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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천우 Apr 18. 2023

순대, 내 고향

연변찹쌀순대를 먹다


일요일 아침, 침대에 들러붙어 몇 시간째 핸드폰을 솨솨(刷刷)하고 있었다. 그때 틱톡에서 이 영상.



오늘 아점은 너다!


얼른 침대를 빠져나와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어느새  벚꽃 지고, 비 온 뒤 쌀쌀한 거리를 20분쯤 걸어 북대 야시장 골목, 영상 속 '고향 순대' 찾았다.


중국어로 어설프게 주문하는 내 억양을 듣 사장님이 바로, 한국 사람이냐고 우리말로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까 한국 어디 출신이냐고 묻는다. 출신 도시까지 물어보는 건 거의가 한국 거주 경험이 있는 조선족이다. 역시나, 사장님도 서울, 경기도, 제주도 등등 전국을 돌아다니며 한국에서 7년 동안 일했다고 한다.



어묵탕처럼 맑은 국물에 투박하게 가위로 자른 순대가 소복 담긴 순대탕이 나오고 나는 고춧가루 양념을 듬뿍 푼다. 순대를 한 입 베어 물며 사장님 이야기를 듣는다. 당면이 들어있는 한국 순대와는 달리, 연변 순대에는 슴슴한 찹쌀이 들어 있어 국밥을 먹는 느낌이다. 담백 순대에 양파양념과 고수의 새콤향긋한 맛이 절묘하게 어우러진다.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고 오직 돈 버는 것 밖에 모르던 한국인 건설업자 따라 전국을 돌빌라도 짓고 원룸도 지었다고 한다. 조선족이긴 하지만 일 눈치가 빨라 그 건설업 사장이 유독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그 한국인 사장은 결국, 자신의 빌라를 짓고 늦장가도 가고 시골 부모님을 모셔다가 함께 살게 되었다고 한다.


어느덧 고향 순대 사장님도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연길에 한족 아내와 아이를 두고, 한국에서 혼자 일하며 지독하게 돈을 모았다고 한다. 고향 연길로 돌아와서는 한국에서 돈을 벌어온 다른 조선족들처럼 카페나 삼겹살집을 차리지 않고 이 순대집을 차렸다. 어린 시절, 할머니에게서 배운 순대맛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매일 새벽 2시에 일어나 그날 판매할 순대를 직접 만들고, 가게 홍보 영상을 촬영해 틱톡에 올리고, '순대탕 + 감자전 = 9.9元(1,900원)' 하는 틱톡대박메뉴도 개발했다.  저녁에는 바로 앞 북대 야시장에서 순대를 판다. 집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 년 내내 휴일 없이 아내와 가게를 여는데, 보통은 그날 만든 순대가 다 떨어지는 저녁 7시쯤에야 퇴근한다고 한다. 그런 일과에, 나라면 벌써 으스러졌을 텐데 사장님은 에너지가 넘치고 밝기만 하다.


연길 북대야시장
새벽 2시에 일어나 순대를 만들고, 하루 종일 순대탕을 팔다가 저녁이 되면 야시장에서 또 순대를 파는 고향순대집 사장님


가게에는 계속 손님들이 드나들었다. 나처럼 틱톡을 보고 찾아온 젊은이들도 있었지만, 무게를 달아 순대만 사가는 조선족 할머니 단골들도 많았다.


가게 이름 때문일까. 이 먼 연길에서 생소한 찹쌀순대를 혼자 씹다 보니 마음은 어느새 사십여 년 전, 시장 따라가면 엄마가 사주던, 쌈장을 듬뿍 찍어 먹던 내 고향 순대로 흐른다. 대학교 앞에서 연애초짜 남이 사 준, 신기하게도 소금에 찍어 먹던 전라도 순대도 생각난다. 비 오는 날, 들깨와 부추무침을 담뿍 넣은 걸쭉한 순대국밥에 소주잔 기울이던 옛 친구 생각도 난다. 그렇게 먼 길을 돌고 돌아, 이제는 순대 안에 당면 대신 찹쌀이 들어 있는 연변순대(米肠)도 먹어본다. 육십 살 쯤에는 어떤 곳에서 또 어떤 순대를 먹고 있을.


순대탕도 든든하게 먹고 고향 생각도 하면 기분 좋게 가게를 나오는데, 상술 좋은 사장님이 골목 입구에 설치해 놓은 확성기에서 아련한(?) 고향의 소리가 흘러나온다.


순대 한 사발 10원 감자찌짐
순대 한 사발 10원 감자찌짐

(내 고향에서도 부침개를 찌짐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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