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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쾌재 Aug 08. 2022

결벽을 바꾼다고?

올해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첫째, 갈수록 정리도 안하고 뭔가를 할 때마다 늦장을 부린다. 그러다 엄마에게 한 소리 듣는 건 예삿일이다. 나도 옆에서 살짝 한마디를 거들어 보지만 내심 속으로는 웃는다. 뭐 조금 늦는다고, 정리 좀 안한다고 인생의 큰 제약이 있으랴


이 녀석이 다섯 살 때를 떠올려 본다. 하루는 어린이집 하원을 시키는데 담임 선생님이 웃으며 이야기 하신다. “글쎄 아이가 어찌나 반듯한지 몰라요. 낮잠 자려고 이불을 펴는데 조금만 접혀 있어도 가만히 있지를 못하네요. 반듯하게 펴야 잠자리에 들어요. 정리는 또 얼마나 잘 하는지... 조금만 어질러져 있으면 참지를 못하네요.” 순간 그 말이 전혀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다.


평소 지저분한 걸 싫어하는 나는 정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았다. 그것은 아이에게도 그대로 전달이 되었다. 옷에 조금이라도 뭔가가 묻으면 곧바로 닦아주고, 놀 때도 너무 지저분하게 하고 노는 걸 못하게 했다(지금 생각하면 정리하며 논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그 어려운 걸 아이에게 시켰다니). 잠들기 전에 아주 깔끔하게 정리하고 잠자리에 드는 건 기본이다. 정해진 시간에 잠자리에 들고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


이런 성격으로 내가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물건이 조금만 틀어져 있으면, 예상된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을 하지 못하면,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거나 완성되지 않으면 마음은 조급해지고 짜증은 솟아오르고 결국엔 화를 내기 일쑤였다. 주변에서는 그런 나를 결벽증이 있어서라고 했다.

 

그런 결벽증은 나만의 스트레스로 끝나는 건 아니었다. 그걸 지켜보거나 당해야 하는 사람들의 불편함. 그래서 웃지 못 할 에피소드(좋게 표현해서 에피소드지 어떻게 보면 진상 짓이다)도 적지 않았다.

 

대학 시절, 인사불성으로 취해 친구 대 여섯을 데리고 자취방을 데려간 적이 있다. 사실 필름이 끊겨 그 날의 기억은 전혀 없다. 다만 친구들에게 들은 것뿐. 음주 회합 후 며칠 만에 만난 친구들은 “야, 다음에는 니 자취방에는 절대 안 간다.”고 입을 모았다. 알고 보니 다들 취해 자취집에 들어섰는데 내가 친구들을 옷장 앞에 일렬로 세우더란다. 그리고는 옷을 하나하나 받아서 옷걸이에 걸고는 가지런히 정리한 다음에 모두를 방에 앉게 하더란다. 집에 옷이 널려져 있는 게 싫다고 하면서.


결혼 후, 이사를 하게 되었다. 이삿짐센터에서 책을 책장에 꽂아두고 가는데 모두가 제각각이다. 정리할 것도 많은데 그것부터 두고 볼 수가 없다. 책을 키 순서대로 맞춘다. 책에 따라서는 꽂다보면 옆넓이가 길어서 툭 튀어나오는 녀석이 있다. 이것도 그냥 두고 볼 수 없다. 모든 책들을 그 녀석에 맞추어 앞으로 전진시키고 선을 맞춘다. 아내는 정리 할 것도 많은데 꼭 그렇게 책 정리부터 해야겠냐고 타박이지만 가만히 보고 있지 못하는 내 결벽을 어이하랴.


불편이 나를 거쳐 내 주변 사람에게 그리고 아이에게까지 이어지는 연쇄의 구조. 내 스스로도 못 마땅해 하는 이 성격을 또 다른 아바타에게 전수하고 그대로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갑자기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뻔히 예상되는 드라마의 결과처럼 명백한 장면이 내 눈을 덮쳐 온다.


과감히 아이에 대한 육아 노선을 바꾸기로 했다. 아이가 나와 같은 결벽증으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할 생각을 하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그 날 이후로 열, 줄, 순서, 정리, 제자리 같은 단어들을 조금씩 지워 나갔다.


평소에 몸에 밴 것을 뒤집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눈으로 보고 견뎌야 하는 불협화음의 협연. 참지 못 할 한 마디가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내려가기를 반복. 그럴 때마다 눈을 딱 감고 귀를 딱 막고 ‘나는 안 들린다.’,  ‘나는 안 보인다.’ 외치며 꾹꾹 눌렀다.


결국 습관의 힘은 위대한 것이다. 성격을 이겨내는 힘 그것이 바로 습관이다. 바꾸어야 할 것이 있다면 지금 바로 시작하자. 시간의 탑이 습관을 만들어 줄 것이다.


첫째는 이제 정리도 서툴고 늦장도 부릴 줄 아는 아이가 되었다. 아이만 변한 게 아니다. 나 역시 그렇다. 이제는 굳이 책의 키를 맞추지 않아도 된다. 내비게이션에 나오는 시간대로 도착하지 못해도 된다. 결재가 올라오는 문서에 맞춤법 하나 틀렸다고 돌려보내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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