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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모리 Mar 08. 2024

클래식은 무엇인가

그들은 왜 클래식에 열광하는가

 가끔 친구를 기다리며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듣는 나에게, 도착한 친구가 슬며시 다가와 무얼 그렇게 듣냐며 흘깃 플레이리스트를 보곤 한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말한다.

 

"이런 거 듣는 게 재밌냐..?"


 작곡 전공생으로 예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을 준비하는 나는 대중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중음악이 재미없다는 게 아니다. 단지, 나는 클래식을 듣는 게 더 재미있을 뿐이다.


  

 고전 서양음악을 흔히 지칭하는 말로 쓰이는 "클래식(classic)"은 18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초반,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뛰어난 작곡가들로부터 수없이 쏟아져 나왔던  곡들을 가리켜 "뛰어난 음악(classical music)"이라 부르던 것으로부터 유래했다. 하지만 "뛰어난(classic)"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한국에서는 클래식을 지루하게 생각하고, 눈길도 안 준 채 배척해버리곤 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왜 클래식은 일반적인 대중에게 흥미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것일까?


 첫 째, 클래식은 진입장벽이 높다.

 한국에 살면서 우리는 다양한 음악들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음악의 대부분은 대중음악이고, 클래식이라고 말할 만한 것들은 기껏 해봐야 트럭 후진음으로 나오는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와 지하철 환승역 음악으로 나오는 비발디의 "바이올린 협주곡 가 단조" 정도뿐이다.

 하지만 유럽을 가보면 매주마다 성당이나 미술관 같은 곳에서 무료로 혹은 아주 싸게 볼 수 있는 좋은 클래식 공연들이 즐비했고, 길거리에서는 현악 4중주부터 재즈까지 다양한 레퍼토리를 항상 들을 수 있다.

 한 음악 속에서 만약 자신이 아는 멜로디가 나온다면, 장르 불문하고 사람들은 재밌게 듣는다. 마치 유명한 재즈곡 "Fly me to the moon"이나, 라디오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비발디의 "사계" 같은 곡들처럼 말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일반적인 대중일지라도 자주 접함으로 한두 곡씩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샌가 클래식이 들을만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이 쉽지 않고 오래 걸리기 때문에 클래식의 진입장벽이 높은 것이다.


 두 번째로, 대부분의 곡 제목이 모호하며(ex. 바이올린 협주곡 마단조), 작곡가와 연주자, 그리고 곡의 수가 터무니없이 많다는 것이다.

 일전에 말한 진입장벽을 낮추기 위해서는 많이 듣는 방법이 가장 쉽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클래식을 재밌게 듣기 위해 그 많은 시간을 지루한 곡을 들으며 보내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즉, 비교적 재미있고 쉬운 곡들로 시작해서 단계적으로 진입장벽을 낮춰야 한다.

 하지만, 주변에 클래식을 잘 아는 지인이나 전공자가 있지 않으면 청취자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곡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에 가깝다.

 심지어, 우연히 흥미로운 곡을 들어도 곡의 제목이 모호하고, 작곡가의 이름도 처음 들어본다면 다시 그 곡을 들을 수 있는 방법은 운명에게 맡기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자신의 취향에 맞는 곡을 듣지 못하고 힘든 시간만을 보내다 클래식 듣기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클래식 한 곡을 듣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요즘은 음악의 기승전결이 3-5분 내에 알차게 들어있는 자극적인 대중음악들이 굉장히 많다. 그때그때 기분에 맞춰 어떤 음악이든 들을 수 있고, 공감하며 울고 웃을 수 있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은 그 기승전결이 길게 늘어져있다. 짧은 곡들은 1-2분 정도의 곡도 있지만 긴 곡들은 6-8시간에 육박하는 곡들도 있다. 시간을 아껴야 하고 빠르고 효율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지금과 같은 세상에서 그 시간을 투자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설상 그 긴 시간을 투자하고 듣더라도 이미 많은 공부가 되어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기승전결을 온전히 느끼기는 어렵다.

 나 또한 가끔은 클래식을 듣기에 너무 힘든 날이 있어서 편안한 뉴에이지 음악이나 대중음악을 듣곤 하니 일반적인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이뿐만 아니라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는 클래식을 듣기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왜 클래식에 열광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저 어려움만 넘으면 클래식을 듣는 것만큼 재밌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진입하기엔 높기만 했던 장벽을 넘으면 그 뒤로 수많은 세계가 보인다. 낯설었던 멜로디가 익숙해지고 한 번 두 번 듣다 보며 곡을 외울 지경에 육박하면, 처음에는 들리지조차 않았던 더블베이스의 소리가 울리고, 바순의 코맹맹이 할아버지 소리가 아름답게 노래한다.

 

 다 똑같이 느껴졌던 연주에서 하나 둘 차이점을 듣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연주자의 터치 하나에도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많게만 느껴졌던 곡들은 하나 둘 정리가 되기 시작하고, 그럼에도 끝나지 않고 새로이 발견되는 곡들에 감사하다.

 새로운 작곡가를 알아가고, 그 시대를 공부하며 작곡가가 해당 곡을 쓰게 되었던 배경을 알게 되면, 단순한 피아노 곡이 전쟁의 아픔을 겪던 한 소년의 일기로 바뀐다.


 길고 지루하게만 느껴졌던 클래식을 듣는 시간들이, 이제는 그 안에서 새로운 멜로디를 듣고 길게 늘여져 있던 기승전결에 감탄하고, 연주자 한 명 한 명의 특징을 발견하다 보면 2-3시간이 훅 지나가버린다.


 이렇게 한껏 클래식에 빠져버리면 음원으로만 듣던 웅장함을 현실에서 듣고 싶어 진다. 그렇게 듣고 싶었던 작품과 연주자들을 찾아가며 공연을 보기 시작하고, 실크 같은 바이올린 소리 혹은 웅장한 트럼펫과 팀파니의 소리를 들으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경험을 하고 나면, 공연 한 번에 14-15만 원쯤은 거뜬히 투자하게 된다.

 

 이러니 클래식에 열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 막 클래식에 입문하고 더 알아가고 싶은 사람들에게 가벼운 팁을 주고자 한다.

 첫째로, 클래식을 잘 아는 지인을 만들어라. 주변에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을 두는 것만큼 레퍼토리를 넓히고 재밌는 곡을 추천받기 좋은 게 없다.

 둘째로, 곡을 들을 때는 항상 앨범 전체를 들어라. 듣고자 한 곡의 앨범에는 거의 대부분 다른 곡이 포함되어 있다. 그 다른 곡의 다른 앨범을 찾으면 또 다른 곡이 있다. 그렇게 레퍼토리를 넓히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너무 집중해서 듣지 말아라. 클래식을 집중해서 듣는다는 것은 생각 이상으로 체력소모가 심하다. 처음에는 가볍게 흘려듣듯이 듣는 것도 익숙해지기 좋은 방법이다.


 이 글을 보고 클래식에 약간의 관심이라도 생겼다면 한 번쯤 클래식에 빠져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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