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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필통 Aug 30. 2023

끝이 보이는 연애를 끝낸다는 것

서툰 그 남자의 일기

끝이 보이는 연애를 끝내고 왔다.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을 애달프게 부정하면서도 너를 생각하며, 그리고 너를 선택했던 나를 생각하며 우리의 관계를 이어보려 했었지만 결국 우린 다른 방향으로 걷고 또 걸었다.

너를 보는 나의 마음에서 더 이상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고, 건너온 조그만 문턱 사이로 보인 과거에서도 나는 행복하지 못했다. 절대적으로 마음이 허기지고 가난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미래가 나는 불안하고 슬펐다.


너는 최선을 다했다. 불안한 눈동자로 나를 보던 눈빛도, 노심초사 내 기분을 맞춰가며 되지 않는 유머로 나를 웃게 만들려는 노력도, 조그마한 다툼에도 혹여나 내가 떠날까 꺼내고 싶은 말을 혼자서 꼭꼭 눌러 담던 모습도 전부 너로서는 최선이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스스로를 자책도 많이 하고 원망도 많이 해봤을 테다. 친구들에게 조언도 많이 구했을 테고, 혼자서 술을 마시며 몰래 눈물도 많이 흘렸으리라.


나도 최선을 다했다. 너의 떨리는 눈빛을 애써 외면하기 싫어 억지로 눈을 맞추었고, 재미없는 너의 유머에 기계처럼 웃는 게 습관이 되었다.  다툼이 귀찮아 불만을 꺼내지 않길 바랐고, 나를 비난하고 너를 짠하게 여기며 사랑보단 더 큰 동정의 마음으로 너를 안아주고 싶었다. 너의 마음에 비해 비록 초라하기 그지없는 조그마한 나의 품일지라도.


너는 의외로 담담했다. 이미 많은 눈물을 흘리고 이별연습을 해서일 테다. 나를 보는 눈빛이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힘이 있는 목소리로 나에게 마지막 안부를 건넸고, 편안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자연스러워 그 모습이 어색했다. 나를 더 이상 붙잡지 않고 원망하지 않았으며 나와의 시간들이 행복했다는 말을 남긴 채 뒤돌아 가는 모습에서 모든 게 정말 끝이 났다는 차가운 공기만이 나를 꼭 안아주었다.


나는 많은 눈물을 흘렸다. 귀찮기만 했던 너의 전화도, 부담되는 너의 선물 공세도, 먹기 싫은 음식을 억지로 먹어가며 함께 보낸 어색한 공기도, 낭비라고 생각한 너와의 모든 시간들이 끝내 지워졌지만 자꾸만 눈물이 차올랐다. 애달픈 모습으로 구차하게 변명을 늘려가며 나를 붙잡았으면 차라리 훌훌 털어냈으려만, 심한 비난과 욕으로 나를 원망하면 차라리 미련이 남지 않았으려만, 씩씩하고 밝은 너의 마지막 모습에서 네가 너무 커 보였고, 내가 너무 작아 보였다.


이제는 정말 끝이다.

해방과 죄책, 그 어디쯤에선가 나는 아직도 힘겹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너의 SNS 속 나와의 추억들이 모두 무채색의 바탕으로 바뀌었고, 한참을 망설인 뒤에야 핸드폰 속 우리의 추억을 전부 들어냈다. 더 이상 울리지 않는 핸드폰에 안도감과 허탈함을 동시에 느끼며 네가 전부였던 하루의 굴레에서 조금씩 나를 꺼내오고 있다. 그렇게 끝이 보이던 연애가 끝이 났다.


내가 없는 세상에선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진심으로.

언젠가는 나도 반드시 행복해질 테니.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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