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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동범 Mar 02. 2022

심야식당

픽션에세이_보통의 식탁_01







저녁이 펼쳐지면 당신은 심야 식당 문을 열고 간판 등을 켠다. 식당 문을 열면 어느새 저녁이 그 안에 모여들어 웅성거리는 것만 같다. 저녁은 해지는 산 너머에서나 빛이 물러서는 골목에서 시작되지만, 심야 식당 문을 열면 저녁은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 두런거리고 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면 저녁의 눅진한 감각이 발끝에 치이는 것만 같다. 당신은 그런 저녁을 바라볼 때마다 저녁이 주는 애틋한 감정을 떠올리곤 한다. 저녁은 원래 그런 것이었다고 읊조린다. 탁자를 지나 천천히 주방으로 향하는 당신의 등은 어쩐지 그런 저녁과 닮은 것만 같다.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등과
늦은 시간에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의 등은 묘하게 닮았다.


심야 식당 간판이 따스하게 빛을 발하며 골목의 어둠을 내몬다. 어둠은 제 영역을 저만치 물리고 심야 식당 창가를 서성인다. 심야 식당 간판이 켜질 때 저녁은 비로소 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기 시작한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골목을 지나 지하철역을 향해 바쁘게 이동하고, 고깃집 불판은 뜨겁게 달아오른다. 조용하던 골목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소주잔이 일순배 돌고, 불콰하게 달아오른 취객들의 음성이 골목 저편에서 들려온다. 그것은 마치 환청처럼 잠시 들리는 듯하다 이내 잠잠해지기를 반복한다.


Ⓒpixabay


당신은 주방에서 감자와 파를 다듬고 식기를 꺼내고 가스레인지를 켠다. 솥에는 오늘 저녁에 사용할 육수가 끓고 있다. 경건한 미사의 한순간처럼 솥은 묵묵히 뜨거움을 토해낸다. 뜨거움을 바라보는 당신은 미사를 집전하는 신부처럼 고요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그런 점에서 당신은 경건한 순간을 예비하기 위해 심야 식당의 문을 여는 것 같다. 한 끼 식사를 앞에 둔 손님들 역시 경건함을 느끼기는 매한가지일 것이다.


당신은 한 끼 식사를 앞에 두고 앉은 손님들을 볼 때마다 음식과 하나가 된 완전체를 떠올리곤 한다. 당신은 음식이 손님 앞에 놓였을 때에야 비로소 음식의 모든 것이 완성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당신의 심야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심야 식당 그 자체다. 당신은 손님들이 당신이 만든 음식을 먹을 때의 표정을 여전히 설레는 마음으로 훔쳐보곤 한다. 손님이 젓가락을 들어 당신이 만든 음식을 집어 올리면, 젓가락 끝에 닿은 음식의 질감이 당신에게까지 와 닿는 것만 같아 아득한 기분이 들기까지 한다.


밤이 깊어갈수록 심야 식당을 찾는 손님들은 대개 혼자다. 그들은 당신에게 말을 거는 법도 없이 묵묵히 식사를 하고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당신은 문을 나서는 손님들의 등을 바라보며 그 사람이 어디로 가는 지 짐작해보곤 한다. 대부분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지만, 일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서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pixabay


고된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등과 늦은 시간에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의 등은 서로 묘하게 닮았다고 당신은 생각한다. 당신의 심야 식당에 오는 사람들은 마치 외로움을 온몸으로 견디기라도 하듯 혼자인 경우가 유난히 많다. 당신은 그들에게 말을 건네지 않는다. 당신은 묵묵히 음식을 만들고, 그들은 말없이 당신의 음식을 먹을 뿐이다.


심야 식당 간판 주변으로 조금 더 깊어진 어둠이 두런거린다. 손님이 없을 때면 당신은 의자에 앉아 한강의 소설이나 박준의 시집을 읽기도 한다. 책을 읽을 때 당신은 음식을 할 때만큼이나 평화롭고 행복해 보인다. 당신은 시와 소설이 음식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언어가 모여 시와 소설이라는 집이 되는 것처럼, 각각의 재료가 모여 음식이라는 하나의 집을 이루는 것이라고 당신은 생각한다. 


어둠이 깊어질수록 골목 저편에서 들려오던 취객의 왁자한 소리도 잦아든다. 당신은 문득 창문 너머에 펼쳐진 어둠을 바라본다. 심야 식당 간판이 어둠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 것인지, 어둠이 심야 식당 간판 주변을 서성이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당신은 불현듯 빛과 어둠의 경계가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 심야 식당의 문이 열리고, 심야 식당의 깊은 고요를 향해 어둠처럼 손님이 들어선다.



조동범, <보통의 식탁>(알마, 2018) 중에서







조동범

매일매일 읽고 쓰며 호숫가를 산책하는 사람이다. 문학동네신인상을 받은 이후 몇 권의 책을 낸 시인이자 작가이다. 시와 산문, 비평과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고 있으며, 대학 안팎에서 문학과 인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실천하며 길 위의 삶을 살고 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시집 <심야 배스킨라빈스 살인사건> <카니발> <금욕적인 사창가> <존과 제인처럼 우리는>, 산문집 <보통의 식탁> <알래스카에서 일주일을> <나는 속도에 탐닉한다>, 인문 교양서 <팬데믹과 오리엔탈리즘> <100년의 서울을 걷는 인문학>, 글쓰기 안내서 <부캐와 함께 나만의 에세이 쓰기> <상상력과 묘사가 필요한 당신에게>, 시창작 이론서 <묘사 진술 감정 수사> <묘사> <진술>, 문학평론집 <이제 당신의 시를 읽어야 할 시간> <4년 11개월 이틀 동안의 비> <디아스포라의 고백들>, 연구서 <오규원 시의 자연 인식과 현대성의 경험> 등이 있다. 김춘수시문학상, 청마문학연구상, 미네르바작품상, 딩아돌하작품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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