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삼삼이 May 11. 2022

말벌 님아, 그 집을 짓지 마소

[마당에 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 - 4]

완연한 봄과 함께 테라스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종종 찾아오고 있다. 어느 날 아침 올리브나무에 붙어있던 '말벌' 한 마리가 저녁이 될 때까지 같은 자리에 꼼짝 않고 붙어있는 것이 아닌가. 불안했다. 녀석이 그냥 둘러보러 온 것이 아니라 무허가 건축물을 짓고 있는 것 같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지난해 가을에도 호리병벌이 테라스 기둥 뒤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주먹만 한 집을 지어 119를 불러 제거해 본 적이 있어 바로 알아챌 수 있었다.



녀석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올리브나무를 자세히 들여다보니 예상대로 벌집을 발견할 수 있었다. 아직은 손톱보다 작았지만, 분명한 벌집 모양이었다. 주변에 튼튼한 나무도 많을 텐데 왜 하필 우리 집 테라스, 그중에서도 이 작은 올리브나무에 집을 지었을까. 작은 벌집이 눈덩이처럼 커지고 말벌 친구들이 모여드는 건 시간문제라는 걸 알고 있었다. 녀석이 없는 틈을 타 벌집을 손으로 떼어냈다. 하지만 이튿날이 되자 말벌은 다시 같은 올리브나무의 같은 위치에 하루 종일 매달려 다시 집을 짓고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대응할지 고민하다가 '멀리서 호스로 물 뿌리고 문 닫기' 전술을 택했다. 소중한 올리브나무에 살충제를 뿌릴 수는 없었다. 그게 서로를 위해 가장 안전하고 간편한 방법이었다. 방충망 바로 앞에 서서 3~4미터 거리에 있는 올리브나무까지 호스를 이용해 세차게 물을 뿌리고 집안으로 재빠르게 들어와 방충망을 닫았다. 남편의 정밀타격으로 벌집은 떨어졌고, 물벼락을 맞은 벌도 어디론가 날아가 다시는 올리브나무에 오지 않았다. 그렇게 끝나나 했지만, 다음날 오랜만에 파라솔을 펴보니….



깜깜하고 아늑한 파라솔 안에 훨씬 더 몸집이 큰 말벌이 집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아직 크기가 작았기 때문에 다시 한번 물 뿌리기 전략으로 벌집을 제거했다. 다른 테라스에 사는 이웃은 벌이 싫어하는 향이 난다는 페퍼민트를 가까이 둘 것을 추천했다. 마침 심어두었던 페퍼민트 싹이 며칠 전에 나왔지만, 향이 날 정도로 크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다.


사실 지난해 호리병벌 벌집을 제거할 때 마음이 좋지만은 않았다. 벌집 사라진 후에도 삶의 터전을 잃은 녀석들이 며칠 동안 찾아와 빙빙 돌다 사라졌는데 마치 '우리 집이 어디 갔지…'하는 것 같았다. <꿀벌 대소동> 배리가 생각나기도 하고..ㅎ 하지만 그들과 같은 공간에 살 수는 없기에, 벌들이 평수를 늘리기 전에 재빠르게 발견해 제거하는 게 최선인 것 같다. 당분간은 감시태세를 유지해야 할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데크 페인트칠이 90만원이라구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