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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래냉이씀바귀 Sep 14. 2023

삼각로터리


요즘 차를 타고 거리를 지나다 보면 로터리가 참 많이 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1시 방향’  또는 ‘11시 방향’으로 나가라는 내비게이션의 안내를 듣고, 나는 머릿속으로 동그란 시계를 그려 나갈 방향을 가늠해 본다. 로터리를 나가며 곧바로 난 나의 어린시절로 들어간다.


1975년이었다. 국민학교 4학년 여름. 나는 엄마가 있는 왜관을 떠나 할머니와 작은오빠가 있는 대구로 전학을 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다시 시내버스를 갈아타고 대명동 삼각로터리에서 10분쯤 걸어가면 할머니와 작은오빠가 사는 집이 있었다. 나는 늘 엄마가 많이 보고 싶었지만, 할머니와 작은오빠를 따라서만 엄마를 보러 갈 수 있었다. 중학생인 오빠와 달리 난 시간도 많으니 늘 그게 불만이었다. 혼자서도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할머니는 하락을 하지 않았다.


‘혼자 시외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어야 자유롭게 엄마에게 갈 텐데…’


어느 날 나의 애원에 할머니는 드디어 허락을 했다. 혼자 엄마를 보러 가게 된 것이다.  시외버스를 타고 왜관으로 잘 갔고, 다시 대구로 돌아오는 일요일이 되었다. 난 시외버스를 타고 북부정류장에 도착했다. 시내버스를 타고 차장의 바로 뒷자리에 앉으며 삼각로터리에 내릴 거니 좀 알려달라 했다.  버스는 한참을 달렸고 어느덧 날은 어둑어둑해지는데 내리라는 소리가 없었다. 난 초조해졌고 참다 참다못해 차장의 등을 두드렸다. 그녀는 나를 보고 당황하는 기색에 잠시 주춤하는 듯하더니 대뜸 다음 정류장에 그냥 내리라고 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그곳은 삼각로터리가 아니고, 지나왔던 게 분명하다. 난 엄마가 쥐어준 보따리를 들고 버스에서 내려 거리를 두리번거린다. 날은 어둡고 낯선 거리이다. 어찌해야 하나. 어둡고 인적이 드문 길에 데이트하는 남녀가 맞은편에서 걸어오고 있다.

“저… 삼각로터리에 가려면 어떻게 해요?  버스를 잘못 내렸어요. 차장에게 말했는데…”

남녀는 삼각로터리를 잘 모르는지, 서로 쳐다보며 두리번거리더니 택시를 세운다. 그때 난 주머니에 택시값이 있었는지 기억도 없다. 아마도 없었겠지.

그 남녀가 택시기사에게 나의 사정을  얘기했고 기사는 나에게 차비도 받지 않고 태워준다고 한다.

“삼각로터에서 내리면 집은 찾아갈 수 있어요.”

집은 삼각로터리를 지나 대구여상 있는 곳으로 더 가야 하는데, 난 딱 거기까지만 가기로 작정한다. 내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고마운 택시기사!

삼각로터리에서 내려 집 앞으로 걸어가니, 할머니가 걱정을 하며 밖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할머니 손을 잡는다. 잘 갔다 온 듯이. 그때부터 난 혼자서도 엄마에게 갈 수 있었다.


난 로터리만 보면, 그때의 삼각로터리, 엄마, 차장, 한 쌍의 남녀, 할머니, 작은오빠, 고마운 택시기사가 끊임없이 내 기억 속을 서성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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