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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쾌재 Mar 29. 2022

구멍난 고무장갑

  ‘어! 자꾸 왜 이러는 거지? 정말 내 손에 무슨 문제가 있나?’ 

   설거지를 마치고 고무장갑을 걸어 두려는데 오른쪽 중지 부분이 잘려 나간 것처럼 구멍이 나 있었다. 내가 툴툴거리는 소리를 듣고 아내가 묻는다.

   “자기야! 무슨 일 있어? 왜 그러는데?”. 

   “글쎄, 고무장갑 오른쪽이 또 구멍 났어. 벌써 몇 번째 인줄 모르겠네!”, 

   “뭐! 또 구멍 났어. 조심 좀 하지 그랬어.”

   “아니야. 설거지 마치고 장갑을 벗었는데 또 구멍이 나 있는 걸 어떡해. 주변에 날카로운게 있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알 수가 없네.” 

   한 달 전쯤,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마쳤는데 오른쪽 중지 위쪽이 구멍이 나 있었다. 마치 커터 칼로 자른 것처럼 윗부분 3센티 정도가 사선으로 구멍이 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거의 찢어진 수준이었다. 아내는 뭔가 날카로운 것에 닿았나 보다며 너무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는 새 고무장갑을 사서 다시 걸어두었다. 

   그 일이 있은 후 며칠 쯤 지났을까! 설거지를 마치고 보니 지난번과 같이 고무장갑이 구멍 나 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아내에게 고무장갑을 보여주었다. 아내는 농담 섞인 목소리로 한 마디를 툭 던졌다.  

   “으이그! 설거지 도와준다고 하더니 일부러 그러는거 아니야!” 

   반복되는 문제에 신경이 예민했던 나는 정색을 하며 인상을 썼다.

    “무슨 소리야, 나 그렇게 치사한 사람 아니다.”

   아내는 얼른 손사래를 치며 나를 진정시켰다. 

   “농담이야, 농담! 그럴 수도 있지. 내가 새 고무장갑 사놓을 테니 지금처럼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또 고무장갑이 구멍이 난 것이다. 그것도 똑같은 오른쪽 중지 윗부분이. 뭔가 미스터리에 빠진 듯 나는 버리지 못하고 모아둔 왼쪽 고무장갑 세 개를 꺼내 나란히 놓아두었다. 오른손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같은 일이 반복된다는 건 분명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무엇이든 원인에 따르는 결과가 있는 법 아니던가. 

   물론 고무장갑 구멍 난 일로 무에 그리 진지할 필요가 있겠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살아가며 반복되는 문제를 인지하고 그것을 수정하는 것은 그것의 비중이 어떻든 자연스런 과정이 아니겠는가. 아니 꼭 그 이유를 찾지는 못하더라도 짝을 잃고 남겨진 고무장갑을 위한 해결책은 있어야 했다.

   그러다 번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핸드폰을 들고 검색창에 ‘고무장갑 오른쪽’을 입력했다. 의외의 일이 내 눈 앞에 펼쳐졌다. 고무장갑 오른쪽만 판다는 쇼핑 사이트가 줄줄이 늘어서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쁜 마음에 아내를 향해 외쳤다. 

   “여보! 고무장갑 구멍 나는게 나만 그런 건 아닌가봐! 여기 고무장갑 오른쪽만 팔기도 하는데.” 

   나의 이야기를 듣고 아내는 “설마!” 하며 다가왔다 “정말이네.” 하며 두 눈을 크게 떴다. ‘그래 뭔가 구멍이 나는 이유가 있으니까 이렇게 오른쪽만 따로 파는 거겠지. 내 손이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어.’ 곧바로 득의양양해진 나는 고무장갑 오른쪽과 관련된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찾기 시작했다.

   나처럼 오른쪽 장갑이 구멍이 나서 왼쪽 장갑만 잔뜩 남았다며 왼쪽 장갑을 활용할 방법을 묻는 기사부터 고무장갑을 끼고 집안일을 하다 오른쪽만 구멍이 나서 왼쪽을 미리 몇 장 사두었다는 기사, 고무장갑 왼쪽을 뒤집으면 오른쪽과 같이 되므로 남은 장갑을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기사, 구멍 난 고무장갑에 방수가 되는 재생밴드를 붙여 사용하고 있다는 기사 등등. 하나 같이 구멍이 나거나 찢어진 오른쪽 고무장갑을 재사용하기 위한 나름의 고민이 엿보였다. 다만 오른쪽 고무장갑이 구멍이 나거나 찢어지는 이유를 풀어주는 후련한 기사는 볼 수가 없었다.

   핸드폰이나 PC에 단어 하나만 적어 넣으면 갖가지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다. 그 많은 정보의 진위를 가리기도 어려울 뿐이거니와 자칫 의존의 함정에 빠져 헤어 나오기도 쉽지 않다. 경험과 노력을 통해 스스로 터득하는 자립과 자생의 패턴을 무디게 만들어 버리는 발 빠른 세상의 변화에 아직은 거부감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삶이란 것이 오로지 진지하고 무게감 있는 일상과 사건의 연속일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나에게 닥친 문제는 오랜 성찰이나 철학적 접근이 굳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조금은 더 가볍게 상황을 인식하는 것이 좋으리라. 그런 면에서 핸드폰의 검색을 통해 알아낸 정보들은 나름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준 것이 아니겠는가.

   일상에서 발생하는 소소한 문제들이 이렇게 공유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만약 검색을 하지 않고 어쩔 수 없는 문제로 취급하는데 그쳤다면 왼쪽 고무장갑만 수집하고 있는 낯선 경험을 가졌어야할테니 말이다. 물론 고무장갑이 구멍 나는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 그것을 방지하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또 다른 차선책으로 그 뒤에 따를 피해나 손해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것도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아니겠는가.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경험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이렇게 쉽게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새삼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며 맞닥뜨리는 다양하고 소소한 문제들이 반드시 나만의 몫인 것만은 아니니 좀 더 유연한 생각으로 세상의 변화에 참여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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