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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언 Jan 30. 2024

고시원 라이프 : 그래도 사람 사는 곳 02

타인은 지옥이다 : 고시원 이웃

 본문을 들어가기에 앞서, 첫 에피소드의 서문에서 "고시원"이라는 단어가 독자님께 주는 느낌에 대해 질문을 드렸었지요. 혹시 이 문장을 떠올리지는 않으셨나요? 타인은 지옥이다! 이번 목차의 제목은 한 드라마의 작품명입니다. 스토리의 진행 배경이 고시원인 점이 상징적이라 잠시 그 드라마의 제목을 빌려보았습니다만, 타인은 지옥이라는 그 말 자체도 참 재미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곳 일면식 없는 낯선 사람과 피치 못하게 조우하게 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방음 설비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는 곳이 많아 모두가 얇은 가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모든 생활이 강제로 공유는 곳입니다. 과연, 그곳에서 타인은 정말 지옥이었을까요? 





 이곳의 구조는 폭이 좁은 중앙 복도를 마주 보고 모든 호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형태이기에 앞과 양옆 대각선 호실의 생활소음을 차단할 수 없는 노릇이었지요. 중앙에 위치한 공용 주방에서 나누는 말소리는 같은 층의 사람들에게도 모두 들렸을 겁니다. 나는 귀가 예민한 편이라 주방과 세 칸 떨어진 방에 살면서도 주방옆 세탁실에서 나는 세탁 완료 노랫소리를 듣고 빨래를 회수하러 가고는 했으니까요. 이렇듯 고시원 주민들 간의 가장 큰 불편함은 생활소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시원 입실 절차를 마치고 본가에서 일부 짐을 옮겨와 생활을 시작한 지 2주가 지났을 때의 일입니다. 한밤중,  방과는 멀리 떨어진 복도 끝방 방향에서 문고리를 돌리는 소리가 나더니 곧이어 작은 말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저기요, 좀 조용히 해주시면 안 돼요?'


 나는 고시원에서의 생활이 처음이기에 어느 정도로 소리를 조심해야 할지 알지 못해, 방안에서의 미디어 시청은 개미만큼 작은 소리로 낮추거나 이어폰을 연결해서 듣곤 했습니다. 안 그래도 내심 주의하고 있던 상황이니 끝방 쪽에서 들려오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젊은 여자와 아줌마의 목소리였습니다. 둘은 몇 마디 나누는가 싶더니 곧 각자의 방으로 돌아간 모양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날의 기억은 금방 잊혔습니다. 그로부터 1주일 뒤에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요.


 그것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휴식을 취하던 저녁의 일이었습니다.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있었음에도, 노랫소리를 뚫고 들려오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심상치 않았습니다. 무슨 일인고 하여 잠시 이어폰을 빼고 귀를 기울였습니다. 


'조용히 좀 하시라고요.'

'네가 먼저 벽을 쳤잖아. 말로 하라고, 말로.'


단번에 전후 사정이 이해되는 말입니다. 안 그래도 최근 부쩍 소음 문제로 날이 서있던 끝방 쪽의 두 사람이 또 말다툼을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적당히 한쪽이 굽히고 사과하며 끝내려나 싶어 이만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씻고 잘 준비를 하려는데, 문밖의 대화는 점점 언성이 높아지더군요. 급기야는 '아줌마의 방에서 냄새가 난다, 생선 비린내가 난다'며 이제는 평소에 갖고 있던 모든 불만은 가시처럼 뾰족한 말투로 내뱉었습니다. 아줌마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지금 네 엄마뻘 되는 사람에게 그게 무슨 말버릇이냐'며 한마디를 하면 두 마디로 되받아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 시점에서 저는 씻는 것을 잠시 미루고 방문에 귀를 대어 그들의 대화에 집중했습니다. 고시원 생활에서 처음 맞이하는 자극적인 이벤트에 흥미가 동한 탓입니다. 몸싸움까지 이어지기 전에 말려야겠다는 생각을 한편에 두고 귀를 쫑긋였습니다. 이게 바로 리얼한 고시원 생활인가? 약한 사람은 살아남지 못하는 그런 세계에 정말 내가 들어온 것일까? 두근거리는 것도 잠시, 말다툼의 수위가 점점 인신공격 수준으로 높아지자 마음이 가라앉았습니다. 어서 그들을 말려야겠다 싶어 겉옷을 챙겨 입는데, 근방의 다른 주민이 한발 더 빨랐던 모양입니다.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점잖게 그들을 중재하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날의 해프닝은 이렇게 종결되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두 여성은 고시원을 나갔다는 얘기를 다른 주민들로부터 듣게 되었습니다.


