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동범 May 06. 2023

킨포크 라이프

픽션 에세이_보통의 식탁_04






수평선 너머로 노을이 번진다. 바다는 고요하고 태양은 천천히 자신의 몸을 거두어들이며 낮은 음성처럼 수면을 어루만진다. 그것은 마치 장엄한 미사처럼, 저녁의 모든 순간들을 압도하며 펼쳐진다. 사람들은 태양이 수평선 너머로 침몰하는 순간을 바라보며 짧은 탄성을 내뱉는다. 당신은 저물녘의 순간은 언제나 감동적이라고 천천히 중얼거린다. 당신은 언젠가 저물녘이 가진 천 개의 얼굴에 대해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저물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바닷가에서 사는 삶은 커다란 축복이라고 말했었다. 


어쩌면 킨포크 라이프라는 말은 전원에 대한 환상이 만들어낸 허위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 진짜 킨포크 라이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정원에서 사람들은 바다를 바라보고 테이블에 차려놓은 저녁 식사를 한다. 바람은 평화롭게 불어오고, 테이블보는 가볍게 펄럭이며 저물녘에 깔린 느린 햇살을 머금는다. 우리는 당신에게 수없이 많은 질문을 하고, 또 한다. 바닷가 시골 마을에서의 삶은 행복하냐고…. 이렇게 평화로운 곳에서 살고 싶다고…. 그리고 모든 것을 비우고서 도시를 떠난 삶에 대해 묻고, 또 묻는다. 그러나 이런 곳에 살아서 좋겠다는 말이 온전한 진심만은 아님을 당신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pixabay


당신은 그 모든 것을 생각하고 떠난 것이 아니었다고 대답한다. 그리고 도시를 떠난 삶의 지난함에 대해 당신은 오래 이야기한다. 시골살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낭만의 허무맹랑함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할 때에도 당신의 눈은 평화롭고 고요하게 빛나는 것을 나는 보았다. 당신의 대답에 누군가는 실망하기도 했고, 누군가는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했지만, 분명한 것은 당신이 만만치 않은 삶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이곳에 사는 일상이 언제나 오늘처럼 낭만적이진 않다고 말한다. 오히려 낭만보다 땀을 흘리는 노동에 가깝다고 말한다. 그러나 작게나마 밭을 일구고 풀을 뽑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짧게 느껴진다고 말할 때 당신의 표정은 분명 밝게 빛났다. 


Ⓒpixabay


친구들을 초대하여 바다를 바라보며 함께 저녁을 먹는 시간은 언제나 평화롭다. 식탁 위에 놓인 음식들은 소박하지만 친구들의 웃음은 잔잔한 파도처럼 출렁인다. 말을 하지 않아도 무엇이든 다 아는 사이처럼, 말없이 바다를 볼 때도 친구들 사이에는 단단한 연대가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가 떠나고 나면 당신과 당신의 가족만이 오롯이 홀로 남겨질 것이다. 나는 문득 당신이 조금은 외로워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생각을 이내 거두어들인다. 외로움이 당신의 몫일 거라는 생각은 얼마나 자의적이고 오만한 판단인가. 


당신의 삶은 요즘 유행하는 '킨포크'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끈덕진 삶이 이어지는 당신의 하루하루를 그저 킨포크라는 그럴 듯한 말로 설명하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다. 어쩌면 킨포크 라이프라는 말은 전원에 대한 환상이 만들어낸 허위일지도 모른다. 킨포크 라이프라는 관념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 우리들만의 킨포크 라이프를 공고히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속에 진짜 킨포크 라이프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삶이든 나의 삶이든 절박하고 끈덕진 삶의 한 부분이라는 점에서 모든 삶은 소중하다. 


바람이 불어온다. 테이블보가 가볍게 일렁이며 오늘 저녁을 마무리하려 한다. 당신의 등 뒤로 저물녘의 태양이 이제 사라지려 한다. 당신은 문득 뒤를 돌아 출렁이는 바다를 오래도록 바라본다.




조동범, <보통의 식탁>(알마, 2018) 중에서







조동범

매일매일 읽고 쓰며 호숫가를 산책하는 사람이다.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은 이후 몇 권의 책을 낸 시인이자 작가이다. 시와 산문, 비평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며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보통의 식탁>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김춘수시문학상, 청마문학연구상, 미네르바작품상, 딩아돌하작품상 등을 받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비건이라는 삶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