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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마린 Apr 10. 2022

You did a good job

'잘했다'라는 말에 대한 당신의 기준은?


몇 년 전 친구따라 강남가는 대신, 한어 수평 고시 즉 중국어 능력 시험인 HSK(汉语水平考试) 5급 시험을 보았다. 애당초 시험에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친한 친구 하나가 5급 시험을 준비한다길래 이 기회 아니면 언제 하겠나 싶어서 급 신청하고 남은 기간동안 매일 같이 카페에 모여서 공부를 했었다.

HSK시험은 중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을 대상으로 표준 중국어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험이다. 중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하면서, 국내외에서 HSK 시험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시험은 지필로 작성하는 PBT와 컴퓨터로 치르는 IBT가 있는데, 나는 IBT를 응시했다. IBT는 컴퓨터로 작성하기 때문에, 작문 시험을 볼 때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병음만 정확히 알고 있으면 한자를 정확하게 쓸 줄 몰라도 작문이 가능하다 것이 장점이다. 하지만, 듣기와 독해는 화면을 보면서 문제를 푸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데다, 필기구 지참이 금지되어 있어 듣기 시간에 메모를 할 수도, 독해 시간에 본문에 줄을 그을 수 없다는 것이 매우 아쉬웠음..

처음 중국 왔을 때 내 이름조차 말할 줄 몰라서, 정말 기초부터 배웠던 내가 중국에서 지낸 시간이 약 1년이 넘어가면서 제법 실력이 늘었다. 작년 이맘때 3급 시험을 봤던걸 생각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인듯!!
급 신청하고 공부하게 되었지만, 그동안 중국어 공부를 해 온 것들이 있어서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든 합격은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점수 발표나기 전까지 계속 있었다. 300만점 만점에 180점만 넘으면 합격이라는데, 같이 시험 준비를 하는 벨기에 친구는 아무튼 180점만 넘으면 된다는 마음가짐으로 공부하는데 반해, 나는 처음부터 이왕 시험 보는거 점수가 나쁘면 안된다는 부담감, 혹은 기왕이면 친구보다 내가 조금 더 잘 봤으면 하는 욕심이 있었다. 


후에 '시험에 대한 부담감'에 대해 서양 친구들과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여기서 만난 대부분의 한국인이 시험에 대한 부담감이 큰것 같다며 자신들이 보고 경험한 한국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시험 며칠전부터 밤낮을 바꿔가며 밤새 공부하던 룸메 이야기나, A를 받았는데도 기뻐하지 못하고 A+를 받은 다른 친구 점수와 비교하며 우울해 하던 친구, 시험을 잘 봤냐고 물어보니 망쳤다고 이야기 했는데, 알고보니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친구의 이야기 등등.. (후에 그 친구의 점수를 알고나서 이렇게 잘 쳤는데 왜 망쳤다고 했냐고 물어보니 다른 친구들이 대부분 시험을 못 본 것 같아서 잘 했다고 이야기하면 자랑하는 것처럼 들릴까봐 이야기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그들에게는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10대의 이야기는 충격적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나온 나에게는 결코 생소하지 않은 이야기이자 일부는 나의 경험담이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자라온 환경이 전혀 다른 서양 친구들의 눈에는 조금 이해하기 힘든 모습인 것 같았다.
서양 친구들도 시험을 준비하고, 시험을 치는 것 자체는 스트레스라고 했지만, 높은 점수를 받지 못지 못할까 걱정하는 경우는 잘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반대로 나는 서양 친구들의 시험(특히 점수)에 대한 낮은기준(?)을 보고 신선하게 느끼면서도 부럽다고 느꼈던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당시 남자친구였던 남편이 HSK 5급에 응시하여 합격을 했었는데, 커트라인보다 아주 약간 높은 점수로 합격했었다. 솔직히 내가 그 점수였다면 합격은 했어도, 누군가 점수를 물어보면 절대로 말 안했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남편은 겨우 턱걸이로 합격했던 자신의 점수를 가지고 다른 친구들과 같이 농담을 주고 받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참 신기하다 싶었다. 왜냐하면 쿨한 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은 스스로가 본인이 이뤄낸 성과에 대해 정말 만족해 하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남편 주변의 반응도 '합격했으니 축하한다, 수고했다'가 대부분이었다. 누구도 아슬아슬하게 커트라인을 통과한 것에 대해 얕잡아 보지도, (이미 남편 스스로가 5급 합격에 대해 만족하고 있기도 했지만..) '더 잘 할 수 있었을텐데'하고 아쉬워 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 때의 성취감과 만족감을 바탕으로 더욱 열심히 중국어에 매진하여 지금은 중국어 통번역 일을 할만큼 실력이 일취월장 하였다. 남편에게 있어 적당한 자기 만족과 스스로도 뿌듯한 성취감은 다음 여정을 가는데 좋은 원동력이 되어주었고, 지금은 대학에서 중국어로 강의를 할만큼 중국어가 유창하다.

학창 시절을 한번 생각 해 보자. 이뤄낸 결과에 기뻐하기도 전에 누구는 더 단기간에 점수를 만들었다고도 하고, 누구는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이야기들이 먼저 들린다. 나와 공부를 못하는 아이와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나보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와 비교하는 것은 나를 위한 채찍질이라 여겨왔다. 좋은 점수를 받는 것은 (열심히 공부했다면) 당연한 일이지만, 그렇지 못한 일은 죄책감을 가질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늘 앞으로 나가기 바빴던 것 같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가 좋고 나쁘고 간에 그것들을 충분히 돌아볼 여유 따위 없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 HSK 5급 결과가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자랑할만큼 훌륭한 점수가 절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커트라인은 꽤 넘긴 편이라 다행이다 싶어서 안도했다.
시험 점수가 발표되던 날, 친구들에게 많은 축하를 받았다. 그동안 공부한 것에 대한 격려의 포옹을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버드 합격도 아니고 고작 중국어 시험에 합격했을 뿐인데 정말 요란하게 축하를 받았다.
나보다 더 잘하는 사람들도 수두룩 할텐데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축하받을 일인가'가 싶어서 괜히 민망했다. 나중에 이 이야기를 남편에게 이야기 했더니, 무심하게 한마디 던진다.
'WHO CARES other ppl?  YOU DID A GOOD JOB!'           

   

그래, 누가 뭐라고 어떻게 생각하는게 무슨 상관인가?

내가 열심히 최선을 다했음은 절대 변하지 않는 사실인데.. 

나는 꽉 붙잡고 있던 체면을 살짝 내려놓고, 나의 노력과 수고에 남편과 함께 축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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