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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경미 Mar 30. 2022

어둠의 그림자를 피하는 방법

수천 개의 조명을 끄다


검정 화면에 고약한 내 얼굴이 거울처럼 비쳤다. 지쳐 있던 아이맥이 자기도 좀 쉬겠다며 잠자기 모드로 화면을 휙 변경해버린 것이다. 한 치의 오류 없이 제 할 일을 하는 기계 덕분에 한참 멍해 있었던 정신이 그제야 돌아왔다. ‘벌써 12시 30분이네.’ 습관처럼 키보드를 요란하게 눌러 이제 막 쉬려는 컴퓨터를 깨웠다. 눈뜬 화면은 심술이 났는지 백설공주 새엄마의 마법 거울처럼 작업하다 만 볼품없는 디자인 시안 위로 까탈스러운 광고주 얼굴을 오버랩하여 보여주었다.

‘난 더 이상 이걸 원하지 않아.’

우수에 찬 눈으로 요술 거울에게 읊조리듯 말했다. 불만족스러운 작업 과정을 보며 사진과 텍스트의 황금비율을 찾아 완벽한 예술을 하리라는 위대한 예술가의 고백이라고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다들 비몽사몽 꿈길을 어슬렁거릴 시간에 ‘왜 나만 남아서 이 고생일까’라는 구질구질한 삶의 푸념은 더더욱 아니다.

‘어떡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 

‘내가 죽을 수 있는 방법은 뭘까?’

‘여기서 죽으면 내일 아침 첫 출근 하는 직원에게 평생 트라우마를 심어주는 몹쓸 짓을 하는 거야. 그럴 순 없어.’ 매일매일 새로운 구차한 변명을 만들면서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그렇다. 이 순간 나의 마음을 철저히 장악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자살 생각이다. 몇 년 전부터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요즘 부쩍 구체적인 방법까지 고려하며, 하루에도 아니, 일 분에도 몇 번씩 끔찍한 상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죽고 싶다. 여기서 사라져버리고 싶다.’

텅 빈 사무실. 고요한 정적. 어둠의 그림자가 또다시 덮치려 함을 알고 있기에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라져야 할 몸뚱이는 멀쩡히 놔두고 연약한 영혼만이 갈가리 훼손당한 채 오늘 하루도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오늘 하루도 살아냈다.

허황한 꿈을 비웃기라도 하듯 새벽 1시 가로수길은 아직 풍부한 색채를 머금고 있다. 거리의 사람들은 어떤 감정에 전염이라도 된 듯 하나같이 흥겨워 보이고, 가게마다 흘러나오는 재즈풍 음악은 그들의 취한 영혼에 인위적인 숨결을 불어넣고 있었다. 아무리 보아도 삶의 모든 감정이 배제된 건 이 거리엔 나뿐인 것 같아 나도 모르게 움츠려질 때쯤 등 뒤에서 누군가가 고요하고도 은밀하게 다가왔다.

‘죽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 아니야. 대단한 일도 아니고, 그저 사라지는 거야.’

얼어붙은 경계심을 살짝 풀어본다. 언젠가부터 옆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꼬마 그림자가, 어느새 훌쩍 커버려서 정이라도 들었다는 듯이 밤마다 나를 꼭 껴안는다. 답답하지만 꽤 익숙해졌다. 어둠의 그림자라 이름 붙여진 그는 끈질기고도 사악하게 다시 설득하고 있었다.

‘알아. 모든 문제는 사라지면 해결될 거야. 그런데 말이야, 사람들은 내가 자살한 이유를 ‘우울증’이라고 결론 내릴 것 같아. 대부분 자살하는 사람들은 그 흔한 병에 걸렸다고 하잖아. 그럼 모든 것이 다 그 문제로 귀결되고, 더 이상 다른 문제를 찾아내려 하지도 않겠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이유는 중요하지 않을 테니까. 그저 장례식장에서 “왜 그랬대요?”라고 사람들이 물어보면 대답할 말이 필요할 뿐이겠지.’ 가녀린 영혼의 목소리가 떨리듯 속삭였다.

'넌 아직도 이해를 못 하고 있구나?'

어둠의 그림자가 말했다.

'무엇을?'

나는 물었다.

'죽음에 대해서…….'

어둠의 그림자는 생각이 많아진 듯 잠시 걸음을 멈추다 이내 내 옆에 바싹 붙어 말을 이어간다.

‘죽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 비소로 이 우주에서 형상을 감추게 되는 것이지. 오해는 하지 마. 너의 육체는 자취를 감출 테지만 영혼만은 꿈결처럼 평온히 시공간을 초월해 영원한 세계에 보존되는 거야. 너는 그렇게 존재하다가 우연히 지금 모습으로 언제 부서져 버릴지 모르는 여기, 불완전하게 밀폐된 방에 잠시 머물러 있던 거야. 이런 사소한 곳에 존재하는 그들에게 네 죽음을 이해시키려는 것은 한낱 먼지가 세상을 다 더럽혀 보겠다고 날뛰는 것만큼 무의미한 거야.’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게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인다.

