 것이다. 백야의 빛은 때로 초저녁의 그것처럼, 때로는 어둠이 물러가지 않은 새벽녘의 그것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저녁을 지나 아침이 올 때까지,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개와 늑대의 시간’은 계속된다. 그것은 마치 깨어있는 것도, 잠든 것도 아닌 것처럼 몽롱하게 내 의식을 헤집고 선명한 어둠을 흐느적거린다. 환영과도 같은 시간을 지나치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자세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것은 알래스카라는 극과 어우러져 매혹의 한순간으로 여전히 내게 남아 있다.


Ⓒ조동범_백야


나는 오랫동안 극지 여행을 꿈꿔왔다. 극지는 그 어떤 시원(始原)과도 같은 감각으로 내게 다가오는 것이었고, 나는 그곳에 가기를 언제나 희망했다. 원시의 생명성과 미지라는 아득함이 만들어내는 울림. 그것은 나에게 충분한 떨림이자 흥분이었다. 하지만 극지로 떠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오랜 망설임과 결심을 필요로 했다. 극지까지의 여정은 낯선 느낌으로 다가왔고, 그곳을 다녀온 사람조차 드물었다. 알래스카에 다녀온 여행자를 쉽게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알래스카에 대한 정보마저 부족했으니, 알래스카 여행을 선뜻 꿈꾸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극지로의 여행은 생각처럼 그렇게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시애틀을 경유하여 앵커리지나 페어뱅크스까지 가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매우 간단한 일일 수 있다. 물론 경유 시간을 포함하여 스무 시간 가까이 걸리는 여정을 쉽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한 차례 경유하는 비행 스케줄은 우리나라에서 스페인까지 가는 여정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이기도 하다. 알래스카로 떠나는 일은 이처럼 어려운 것만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결국 알래스카까지 가는 것은 물리적인 거리감보다 심정적인 거리감이 더 크게 작용을 하는 것이리라. 


백야. 그것은 낮의 빛도 아니고 밤의 어둠도 아닌 모습으로
극지의 공중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그날, 알래스카라는 말을 들었던 순간의 흥분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예정에 없던 여행지였지만 알래스카는 오래 전부터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던 곳이었다. 더욱이 남극과 그린란드, 그리고 캐나다 옐로나이프와 같은 극지로의 여행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알래스카행 제의가 들어왔을 때, 나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단박에 그곳으로의 여행을 결정했다. 이번 기회에 가지 않는다면 ‘극’을 향한 나의 꿈이 또 다시 몇 년 유예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는 망설일 수 없었다. 


시애틀을 거쳐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가는 길은 꽤 먼 길이었다. 환승 시간을 포함하여 스무 시간 가까이 걸리는 여정은 ‘극’이 전달하는 어감처럼 먼 곳에 있는 아득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아득함의 끝에 호시노 미치오가 있었다. 사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알래스카 자연 사진으로 유명한 호시노 미치오의 작품을 직접 보는 것이었다. 십 대에 알래스카에 처음 다녀간 이래 평생을 알래스카에 살며 알래스카의 자연 사진을 찍다 생을 마감한 호시노 미치오의 삶에는 그 어떤 경외의 세계가 녹아 있다. 나는 그의 사진과 삶이 궁금했고, 알래스카의 무엇이 그토록 그를 매료시켰는지 알고 싶었다. 촬영 여행 도중 곰의 습격을 받고 죽음에 이른 호시노 미치오의 삶은 마치 하나의 상징처럼 특별한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나를 매혹시켰다. 그의 작품은 알래스카대학교 페어뱅크스캠퍼스에 소재한 북극박물관(University of Alaska Museum of the North)에 상설 전시되어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박물관 복도 한편에 몇 점 걸려 있는 것이 전부여서 다소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알래스카대학교에서 근무하는 한국인 교수로부터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은 호시노 미치오의 더 많은 작품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지만 아쉽게도 이번에는 기회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나 북극박물관에서 다소나마 그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그리고 그를 매혹시켰던 알래스카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감동은 충분했다.   


Ⓒ조동범_알래스카 니닐칙


알래스카의 6월부터 8월은 여름이고, 따라서 그곳에도 꽃이 피고 녹음이 우거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조금은 의외의 마음을 갖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여행을 다녀와서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도 알래스카가 얼마나 추웠냐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극’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때 보통 추위와 빙하를 먼저 떠올리지만 사실 알래스카의 여름은 16도 내외의 선선한 가을 날씨여서 상당히 쾌적할 뿐만 아니라 활동하기에도 매우 좋다. 백야 기간이기 때문에 오로라를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을 제외하면 여행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 바로 알래스카의 여름이다. 


