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서 옥스퍼드 가는 길은 한국에서 아예 한인 택시 서비스를 신청했던 터라 수월했다. 아침 일찍 호텔 앞으로 와준 기사님은 한국-영국을 잇는 유학원 관련 일을 하면서 한인 픽업도 도와주고 있다고. 영국 시민권자로, 벌써 영국에 산 지 20년이 넘었다고 간단한 자기소개를 하신 후 잠깐의 적막이 흘렀다. 그에 상응하는 내 소개를 해야 할 타이밍인 거 같은 공기를 맡긴 했는데, 입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던 건 순전히 영어 이름 때문이다.
내가 영어 이름을 처음으로 사용한 기억은 스타벅스에서 알바했을 때, 로렌으로 불렸던 시절… 영어 이름이란 게 사실 맥락이 없고, 나와 일도 상관없는 이름을 가져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지만, 그때도 무척 스트레스를 받았던 기억이 있다. 영어 이름을 지어 오라던 얘기에 고민을 하던 당시 브랜드 폴로 랄프로렌을 좋아해서 입에 붙지도 않는 로렌을 이야기 하긴 했는데, 이 경위 자체가 낯부끄러울 따름이다. 그런 의미 없고 낯간지러운 이름은 그때 이후로 불려본 적도, 사용한 적도 없고, 사용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다른 영어 이름을 고르긴 해야 했다.
영어이름 추천 TOP 100, 물론 검색해 봤다. 메리, 캘리, 제니퍼, 클레어, 클로이, 헬레나, 로즈, 엠마…. 등등 수많은 이름들이 리스트업 되어 있지만 어느 것 하나 정이 가지 않는다. 이 이름들로 불리는 나도 민망하지만 불러주는 이들도 너무 민망하지 않아야 하는데 수많은 영어 이름 사이에서 낯간지럽지 않은 이름은 애석하게도 없다. 사실 이름이란 게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타인에 의해 불릴 때 그 의의가 생기는데, 밑도 끝도 없이 영어 이름 리스트에서 픽한 듯한 저런 이름들은 뭔가 공허하달까.
지극히 의미부여충인 나에게 맥락도 없고, 의미도 없고, 오글거리기만 하는, 그렇지만, 내 본래 이름은 영어 발음이 무척 어렵기 때문에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계륵과도 같은 그것은 바로 영어 이름이었으니~~~. 나름 긴 고민 끝에 결정한 나의 영어 이름은 May다.
영국 도착 이후 언제 어디서든 you can call me May! 라고 소개를 하곤 했지만 내 영어 이름 May 역시 아무~~ 의미가 없다. 그저 내 이름 마지막 자가 ‘매’인데 그걸 영어로 한 거일 뿐이라고, 되려 나서서 이름에 아무 의미가 없다며 더는 이름에 대해 묻지 않도록 의미부여를 원천 차단시키곤 했다. 간혹 5월생이냐고 물어보는 이들이 있고, 당시 하필 영국 총리가 May였어서 순간순간 관심 받는 그런 리스크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오글거리지 않고 그나마 무난한 것을 골랐다고 자평한다.
내 영어 이름을 이야기하자 한국 기사님 역시 당시 총리였던 May 총리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게 앞으로 내가 겪을 일이겠구나, May 총리에 관해 중립적인 멘트를 준비해 둬야겠구나… 를 느꼈던 내 첫 통성명의 추억…
기사님과 두런두런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덧 옥스퍼드에 도착했다. 기숙사 리셉션에서 신원확인을 위해 여권에 쓰여 있는, 내 한글 이름 그대로 영어로 쓰고 키를 받았다. 그들이 어색하게 “양요RR~르메이”라고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앞으로 진짜 이름이 불리는 일은 오늘이 마지막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이젠 정말 영국의 May로 분해야 할 시간.
Nice to meet you. You can call me May! 를 속으로 내뱉으며 자, 올라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