‘그래, 그렇지만…… 난 이해시키고 싶어. 이렇게 죽는다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채로 끝나버리고 말 거야. 주변 사람들, 심지어 가족조차도 혀를 차면서 이렇게 말하겠지. 뭐가 부족해서, 그게 뭐가 힘들다고……. 거창한 무언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결국 그 흔하디흔한 우울증으로 죽었다고 생각한다니, 말도 안 돼. 내 죽음의 가치를 그렇게 판단하게 둘 수 없어.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눈물 젖은 빵이 주는 뉘앙스처럼 초코파이 열두 개와 몇 개의 요구르트로 일주일을 버텼을 때도, 얇디얇은 벽 사이로 새벽마다 신음하는 부부의 그들만이 좋은 소음을 들으며 새벽잠을 깬 지하방에서도, 성격 좋아 보이는 건달 아저씨가 너의 업보라며 못난 부모가 쌓아 올린 빚더미에 어린 청춘을 살포시 올려놓았을 때도 ‘죽음’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없는 말이었다. 나에겐 세상을 정복할 강력한 영감이 있었고 우주 만물이 원하는 것을 다 줄 만큼 무한한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게 세상과 온전히 하나가 되자 마침내 고달픈 잔상들을 욱여넣을 수 있는 공간이 점차 만들어졌다. 그렇게 서른일곱이 되었다. 이제는 대문을 닫는 소리만 들려도 엄마를 보려고 현관문에서 뛰쳐나오는 두 아이의 엄마고, 내가 유일하게 나의 본색을 드러내며 으르렁거려도 받아주는 착한 남편이 옆에 있다. 심지어 지긋지긋한 빚이라는 단어를 잊은 지 오래일뿐더러, 잘 나가는 사장님 소리를 들으며 또각또각 황금색 하이힐을 신고 꽤 그럴듯하게 세상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삶을 계속 통제하며 살 수 있으면 좋으련만 세상은 나에게 맞춤 제작되지 않았음을 간과하고 있었다. 우주는 점점 팽창되고 있고 나에게 원하는 그것도 함께 확대되어가고 있음을 느꼈을 때 영원할 것 같았던 보랏빛 영감은 위험하게 사그라들어 있었고 마르지 않을 것 같았던 가능성은 어느새 빈 찻잔이 되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멍한 눈으로 허공을 휘저어 다시 담아내려 해도 세상은 인색하게 덧없는 침묵만 쥐여줄 뿐이었다. 나를 고귀하게 만드는 잣대가 무너지고 있다. 거대한 공포가 일종의 바이러스처럼 내 영혼을 갉아먹고 있었다. 

'내가 볼품없는 존재라는 것을 들켜버리느니 세상에 없어져 버리는 편이 낫겠어.' 

초라한 본모습이 드러나면 세상은 실망하고 삶은 다시 저주받을 거야. 나를 향한 잔혹한 고문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는 이런 고귀한 이유로 죽음을 선택한 거야. 단순한 우울증이 아니라고. 내 죽음을 헐값에 팔 수는 없어. 내 죽음은 우습지 않아. 내 죽음은 가치 있어!’ 무시무시하게 고요한 우주 한가운데서 절규하듯 소리쳐댔다.

‘넌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때가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그의 눈동자가 슬퍼진 것 같다. 그리고는 묵묵히 나와 함께 걸었다. 그와 함께 걷는 이 길이 처연하고 아프다.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 사이에도 밀물과 썰물의 악순환이 괴롭혔고, 잘 살아가나 싶다가도 다시금 잔병치레하는 날도 있었지만 아직 숨 쉬고 있다. 8년 전 썼던 파일을 꺼내 거친 문장들을 다듬으면서 조용한 절규에 사로잡혔던 그날을 집중적으로 마주했다. 나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이해하려고 애쓴 흔적들이 처절하다. 

내가 밝힌 수천 개의 조명을 하나씩 끄고 집중해본다. 칠흑같이 어두워질수록 나를 좀먹고 있던 것, 수렁으로 끌어내리려는 존재가 넓어진 의식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황홀히 빛나고 있던 나의 빛이. 살짝 가려진 태양으로 생긴 한 줌 그늘에 가려진 줄 모르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질 거라는 잔혹한 망상에 사로잡힌 아둔한 내가 보인다. 

‘미로 같은 삶에서 지탱할 거라곤 나 자신밖에 없었어.’ 

움츠려 앉아 있던 그녀가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우리는 눈이 마주쳤다. 빛이 꺼져가는 걸 보면서 자신도 함께 사라져 감을 온몸으로 느낀 그녀의 고통이 마음에 와서 박혔다. ‘괜찮아. 잘했어. 누가 뭐래도 잘 살았어.’ 나는 그녀를 와락 껴안고 함께 울었다. 

이제 조금은 안다. 나를 의심하는 순간 어둠의 그림자는 다시 조용히 나타나겠지만, 찬란해도 은은해도 나는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내안의 나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는걸. 그리고 당신도 그렇다는 걸. 우리 모두 그렇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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