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새벽 2시 반

by Outis

어디 보자, 그러니까...

5시간 반 전의 일이다.



이제 괜찮다 생각했다.

다른 작가님들 글도 읽고, 웃으면서 댓글도 달았지. 당신의 글을 오마주 하고 싶다고,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싶단 소리도 했다.


하루 만에 털고 일어났다, 이번 것도 이렇게 잘 넘어가나, 그랬는데.

배터리가 얼마 안 남은 기계처럼 늘어져 버렸다.


안 그래도 금방 닳아 버리는 오래된 이차 전지를 너무 잠깐만 충전한 탓이지.

그 어린애가 보물처럼 들고 있던 낙엽이 번쩍, 번개처럼 강렬한 영감을 주길래 난 또, 될 줄 알았거든.



'이제 얼마 안 남았어. 마지막을 준비하자.'

이럴 때는 씻고 치우고, 뭐라도 하더니.


'살아 보자.'

이렇게 다짐하니까 어떻게 더 아무것도 못하냐.


마지막이라면 기꺼이 불태울, 얼마 남지 않은 이 에너지는

사는 데에는 충분하지 않은가 보다.



진작 수면모드로 들어갔어야 할 뇌는 하지도 못할 일들의 리스트를 만드느라 바쁘고,

쏟아지는 오더 속에서 나는 그저 숨만 쉬고 있다.


앞으로 대략 3시간 후.

어김없이 찾아온 다음 날을 시작해야 할 시간이다.


또 하나의 지난한 하루를 자괴감과 패배감 속에서 버텨야 한다.


이런 빌어먹을.


빌어먹을 나.

빌어먹을 내 우울증.

이 빌어먹을... 나의......


글.



글로 남기자.

'왜?', '무슨 소용이 있어서?',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이번에도 살아 보자고 결심했을 때 떠올린 어린아이의 분필 낙서처럼

필요 없으면 알아서 지워질 테니까.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