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부터 이방인이라 느꼈을까?
나는 언제부터 내가 이방인이라고 느꼈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기억을 하는 한 짧지도 길지도 않은 그 사십여년을 모두 나는 완벽한 이방인으로 살아왔다.
내 첫기억은 동생과 허름한 아파트의 구석에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놀던 기억이다. 그 기억 속의 나는 어쩐지 동생을 보호해야한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늘상 이사를 다녔기에 동생만이 어린 시절 내곁을 지키는 또래 존재였다. 내가 만나는 모든 친구들은 1-2년 내에 사라지곤 했는데, 물론 내가 이사를 갔기 때문이었다. 한국의 촌 이곳 저곳에서 만난 그 낯선 얼굴들 속에서 나는 몇몇 닮은 꼴을 찾아내곤 했고, 데자뷰를 경험하기도 했다. 어린시절부터 나는 이방인이었다.
대학에 가면 좀 나아질 줄 알았으나, 때때로 숨길 수 없는 이질감과 외로움이 몰려오곤 했다. 사회 배려자 전형으로 간 대학에서 나는 Imposter Syndrome에 시달리며, 나보다 근면하면서도 창의적이고 똑똑한 학우들을 부러워하곤 했다. 학부로 간 그 대학이 짧았던 내 인생에 최대의 성취라 여기며, 나는 학교에 오래도 남아있었다. 다들 졸업을 하는 동안 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밟으며 유학을 준비했다.
미국에 와서는 내가 이방인이란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영어로 버벅대며 표현의 자유를 잃어버린채 이리 저리 방황하며 살았다. 교수가 되고 싶다는 그 꿈을 이루고파 7년이라는 박사과정도 견뎌냈지만 결국엔 자의 반 타의 반 포기하고 갈 길을 잃기도 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 먼 땅에 와서 고생을 하는 지 되뇌였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한국에서도 이방인이였지만, 미국에서 "진짜 진짜" 이방인이 된 나는 그래도 표면상 이방인이 아닌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이리 저리 찾아 돌아온 지금의 삶에서도 나는 여전히 이방인이라 느낀다. 그래도 과거처럼 이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하진 않는다. 어차피 이방인이 숙명이라면 받아드리고 사는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언제까지 이방인임을 불평하고 살아야하겠는가. Every cloud has a silver lining이라는 내가 좋아하는 미국의 속담처럼, 이제부터는 이방인이기 때문에 갖는 좋은 점을 찾아보며 살아보려 한다. 예를 들면,
* 똑같은 현상을 보아도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있다.
* 어느 변화에든 빠르게 적응한다.
* 나와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고 존중한다.
...
...
...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의 서러움이 밀려오는 순간이 있다면, 나 혼자 되뇌이는 수 밖에 없다. 어쩌면 내가 모르는 수 많은 사람들도 스스로를 이방인이라 생각하고 살고 있는지 모른다고. 철저히 이방인이지만 그래도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