알래스카는 아름다움 이면에
상실한 고향의 비극을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앵커리지를 출발하여 호머, 위디어, 스워드, 팔머, 와실라, 타키트나, 디날리, 네나나 등을 거쳐 페어뱅크스에 도착하는 여정. 길 위의 여정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목적지인 곳. 내가 지나온 많은 곳들은 각각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지만 길 위의 여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단 하나의 알래스카의 이미지로 나에게 각인되어 있다. 이번 여행에서 앵커리지와 페어뱅크스 이외의 지역 중에서 유일하게 묵은 곳이 있는데, 그곳은 알래스카의 땅끝마을이라고 불리는 호머였다. 사람이 살고 있는, 대륙의 가장 남서쪽 끝에 있는 마을. 바다와 빙하가 보이는 작은 마을 호머. 그곳에서 보냈던 낮과 밤의 순간이 알래스카의 다른 곳보다 특별할 것은 없었지만, 호머의 클럽 Alice's Champagne Palace에서 만난 풍경은 인상적인 느낌으로 남아 있다. 한적한 마을의 클럽에 모여든, 브라스밴드의 흥겨운 연주를 듣고 춤을 추던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그렇게 알래스카의 땅끝에 모여, 저물지 않는 밤을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고 있었다. 


알래스카는 그곳을 찾는 우리나라 여행객 자체가 많지 않은데, 그나마 알래스카를 방문하는 여행객의 대부분은 앵커리지 인근에만 잠시 머물다 간다. 그래서 페어뱅크스와 땅끝마을 호머까지 방문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특히 호머를 취급하는 여행 상품은 전무하기 때문에 그곳을 방문하는 우리나라 여행자는 극소수이다. 이처럼 알래스카는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낯설지 않은 곳이지만 정작 알래스카는 우리의 그리움 너머에 존재하는 것처럼 머나 먼 미지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호머에서의 짧은 하룻밤은 더욱 특별했고, 페어뱅크스에서 만난 아름다운 풍경과 그곳 사람들과의 잊을 수 없는 만남은 오래도록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조동범_알래스카 페어뱅크스


여행은 때로 특별한 것들을 보고 들은 기억보다 작고 사소한 인연이 더 기억에 남는 법이다. 물론 서프라이즈 빙하나 타키트나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마주한 데날리 산의 압도적인 아름다움 등은 나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한 것이었지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 내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는 것은 그곳에서 만난, 잊을 수 없는 인연들이다. 페어뱅크스의 작은 바 MECCA에서 만난, 나에게 ‘아리랑’을 불러주고 코를 비비는 전통 인사를 건네던 에스키모들(그곳에서 만난 모든 에스키모들은 동양인인 나에게 언제나 ‘우리는 가족’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곳의 성실하고 상냥한 바텐더 키산드라(?), 나에게 정태춘 LP를 선물한 레코드샵 주인(세상에! 알래스카에서 정태춘이라니!), 지역 공동체 헌책방 ‘forget me not’, 네나나에서 작은 아트샵을 운영하고 있던 한 가족의 평화로운 모습 등 알래스카의 일상과 어우러진 만남이 유독 나의 마음을 사로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특히 페어뱅크스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페어뱅크스 한인 회장님과 낸시 여사님 부부를 비롯한 한인들의 호의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알래스카를 떠나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뉴욕 에스키모(에스키모는 ‘생고기를 먹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일부 에스키모들은 자신들이 이누이트로 불리기를 원하는데, 이 말은 그들의 언어로 ‘사람’이라는 뜻이다. 다만 이 책에서는 우리에게 익숙한 에스키모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다.) 미닉에 대한 이야기를 듣거나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미닉이 그린란드 출신의 에스키모이기는 하지만 미닉의 이야기가 알래스카에도 전해지지 않았을까라는 기대를 했었다. 탐험가로 알려진 피어리에 의해 미국으로 끌려와 짧은 생을 비참하게 마감한 미닉과, 뼈와 살이 발린 채 박물관 유리 전시실에 전시되었던 에스키모들의 비극적인 고통의 흔적을 찾고 싶었다. 이제는 알래스카에도 그 땅의 주인이었던 에스키모들은 이방인이 되어 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알래스카는 아름다움 이면에 상실한 고향의 비극을 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동범_알래스카 엑시트빙하


아마도 이 책을 읽는 많은 분들이 극지로의 여행을 꿈꾸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극지는 이처럼 여전히 먼 곳에 있는 미지이다. 하지만 극지로의 여행을 꿈꾸고 있다면,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은 일이다. 물론 적지 않은 비용과 짧지 않은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극지로 떠나는 것은 불가능한 그 무엇이 아니다. 무엇보다 알래스카로 떠난다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이 분명하다. 나는 알래스카에서 돌아와서 한동안 빙하가 전달하는 경이로운 감동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이 책을 들고 올 여름, 불현듯 다가오는 그리움처럼 그들과 다시 만나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히 희망한다.



조동범,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가쎄, 2018) 중에서







조동범

매일매일 읽고 쓰며 호숫가를 산책하는 사람이다.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은 이후 몇 권의 책을 낸 시인이자 작가이다. 시와 산문, 비평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며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보통의 식탁>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김춘수시문학상, 청마문학연구상, 미네르바작품상, 딩아돌하작품상 등을 받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