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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관악산 시지프 Nov 16. 2022

삶이 베이글이더라도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영화 내용 일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주변에 귤나무밖에 없는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영화관까지 가려면 시간이 차를 타고 왕복 한 시간 정도 걸린다. 그래서 영화만 보려고 먼 거리를 운전해 가기보다는 주변에 일이 있을 때 겸사겸사 영화를 보고 오는 편이다. 얼마 전에도 영화관 쪽에서 행사가 있어 근처에 간 김에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라는 영화를 봤다. 사실 별 기대 없이 본 영화 치고는 마스크가 축축해지도록 눈물을 쏟는 바람에 상영관을 나오는 길이 꽤나 부끄러웠다. 생각보다 주변 사람들이 내게 관심이 없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깜깜한 상영관에서 밝은 바깥으로 나왔을 때 혹시라도 누군가 내 새빨간 눈두덩이를 유심히 보진 않을지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에서 주인공들은  없이 많은 평행우주를 여행하며 우리의 삶이 정말 작다는 것을 알아간다. 물론  영화는 픽션이지만, 과학적 사실을 바탕으로  우주 다큐멘터리를 보더라도 광활한 코스모스(우주)  아름다운 모습에 대한 감탄과 함께 우리 삶에 대한 회의감을 자아낸다. 우주의 무한한 시간, 영겁의 공간 속에 나라는 존재는 정말 작다는 말로  표현할  없을 만큼 사소하다. 요즘 우리 집에 있는  사소한 존재는 부쩍 감성적인 호모 사피엔스가 되어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별자리를  알진 못하지만 이맘때면 별자리를 모르는 사람도 “  모레시계는 뭐야라고 할만큼 밤하늘에 오리온자리가 훤한데, 삼백일쯤만에 다시 마주한 별들이 반가우면서도 평생 닿을  없을 거리에 쓸쓸한 마음이 든다.



좁쌀만 한 태양 모형(위)과 모형에서 프록시마 센타우리까지의 거리(아래)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방영한 '스티븐 호킹의 지니어스' 중 참가자들이 우주의 거리를 축소된 모형으로 실험해 보는 모습이다.

태양계에서 태양은 유일하게 스스로 빛을 내는 천체, 즉 별(항성)이다. 이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다른 별은 '프록시마 센타우리'로 지구에서 빛의 속도로 4.2년을 가면 닿을 수 있다. 위 사진은 태양이 모형처럼 작아졌을 때 우리의 이웃 별까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준다.

2036년에는 태양에서 그나마 가까운 이런 별을 향해 탐사선을 발사하는 '스타샷(star-shot)' 프로젝트가 준비 중이다. 이 탐사선은 광속의 20%에 달하는 속도를 낼 수 있어 4광년쯤 떨어진 우리의 이웃 별에 닿는데 대략 20년이 소요된다. 계획대로라면 넉넉잡아 2060년 나는 호호 할머니가 되어 처음으로 태양계가 아닌 다른 항성계의 근접 사진을 볼 수 있다.

내 머리 위에 있는 전등의 불빛이 내 눈에 닿는 속도를 생각하면 빛의 속도는 우리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빠르다. 그럼에도 우주는 너무 거대해서 빛의 속도마저도 느리게 느껴지도록 만든다.



허무함이라면 우주뿐만 아니라 우리 세대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매일 아침 간신히 눈을 뜨고 일어나 출근을 하고, 손님들이나 직장 상사에게 멘탈이 바스러지면서 버텨도 평생 벌지 못할 돈을 누군가는 부동산 투기로, 주식으로, 코인 투자로 짧은 시간 안에 버는데 부러운 마음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다. 그래서 얼마 전까지 빚을 내서라도 일확천금의 기회를 노리는 ‘빚투’가 성행했고, 여기에 재기 불능해진 청년들이 늘어나자 국가가 직접 구제 방안을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만약 내가 젊음을 다 바쳐 열심히 뛰어본들 그게 제자리 뛰기에 불과하다면 열심히 사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 회의감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이렇게 작고 사소하고 허무한 내 삶을 바라보다 보면 굳이 열심히 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출근하기 너무 귀찮아서 늦장을 부리다 십 분쯤 지각을 해도, 건조기에 돌린 빨래를 개기 귀찮아서 옷에 주름이 져도, 밥 먹고 설거지를 하기 귀찮아서 개수대에 그릇을 잠시 쌓아두어도 태양은 계속 그 자리에서 빛날 테고 우리 은하도, 안드로메다 은하도, 라니아케아 초은하단도 우리보다 훨씬 오래 계속 그 자리에 있을 텐데 오늘 하루쯤은 괜히 아픈 척 꾀를 부려 운동을 빠져 봐도 괜찮지 않을까.



