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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선우 Oct 21. 2022

실패 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하여

창작자와 독자, 소비자 모두의 입장에서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크게 두가지를 다룰 것이다. 첫째, 왜 <데뷔 못하면 죽는 병걸림>(2021)을 비롯하여 현대 판타지 회귀물이 유행하는가, 두 번째 영화 <헌트>(2022), <비상선언>(2022)같은 각 영화의 단독 주연급 배우들이 합작을 하는 영화들이 어떻게 이렇게 연달아 나올 수 있었는가. 첫번째는 독자의 입장에서, 두 번째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실패에 대해 어떤 압박을 느끼고 있는가를 말할 것이다.


삶은 실패에 관대하지 않다. 아마 현대사회만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고대에도 권력자 앞에서의 사소한 실수로 목숨을 잃은 이야기들은 있지 않던가. 하지만 사회가 점점 복잡하고 다원화 됨에 따라, 또 필요로하는 재화의 양과 종류까지 많아짐에 따라 실패에 관하여 각박해지는 면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대 판타지에서 회귀물은 이러한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강박을 대변한다. 아니, 대부분의 회귀 및 환생물들이 이러한 상황에 처해있다. 주인공의 상황은 단 한 번이라도 실패를 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아슬아슬한 상황에 처해있고 전생의 지식과 연륜이 본래 주인공의 나이대에서라면 발생 할 수 있었던 '실패'를 막는다. 그러나 현대 판타지에서의 회귀가 다른 장르에서와 다른 점은 그것이 몹시 구체적 현대사적 사건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를 통해 주로 금전적 이득을 취한다는 것, 그리고 그를 통해 자신의 불우한 과거에는 실패로 끝났던 것을 수복시키는 것이다.


<데뷔 못하면 죽는 볌걸림>에서 주인공은 미래에 대기업으로 급부상하는 소속사를 찾아간다. <도굴왕>(2016)에서도 주요 무덤들이 열리는 시기와 회사의 성장 속도등을 계산하여 실패하지 않는다. 단 한번의 큰 실수도 없이 과거를 변화시켜나가는 이들의 모습은, 실패하지 않는다면 성공할 수 있다 라는 현대인의 성공신화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한쪽에서는 슬로우블루머라는 말까지 사용하며 이른 나이에 성공하지 않아도 괜찮다. 돌아가도 괜찮다와 같은 말을 하지만, 많은 수의 사람들은 실패하는 순간 다시 되돌아올 수 없다는 강박에 시달리고있다. 불안장애가 현대인의 기저질환이라고 괜히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불안심리는 현대 판타지에서 회귀가 주목받는 이유와 맥락을 같이한다. 여기에서 앞서 현대 판타지의 주인공들이 과거의 기억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는 것이 괄목할 만한 포인트가 되는데, 돈이 현대물에서 성공의 척도가 되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돈이 있으면 실패해도 되돌아 갈 수 있다라는 사회적 통념 역시 이와 연결될 수 있기 떄문이다.


빙빙 돌려말했지만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오랫동안 준비해온 자신의 식당을 열었는데 하필 코로나가 터져 실패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주인공이 특히 유복하지 않은데 혼자 모은 돈으로 가게를 열어, 자본금을 다 날린 상황인데다 재취업까지 쉽지 않은나이라면 단 한번의 실패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고, 결국 성공 할 수 없도록 만들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귀를 하여 그 시기에 코로나가 터질 것이란 것을 알고 있는 주인공은 자본금을 주식시장에 던져 큰 이득을 번다. 그는 실패하지 않았다.독자들은 그런 이야기를 원한다. 실패했을 때 되돌아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인 제작자의 기준에서의 실패 강박역시 비슷한 맥락을 갖는다. 드라마나 영화 감독들 중 꽤 유명한 커리어를 갖고 있다가 새로이 찍은 영화가 폭망하여 다시 메가폰을 잡지 못했다. 큰 빚을 졌다와 같은 이야기들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신파나 클리셰, JK스튜디오식 플롯과 같은 것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영화를 제작하고 투자하는 입장에서는 결코 실패를 원치 않는다. 특히 패에 관한 불안은 한 두사람만의 문제가 아닌 대규모 프로젝트인 만큼 앞선 개인이 실패에 갖는 것 보다 훨씬 집요하고 강박적일 수 밖에 없다. 이는 영화 산업에서, 특히 제작위원회 체제가 들어온 이후로는 당연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앞서 했던 야이기를 두번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독자가 아닌 소비자의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자.


