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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울렁증과 튜링테스트

by 여운

내가 토종 한국인으로서 영어를 하면, '튜링테스트(Turing Test)'에 통과해야 하는 AI가 된 기분이다. 튜링테스트는 대화 상대를 가려놓고, 그 상대가 사람인지 AI인지 구분할 수 있는지 확인하는 테스트다. 한국인도 영어를 할 때마다 자신이 영어 원어민이 아닌 걸 들킬까 하는 두려움에 빠진다. 영어 공부를 위한 유튜브 썸네일은 "절대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며 겁주는 문구로 가득하다. '콩글리쉬'를 구사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할리우드 영화에서 듣던 발음이 아니면 비웃는다.


어렸을 때 자주 하던 딕테이션은 영어를 듣고 모든 단어를 정확하게 받아 적는 숙제였다. 실력 향상에는 도움이 되었겠지만, 실생활의 영어는 딕테이션이 아니다. 생각해 보면 모국어인 한국어도 모든 단어를 100% 정확히 들으며 살고 있지 않다. 손님들로 가득 찬 카페에서 수다를 떨다 보면 시끄러워서 서로의 말이 잘 안 들리기도 하고, 생소한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면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이해를 못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순간 모든 대화가 끝나고 관계가 단절되는 것도 아니다. 단어 하나 못 듣는다고 큰일 나는 경우는 없는데, 딕테이션 숙제를 열심히 하던 습관, 영어 리스닝 문제를 하나라도 더 맞혀야 했던 그 간절함을 잊지 못하고 상대가 영어로 말하기 시작하면 굳어버린다. 못 들었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단어가 나오면 다시 물어보면 된다. 그건 부정행위도 아니고 대화의 일부분이다.


영어 발음도 단 하나의 정답이 있는 것처럼 배웠다. '지도학습(Supervised learning)'은 AI에게 단 하나의 바람직한 정답을 주고 그 정답을 정확히 맞히도록 학습하는 방식이다. 면 '비지도학습(Unsupervised learning)'은 정답 데이터 없이 AI를 학습하는 방식으로, 유사한 데이터끼리 하나의 그룹으로 묶는 '클러스터링(Clustering)' 방식이 가장 대표적이다. 예전엔 미국식 발음만을 정답으로 보고 지도학습을 했다. 나머지 발음은 오답이니 어서 빨리 그 오답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는 것이 상책이었다. 요즘엔 '악센트(Accent)'라는 단어가 많이 쓰이는 덕분에 내 발음도 오답이 아니라고 느껴진다. 이 세상엔 다양한 악센트가 있고 이들을 비지도학습으로 클러스터링 할 수 있다. 한국인의 영어 악센트는 오답이 아니라, 여러 클러스터 중 하나일 뿐이다. 우열이 아닌 다양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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