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잠깐 놔봐, 한풀이 좀 할게요
주의: 감정 발산의 장입니다. 원치 않으시다면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보고 가세요. (마지막엔 영상이...)
어느 날, 온몸이 가렵기 시작했다.
벌레가 온몸을 기듯이, 구석구석, 하루 종일, 끔찍하게.
슬픔엔 이렇게 5단계가 있다던데...
(1) 부정 → (2) 분노 → (3) 타협 → (4) 우울증 → (5) 수용
그럴 리 없어. 평생 피부 안 좋아본 적 없는데. 아직 젊고.
금방 사라지겠지.
가려움증은 사라지기는커녕 내 일상을 모조리 갉아먹기 시작했다.
한선염, 수포, 습진, 콜린성 두드러기 - 온갖 피부질환이 이때만을 기다린 것처럼 달라붙었다.
(평생 피부가 좋았던 대가(?)를 받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빨리 해결하자.
병원에 빨리 가면, 나을 수 있을 거야.
동네병원, 피부과, 대학병원, 한의원 - 갈 수 있는 병원은 다 갔다.
대학병원에선 부작용을 얻었고, 한의원에선 희망과 함께 약간의 차도가 있었으나
여전히, 지옥이었다.
역경과 우울은 지겹도록 겪고 이겨내어, 이젠 인생에 어떤 고난이 와도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만이었다.
"나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드디어 행복하다"고 말해버려서
"오, 그래? 그럼 시련 추가~"하는 건가, 누군가?
왜? 왜 내가? 왜 지금?
타협할 틈 따윈 없다. 나는 여전히 똥통 속인데 누구와 어떻게 타협을 하겠는가.
타협 대신 자괴감, 우울증 얹고 무기력이다.
매일의 하루를 견뎌내는 것은 영겁 같았으나, 시간은 흘러 두려움을 자아냈다.
죽을병은 아니었으나, 나의 영혼은 죽어가고 있었다.
매일 눈을 뜰 때마다 또 하루가 시작되었음에 괴로웠고,
그냥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게 낫다 생각했다.
영원함.
만성질환의 무서움은 여기에 있다.
평생 이 지옥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족쇄. 무기력.
'건강을 잃는다'는 말의 무게를 알아버렸다.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 고통받던 사람들의 고통을 이제야 여실히 느낀다.
아, 너무 이른데. 너무 많이 남은 생을 이렇게 살아갈 순 없다.
사라지거나 도망치거나, 완전히 무너진 인생을 걸고 나는 선택을 해야 했다.
수용한다면 난 평생 스스로를 혐오하며, 온몸을 긁으며, 가리며, 아침이 오지 않길 기도하며 살아가야 한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기적이라는 단어를 쓰기 싫다. 너무나 귀한 것이기에 다시 내게 오지 않을까 봐.
그러나 내가 있던 구렁텅이를 생각하면 이 단어를 대체할 말이 떠오르질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 같은 몸과 질병을 가지고 비슷한 환경 속에서 가진 것이 아니기에,
모두가 나와 같은 선택을 해서 좋아질 것이라곤 말할 순 없다.
다만 매일 내 몸을 겪는 것은 어느 의사도 아닌 나이기에,
이 치료들 너머 커다란, 어떠한 근본적인 변화가 내게 필요하단 것을 나는 차츰 확신해 갔던 것 같다.
이대론 안돼. 이렇게는 못 살아. 되찾아야 해.
일단 떠나자. 질병을 준 이곳으로부터.
다음 편부턴 요양여행을 어디로 떠났고, 어떻게 지냈는지, 어땠는지 풀어갑니다.
인스타그램에서도 이야기를 풉니다.
https://www.instagram.com/clear__fore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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