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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동범 Apr 25. 2023

<바그다드 카페>,
켜켜이 쌓인 시간의 애틋한 그리움

03_강릉 <바그다드 카페>







바다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도시들이 있다. 부산이나 인천, 제주 등의 도시는 언제나 바다와 함께 떠오르는 곳이다. 강릉 역시 바다를 떠올릴 때면 늘 생각나는 도시이다. 특히 그중에서 강릉은 그리움처럼 출렁이는 바다의 이미지와 가장 맞닿아 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인근 속초와 양양 해변이 핫플레이스가 되었지만 7번 국도를 따라 이어진 해변과 바다를 상징하는 가장 강력한 기호는 여전히 강릉이다. 깊고 푸른 동해를 따라 여러 도시가 연이어 자리 잡고 있지만 동해의 해변은 모두 강릉으로 수렴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바다를 떠올릴 때 생각나는 도시들이 있다.


그런 만큼 강릉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도시인데, 강릉에서의 추억 한 조각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도 드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도 강릉 바다는 다른 곳의 바다와는 다른 질감의 추억처럼 다가온다. 그것은 단순한 과거의 사건이나 기억과는 다른, 애틋함과 그리움, 설렘과 같은 감정을 동반하며 와닿는다. 요즘 강릉은 커피 도시라는 명성을 얻고 있지만, 강릉에는 단순히 커피나 바다와 같은 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매력이 있다. 그것은 마치 잊히지 않는 그리움처럼 강릉이라는 매혹을 우리 앞에 펼쳐놓는다.


Ⓒ조동범


그런데 내게 강릉은 또 다른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도시이기도 하다. 사실 내가 강릉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바다도 커피도 산도 아니다. 내게는 어느 도시에나 있을 법한, 오래된 선술집 한 곳이 강릉이라는 상징이 되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오랜 세월이 그대로 내려앉은 듯한 모습은 그만큼의 세월이 녹아 있는 추억처럼 애틋하고 고요하게 펼쳐져 있다. 비가 오는 날의 모습과 저물녘의 서로 다른 모습 속에서도 한결같은 아름다움으로 서 있다. 무심한 듯 물끄러미 바라보는 오랜 친구의 눈길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이다.


<바그다드 카페>는
그 자체가 강릉의 모든 아름다움인 것처럼 다가오는 공간이다.


강릉역에서 멀지 않은 한적한 도로변에 있는 <바그다드 카페>가 바로 그곳이다. <바그다드 카페>는 그 자체가 강릉의 모든 아름다움인 것처럼 다가오는 공간이다. 핫플레이스는 아니지만 한 번 <바그다드 카페>에 가본 사람이라면 그곳만의 독특한 매력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는 그런 곳이다. 동네 주민들이나 단골들만 알고 찾는 곳이기에 나만의 비밀 공간 같은 느낌도 든다. 누군가 인터넷 공간에 ‘빈티지 올드 스쿨’이라거나 클래식 바(bar)라고 <바그다드 카페>를 설명한 것처럼, 낡은 듯 세월을 견딘 공간이 감성을 자극하는 곳이다. 하지만 ‘빈티지 올드 스쿨’이나 클래식 바(bar)라는 설명만으로 <바그다드 카페>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보여줄 수는 없다. 


Ⓒ조동범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래도록 한 자리에서 묵묵히 세월을 견디는 존재들이 있다. 시간과 함께 늙고 낡아가면서도 고유의 매력을 간직한 채 우리의 삶에 아름다움으로 남는 그런 것들 말이다. 특히 그것이 특정한 공간인 경우, 공간과 함께 세월을 견딘 시간과 추억으로 인해 그것은 우리의 삶 자체가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하나의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삶의 일부분이 상실되는 아픔이기도 하다. 우리의 추억은 대부분 공간을 매개로 추억 속에 남는다. 그렇다고 아무 공간이나 추억의 조각이 되지는 않는다. 공간에 특별한 시간과 사건이 덧씌워지거나 공간 자체가 지니고 있는 특별함이 있는 경우라야 추억의 힘이 커지는 법이다. <바그다드 카페>는 공간 자체가 가지고 있는 특별함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곳인데,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공간의 특별함이 스며들어 잊을 수 없는 시간과 사건이 되는 경이로움을 경험하게 된다.