 고시원에 머무는 동안에는 알음알음 같은 층에 사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그건 식사 시간에 공용주방에서 마주쳐서이기도, 같은 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이 이곳에 살기 때문이기도, 고시원 사장님의 수다에 어울려서이기도, 혹은 고시원 옥상에서 그들은 마주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어쨌든 나는 대강 이곳의 구성원들과 몇 번 인사를 나누고 안면을 트게 되었는데, 종종 함께 나가서 밥을 먹는 인원을 통해 그 소식을 전해 들은 것입니다. 


 나와 매우 친한 고시원 주민 중에는 같은 학교를 다니는 동생 한 명과, 타 지역에 집을 두고 사업차 서울에 올라와 바쁜 평일에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삼촌 한 명이 있습니다. 알고 보니 그날의 싸움을 중재한 것도 이 삼촌이었습니다. 삼촌은 학생들이 밥은 챙겨 먹고 다니는지 걱정하며 식사를 사주기도 하셨는데, 그럴 때에는 고시원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해프닝이 이야기의 주제가 됩니다.


 모두가 잠든 줄 알았던 새벽에 갑자기 두꺼비집이 내려가 전기가 끊겼는데, 삼촌과 다른 주민이 그것을 고치러 나왔다는 훈훈한 일이 있는가 하면, 주방의 개인냄비를 보관하는 하부장에 아주 귀여운 주황색 냄비를 두었는데 누군가가 말도 없이 그것을 사용한 일, 깜빡하고 공용 공간에 둔 개인물품이 없어진 일 등 조금은 서늘한 사건들도 있었습니다. (이 이후로는 냄비와 물건 모두 방 안에 보관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의 방에서는 우웅대는 기계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는 도시괴담 같은 이야기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생기는 곳입니다. 


 그것들 중 내가 가장 주의 깊게 수집한 것은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사람의 수만큼, 각자의 이야기가 있지요. 그들이 고시원까지 흘러들어오게 된 이유가 있고요. 으레 고시원이라면 사회 취약 계층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고 생각하시겠지만, 모두가 그런 것만은 아니더군요. 어떤 분은 긴 해외 생활을 마치고 들어온지라 괜찮은 아파트를 구할 때까지 잠시 고시원에 머무르는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꾸밈없이 말하자면, 예, 돈 많은 사람이 고시원에 살기도 합니다. 


 서늘한 가을밤, 고시원 옥상에서 담배 한 대를 물고 공부를 하던 중의 일입니다. 처음 본 중년 남성분이 올라와 담배를 피우시기에 자리를 비켜드릴까 하던 차에 그가 내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과거, 어떤 사정으로 가족도 재산도, 모든 것을 잃은 그는 현재 자신의 삶을 위해 식당 주방일을 하고 있다며 자신의 속얘기를 꺼내었습니다. 일이 끝나면 남은 음식을 가져와 식비를 절약한다고 합니다. 내 주변에도 식비를 아끼기 위해 부러 주방 아르바이트를 뛰는 친구가 있었고, 나 또한 늘 돈이 없어 허덕이는 학생이었기에 우리는 서로 성실하게 잘 살아보자고 너스레를 떨며 웃었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요. 그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주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얇은 가벽을 사이에 두고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에서 살아가는구나. 같은 공간, 같은 환경에서 살지만, 사는 세계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는구나.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이고 하나의 세계가 하나의 우주라면, 고시원이란 공간은 은하계를 꾹 압축한 곳과 같다. 참 밀도 높은 곳이다. 그렇지 않은가요? 


 친한 주민들과 나는 고시원의 생활 소음과 몇몇 괴짜 주민의 기행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그래도 이곳이 살만한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함께하는 순간들에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공감하고, 격려하며 이해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것은 사연 있는 자들의 위안이 되기도 합니다. 불편함과 함께하는 소소한 기쁨들이 분명히 존재했지요고시원은 그저 잠자리를 제공하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 공간은 삶과 이야기로 가득 차있습니다. 이런 점들이 바로 이곳이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주었던 것이었습니다.


 비단 고시원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타인은 곧잘 우리의 지옥일 것입니다. 다만,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만드느냐 천국으로 만드느냐는 자기 하기 나름입니다. 만약 당신이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의 삶을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졌다면 충분히 목표한 바를 이루실 겁니다.  


 오늘도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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