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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슬로 Dec 22. 2023

[D-10] 나를 찾아 헤매었으나

356번째 글

사랑은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사랑을 찾아 나서야 하는 게 아니라, 사랑 앞에 세워 둔 벽을 찾아야 한다고 말이다. 무엇이 그 사랑을 막아서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 곧 그것을 넘어 사랑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될 테니까.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의 격언이다.


사랑을 찾아 나서지 마십시오.
그저 당신 안에 스스로 세워 둔,
사랑을 가로막고 있는 장벽들을 찾으십시오.

- 잘랄 앗 딘 루미


나는 이 시구를 좋아한다. 사랑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나의 내면에 가득 존재하고 있다는 점. 그러므로 사랑을 찾아 떠날 필요가 없으며 자신 안에서 사랑을 발견하면 된다는 점. 또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없게 방해하는 것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그리고 그 문제들을 찾아내기만 하면 이내 내 안에 충만한 사랑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말한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이 말은 사랑뿐만 아니라 꿈이나 목표, 자아 같은 데에도 모두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목표를 이루는 과정을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모습으로 자주 시각화해서 상상하곤 한다. 마라톤을 뛰는 것처럼 길을 걷다 보면 그 목표에 다다르게 될 거라고, 길을 걷는 동안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자질들, 능력들을 하나씩 획득하면서 속도가 붙게 될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는 과정은 그보다는 내 안에 있는 잠재력을 끌어내는 데에 가까운 것 같다.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자질과 능력들을 발견하고 끄집어내면서 나는 목표를 이룬다. 보다 정확하게는, 내가 이미 그 자질을 갖고 있는데도 그걸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들을 하나씩 발견하고 걷어내면서 목표를 이루는 거다.


'나'도 마찬가지다. 일 년 동안 내가 적고 있는 에세이, 하루도 빠짐없이 적어 왔고 이제 아홉 편만 더 쓰면 마무리되는 이 에세이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나와 화해하고 나를 용서하기 위해 나 자신을 찾는 과정. 이 에세이 챌린지를 시작하기 전에 나는 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었다. 진정한 내가 어떤 모습인지 모르겠다고 느꼈었고, 나조차도 나를 모르겠다고 생각했었고, 그 진정한 나를 어디에선가 찾아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기 위해서 모험을 떠나든 방랑을 하든 큰길을 따라가든 어디론가로 가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멀리에 있지 않았다. 나는 언제나 거기 있었다.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나는 언제나 훤히 드러난 곳에 당연하다는 듯이 놓여 있었다. 나는 나를 잃어버린 게 아니라 가려버렸던 것이다. 울타리를 세워서, 장막을 쳐서, 담장을 둘러서 진정한 나를 숨기고 감춰왔었던 거였다. 나는 나를 눈앞에 두고도 계속해서 나를 찾아 헤매고 있었던 것이다.


이 에세이를 쓰면서 나는 그 울타리를, 장막을, 담장을 조금씩 해체해 나갔다. 그건 아주 복잡한 덩어리로 만들어져 있었다. 자기혐오와 낮은 자존감과 자격지심과 완벽주의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겁 많은 마음과 부족한 용기 등이 복잡하게 얽혀, 진정한 내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가림막처럼 막고 있었던 거다. 에세이를 적으며 나는 이것들의 존재를 발견했고 이런 것들이 내 안에 있었노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나는 진정한 내 모습이 그 너머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또한 그 가림막 역시 나의 일부라는 사실을, 그것 역시 내 모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걸 깨닫고 나자 조금씩 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나는 이미 나였다. 나는 찾아 헤매야 하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나를 가리고 있는 것들을 벗겨내는 작업에 가까웠다. 그리고 벗겨내던 중에 그 껍데기 역시 내 일부라는 걸 깨닫고 받아들이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계속해서 벗겨내고 계속 받아들이다 보면 진정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나를 나로 가득 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자랑스럽지 않은 모습이어도 진정한 내 모습을, 아주 당당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
2023년 12월 22일,
버스에 앉아 내 타이핑 소리를 들으며.



*커버: Image by Louis Tsai from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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