Ⓒ조동범


영화 <바그다드 카페>를 떠올린다. 사막의 황량함과 무미건조한 일상이 삶의 환희로 뒤바뀌는 마법 같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영화. 강릉 <바그다드 카페>는 여러분이 짐작하는 것처럼 영화 <바그다드 카페>에서 가져온 이름이다. 2002년 지금 장소에 처음 문을 열었으니 20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자신의 젊음을 온전히 바친 카페지기의 삶에 고마운 마음마저 든다. 어린 시절에 강릉으로 이주한 이래 대학 시절을 포함한 이후의 삶 모두를 같은 곳에서 이어가는 시간은 어떤 것일까? 어제인 듯 펼쳐진 강릉에서의 삶은 지루함과는 다른, 가슴 먹먹한 평온함일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조동범


누구나 그리움처럼 마음속에 담아둔 장소가 있을 것이다. 내게는 <바그다드 카페>가 그런 곳이다. 머나먼 동쪽 끝 바닷가 도시에 있기에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언제나 마음에 담고 그곳을 그리워하고 있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이기에 그런 마음이 더 들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곳에는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다. 그런데 <바그다드 카페>는 어떤 면에서는 평범함이 가장 큰 매력인 곳이기도 하다. 사실 그곳은 카페라기보다 선술집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동네 주민들이 편하게 술잔을 기울이는 곳인 만큼 다채로운 메뉴 역시 평범하기 그지없다. 손으로 쓴 메뉴판에 적힌, 과일, 마른안주, 오징어볶음, 계란말이, 두부김치 등의 조합도 낯설고 맥주와 위스키는 물론이고 소주까지 마실 수 있다는 점도 근사함과는 거리가 먼 듯싶다. 하지만 꾸미지 않은 그런 편안함은 <바그다드 카페>의 분위기와 어우러져 또 다른 매력을 만들어낸다. 


Ⓒ조동범


내게 강릉은 <바그다드 카페>의 도시로 기억된다. 담쟁이로 뒤덮인 1층 건물과 비밀스러운 느낌의 간판과 철문. 그리고 창밖으로 새어 나오는 전등의 따스한 빛과 골목. 밖에서 바라본 <바그다드 카페>는 가슴 떨리는 이야기를 감춘 듯한 신비한 모습이다. 그것은 마치 삶의 덧없음 속에 발견한 애틋함과도 같다. 그리하여 <바그다드 카페>는 작은 도시의 한적함을 배경으로 완벽한 어느 순간을 만들어내는 것만 같다. <바그다드 카페>의 이런 모습은 실내로 들어서도 변함없이 전개된다. 문을 여는 순간 온몸을 휘감는, 오래된 것들의 편안함과 정서적 충만함의 감흥은 이내 잊고 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영화 <바그다드 카페>의 모습과 비슷한 듯 다른 모습이지만 삶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그 둘은 서로 닮아 있다. 켜켜이 쌓인 시간과 눅진한 삶의 매혹이 가득한 그곳에 언제 다시 가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강릉의 평화로운 시간 속에 언제나 <바그다드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 언제나 그리운, 내 사랑 강릉 <바그다드 카페>.


-이 글은 월간 <해군> 2022년 11월호에도 수록되었습니다.



카페 <바그다드 카페>

주소: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 2883-2

전화: 033-645-4252







조동범

매일매일 읽고 쓰며 호숫가를 산책하는 사람이다.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은 이후 몇 권의 책을 낸 시인이자 작가이다. 시와 산문, 비평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며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보통의 식탁>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김춘수시문학상, 청마문학연구상, 미네르바작품상, 딩아돌하작품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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