'세일즈맨의 죽음' 공연의 한 장면
세일즈맨의 죽음은 미국의 경제 대공황을 배경으로 한 아서 밀러의 희곡 작품이다. 여기서 주인공 윌리 로먼은 평생을 세일즈맨이자 한 가정의 가장으로 성실하게 살아왔고, 그것을 본인의 자랑으로 여기지만, 불황과 함께 사회의 낙오자가 되고 만다. 다음은 윌리가 그의 아들인 비프와 나누는 대화이다. 배우들의 모놀로그로도 활용되는 장면인데 나도 배우였다면 해보고 싶을 만큼 아끼는 장면이다.


비프 : ... 아버지! 전 오늘 손에 만년필을 쥐고 11층을 달려 내려왔어요. 그러다 갑자기 멈춰 섰어요. 그 사무실 건물 한가운데에서 말이에요. 그 건물 한복판에 멈춰 서서 저는, 하늘을 봤어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들을 봤어요. 일하고 먹고 앉아서 담배 한 대 피우는 그런 시간들을요. 그러고 나서 만년필을 내려다보며 스스로에게 말했죠. 뭐 하려고 이 빌어먹을 놈의 물건을 쥐고 있는 거야? 왜 원하지도 않는 존재가 되려고 이 난리를 치고 있는 거야? 왜 여기 사무실에서 무시당하고 애걸해 가며 비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거야? 내가 원하는 건 저 밖으로 나가 내가 누군지 알게 되는 그때를 기다리는 건데! 전 왜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거죠. 아버지? (윌리의 눈을 자신에게 돌리려 하지만 그는 멀리 떨어져 왼쪽으로 간다.)

윌리 : (증오심에 가득 차 협박하듯이) 네 인생의 문은 활짝 열려 있어!

비프 : 아버지! 전 1달러짜리 싸구려 인생이고 아버지도 그래요!

윌리 : (통제할 수 없이 격양하여 비프에게 돌아서서) 난 싸구려 인생이 아냐! 나는 윌리 로먼이야! 너는 비프 로먼이고!


내 작은 인생의 가치를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비프는 절망감에 휩싸여 아무리 노력해도 나아질 수 없는 자신의 인생을 '1달러 싸구려 인생'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번에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다. 나는 노인과 바다를 초등학교 때 당시 사교육 시장에서 유행하던 독서토론 아카데미를 다니며 처음 읽었다. 왜 초등학생에게 노인과 바다를 읽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성장하면서 소설을 서서히 소화해 가라는 의미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치기엔 노인과 바다의 첫 감동을 빼앗겼다는 게 많이 아쉽다.


산티아고(노인)는 첫 장부터 패배자로 소설에 등장한다. 이 나이 든 어부는 여든 날 하고 나흘이 지나도록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고 사람들은 그가 '살라오(가장 운이 없는 사람)'라고 말한다. 끝 장에서도 노인은 표면적으로 패배자다. 그가 오랜 심혈을 기울여 잡은 청새치는 상어에게 몽땅 빼앗겨 해변에 도착해선 살점이 남아있지 않다.


그럼에도 헤밍웨이는 이 불행한 노인을 통해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그린다. 그는 과하게 기뻐하지도 과하게 슬퍼하지도 않으며 묵묵히 어부의 삶을 살아내고 해변으로 돌아와선 다시 그가 아끼는 소년을 마주하고 사자 꿈을 꾸는 데서 평안함을 느낀다.


내가 삶의 끝에서 마주하는 게 청새치의 등뼈뿐이더라도 나는 그 시간을 성실하게 살아내고 사자 꿈을 꾸며 잠에 들 수 있을까.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에서 한참 주인공이 삶에 벅참과 감동을 느끼고 있을 때 갑자기 배경음악이 바뀌며 악당 역할을 맡은 등장인물이 다가와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장면이 있다. "아주 따뜻하고, 감동스럽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지? 그런데 그것도 한순간이야."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정말 마음에 드는 대목이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주인공이 삶에 감격스러움을 느끼는 데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 삶에 이렇게 희망찬 순간이 있으니 자, 지금의 고통도 기꺼이 이겨낼 수 있어.'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그런 옛날 디즈니 프린세스 무비에 나올 것 같은 엔딩을 내지 않는다.



나는 토실한 청새치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 삶은 새까만 베이글일 수도, 끝내  뼈만 남을 물고기일 수도 있고, 거기에 나는 우주의 티끌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 현명한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삶을 살아내는 것이 슬프고, 그 과정을 함께하는 동료에게 소소한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슬프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들이 있다. 사실 잘 모르겠다. 이제야 조금씩 내 앞가림을 하기 시작했는데 인류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지혜가 내게 있을 리 없다.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장면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에서 남편 역할로 나오는 웨이먼드는 삶이 이렇게 허무하니 다 같이 죽어야겠다는 사람들과,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사람들 사이에 서서 이야기한다.


"내가 세상의 좋은 면을 보려고 하는 건 그냥 순진해서가 아니야. 그건 전략적이고, 필요한 거지. 내가 모든 것을 견디면서 살아남기 위해 깨우친 방법이야. ...

나도 정말 혼란스러워. 매일매일.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
나도 잘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어. 그럼에도 내가 아는 거 하나는 우리가 모두 친절해야 한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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