문화를 소비하는데에 있어서도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강박이 있다. 이는 최근들어 생긴 것에 가깝다. 자신의 커리어와 자본이 걸려있는 투자자와 제작자의 문제 뿐 아니라 소비하는 입장에서도 실패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기 힘들지 모른다. 영화비를 생각 해 보자. 불과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조조 7천원짜리 영화가 있었음을 떠올려보자. 현재 영화비는 아마 지역과 시간대 등에따라 다르겠지만 통상적으로 15000원 정도 한다. 가격이 오름에 따라 소비자에게 영화는 단 한 번 선택 할 수 있는, 신중히 선택해야 하는 비싼 문화생활로 전락한다.


굳이 영화관에 가지않더라도, 세계에는 너무나 많은 소비할 거리들이 있다. 다양한 동영상 플랫폼, 특히 넷플릭스와 같은 종류의 플랫폼들이 생겨나면서 우리는 전세계의 영화와 드라마, 만화들을 앉은 자리에서 볼 수 있다. 수작들만 골라본다고 해도 주말이나 방학 정도는 우습게 날릴 수 있을 것이며, 드라마를 좀 좋아한다 싶은 사람들은 거의 몇 년을 걸려도 다 볼 수 없는 작품들의 홍수 속에 살고있다. 그 시야를 유튜브나 트위치에까지 돌린다면, 평생 영상만 본다고 해도 다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수많은 선택지 속에서 시간이라는 자원의 희소성은 상승한다. 


소비자들은 비싼 문화생활비와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실패한 작품에 투자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리고 소비자들의 실패에 대한 불안감은 당연히 제작자쪽의 실패에 대한 압박으로 변한다. 영화평, 서평, 조회수, 썸네일 어그로, 주연 배우의 티켓 파워등이 지금에 와 점점 중요해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특히 넷플릭스가 우세해지고 극장을 찾는 관객이 많지 않은 근래의 상황에서는 앞서 언급했던 두 영화처럼 주연급 배우들이 두셋씩 등장하는, 어떻게보면 무리수 적이지만, 반대로 말하면 결코 실패하지 않기 위해 애를 쓰는 영화들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비슷한 기조를 게임광고에서도 볼 수 있다. 몇 년 전부터 하정우, 이정재 심지어는 강호동이나 유재석같은 연예인들까지 게임 광고를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영화에서 확실한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들을 여럿 기용하려 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근래 모바일 게임의 매출은 출시 후 약 2달 안에 판가름난다. 한 달만 지나도 비슷한 장르의 다른 게임들이 우후죽순 쏟아지기 때문이다. 플레이어들은 수 많은 게임의 홍수 속에서 게임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지고, 더 나아가 피로도를 느껴 이탈하는 경우들도 생긴다. 게임제작사들에서 초기 비용이 크게 들더라도 사전예약자와 충성도 높을 것으로 기대되는 오픈 초기 플레이어들을 끌어모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이런 문제는 텔레비전에서도 보이고 있다. 각종 영상 매체의 등장으로 가장 먼저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한 방송계에서는 이미 각종 예능 프로에 새로운 인물은 잘 나타나지 않고 20여 년 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원로 MC들만 계속해서 보이거나, 유튜브를 통해 이미 고정팬층이 확정된 인물들이 방송에 나오고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 역시 거의 사라지고 기존 유명 가수들 간의 경연 프로그램 위주로만 진행되고 있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 앞으로의 사회는 실패에 대해 더욱 혹독해 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러한 기조는 더 심해지지 않을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게 결국 문화예술계도 경력직과 중고신입으로만 채워진다면, 그 꿈을 꾸었던 20대들은 어디로 가야하는걸까 같은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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