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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투리 Feb 27. 2024

특수학생 진환이의 오른손

10년 전 어느 날... '한계'의 벽 앞에 가져야 할 태도

 


 20대 청춘에게 너무나도 가혹해 보였던 10년 전 그 당시의 분위기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 취업을 위해 뭐라도 해야 했었던 그때 내가 신청했던 봉사활동은 '아름다운 선의'라기보다는 그저 모자란 스펙을 만회하기 위한 발버둥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내가 과연 누구를 도울 처지인가라는 의구심으로 시작했던 특수학교 봉사활동에서도 나는 그저 시간을 때우다가 오기 일쑤였다. 특수학생에 대한 지식이 전무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느꼈던 건 사실 '보람'보다는 현실에 대한 '무력감'에 가까웠다. 누굴 돕는 것에도 일종의 스펙과 같은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현실의 벽 앞에 나는 또다시 무릎을 꿇었고 어느새 도망갈지를 망설이고 있었다. 







 그렇게 현실에 대한 두려움과 스스로에 대한 의심이 커져갈 때쯤, 진이라는 아이를 만났다. 이 아이의 의사표현은 오로지 오른손. 주먹을 쥐면 좋고 손을 펴며 싫다고 알리는 게 전부였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진이는 항상 오른손 주먹을 꼭 쥐면서 책을 읽겠다고 떼를 쓰곤 했다. 기어서 빨리 도착하는 레이스에 졌을 땐 분해서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는데 사실 진이는 본인의 몸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에 레이스에 이기기란 불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의 한계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이 아이에게 눈앞의 한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 불공정한 레이스를 선생님께서 진행했던 것을 보면 사실 그 자리에서 한계에 집착했던 건 나뿐이었던 것 같다. 진이를 보면서 부족한 것에만 집착하고 겁을 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섰다. 밥을 직접 먹이는 게 어려우니 식사시간엔 교실에 남아서 청소를 하거나 무거운 것을 옮기는 몸으로 할 수 있는 일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내가 아이들을 위해 도울 수 있는 일도 늘어났다. 한계라는 벽 앞에 바꿨던 나의 태도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그 한계를 작아지도록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집에 돌아가며 느꼈던 보람의 크기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이전과는 차이가 났다.









 아기 코끼리에게 밝은 오렌지색의 줄로 나무에 묶어두면 처음엔 안간힘을 쓰다가 한계를 인정한 뒤 온순하게 줄에 묶여서 산다는 이야기가 있다. 심지어 힘이 100배 이상으로 성장한 시점에도 말이다. 도전보다 포기가 익숙했던 나의 20대 시절을 돌아보면 이 아기 코끼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포기 속에서도 가끔은 내 한계를 잊고 도전했을 때, 의외의 결과를 얻기도 했다. 포기했던 결혼, 출산, 그리고 이력서조차 넣을 수 없었던 높아 보이기만 했었던 큰 회사로의 이직. 눈앞의 벽이 마치 큰 장애처럼 보였던 나에게 그 앞에서 보여야 할 태도는 진이의 꽉 쥔 오른손과 같았다. 누구에게나 이런 한계의 순간은 자주 찾아온다. 하지만 나는 진이에게 배웠다. 이것을 부정하고 피해서 돌아가기보다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오른손을 꽉 쥐면 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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