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라는 단어 그 자체에 관하여
이... 글을 처음 써야지 라고 마음 먹은 건 6월 초 정유정 사건 때였는데 어쩌다보니 어영부영 밀려서, 그동안 한국에는 많은 일이 있었고,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그 당시에는 글을 올리기 부담스러웠고, 덕분에 어쩌다보니 뒷북같아 져버렸다.
엽기란 한자 그대로의 의미로는 기이한 이야기를 수집한다 혹은 선호한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엽기는 단순히 기묘한 이야기라기보다는 그로테스하고 고어한 이야기들을 지칭하는경우가 많다. 현재에도 토막살인과 같이 비정상적인 범죄에 엽기범죄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 역시 이 영향이다.
해당 단어가 가장 유행했던 시기는 90년대 말~2000년대 초중반까지이다. 당시에는 어디에나 엽기라는 단어가 붙어서 각종 플래시게임은 물론, 엽기토끼와 같이 잔인함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어보이는 캐릭터에까지 이 단어가 붙었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내 기억에 그 시기의 아이들은 살짝 광기에 가까웠다고 기억되는데, 저작권이나 아동보호에 대한 개념이 지금보다 몹시 약했음을 감안해도 <해피 트리 프렌즈> 같은 그로테스크한 성인용 애니메이션들이나 '절대 검색해서는 안 될 단어들' 이라 불리는 깜놀계 혹은 기괴한 그림들을 어린아이가 검색해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UCC나 플래시애니메이션과 같이 일반인들이 동영상이나 애니메이션을 손쉽게 만들 수 있는 덕분에 각종 짜집기형 호러물들도 범람하던 시기였고, 10대 특유의 "쫄았냐?" 에 질 수 없는 감각때문에 두려워하거나 이상하다고 느끼면서도 그런 영상들을 이 악물고 봤던 기억이 있다.
자극적인 영상을 보거나 게임을 한다고 해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인간은 환경과 유전의 산물이며, 필수 도덕교육 및 사회화가 잘 이루어진 이들이라면 자극적인 매체에 겨우 몇 번 노출된다고 해서 범죄자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 당시에는 뉴스에도 엽기라는 단어가 제법 많이 나올 정도로 당시를 풍미한 단어이자 일종의 트렌드였다고 기억된다.
엽기의 시대는 2000년대 후반에 끝난다. 인간은 과각성상태로 오래 지낼 수 없고, 고자극에는 지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지쳐서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각종 포털사이트등이 청소년 유해차단 및 저작권 보호에 힘쓰기 시작했고. CCTV가 늘어나고 검거율이 늘어남에 따라 연쇄 살인 사건이 줄어들며 자연히 엽기를 접할 기회도, 엽기 범죄가 보도 되는 수도 줄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사회 현상에 경제를 들먹이는 걸 정말 좋아하는데, 경제 성장률이 높은 동안에는 침체되어 있는 시기보다 범죄율이 떨어지는 경향이 있다. 한국은 2000년대 말 대침체의 시기를 비교적 가볍게 넘겼을 뿐 아니라 2010년대 급격한 성장을 이루며 말로는 다들 불황이라고 하지만 사회전체는 활기가 있는 시기를 보냈다. 그러는 동안 엽기는 사람들의 인식에서 많이 잊혀져 갔고, "참피"와 같이 가학적인 트렌드가 존재는 했으나 소수의 취향의 영역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그 엽기가 다시 대두되는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고있다. 나는 그 시발점을 2023년 5월에 있었던 정유정 사건으로 보고 있다. 그 느낌을 받은 지점은 가해자가 캐리어를 끌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가는 CCTV 장면을 보면서였다. 물론 가해자의 심리에 대해서 나는 분석할 수없다. 정신의학 전문가도 아닐뿐더러 직접 면담하지 않은 사람에대해 추론으로도 함부로 평가내려서는 안된다는 것이 기본 지침이니까. 다만 이런 생각은 해 볼 수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한다.
"저 애 CCTV에 찍힌다는 걸 모를리 없는데."
물론 거기까지 생각이 못 미쳤을 수도 있고, 딴에는 치밀하게 준비해서 걸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을지도 모르겠고, 너무 기분이 오르내리는 성향이어서 그런 것따위는 잠시 잊었을지도 모르겠다만은, 블랙박스도 CCTV 너무나 당연한 세상이며, 적어도 한 평생 한국에서 살아온 성인이라면 거기에 대한 자각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가해자의 모습은 자신의 범행을 크게 숨기려 들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이 일이 시작점이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이것이 시사하는 바를 두가지로 보았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그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범죄이력 같은 것이 남기를 바라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범죄 사실을 치밀하게 숨기지 않으려 하거나, 범죄 자체를 저지르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자신은 긍정적인 방향으로는 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면, 여기서 더 좋아질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자신이 하고 싶지만 사회적으로 금지된 일들을 참고 견딜 필요도 없어진다.
이것에 관해서는 어느쪽이 원인이고 어느쪽이 결과인지 알 수 없다. 사회적 규범을 지켜야한다는 의무감과 참을성이 부족했기에 소외계층에 잔존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고, 잃을 것이 별로 없기에 지키지 않기로 한 것인지 우리로서는 알 수 없다. 그냥 그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지 않을까정도만 생각해 볼 뿐이다.
더 이상참을 수 없다는 23년 7월에 신림에서 일어난 칼부림 사건에서 잘 느껴졌다. 해당사건의 특이한 점은 가해자가 또래의 성인남성들만 노렸다는 점인데, 동행한 여성분이 막으려하는데도 여성분은 밀어내고 남성만 찌르는 CCTV영상을 보면서 정말 기묘하다고 느꼈다. 가해자는 인터뷰에서 또래 남성에 대한 열등감 때문에 남성만 찔렀다고 말했다. 동물이건 곤충이건 특별히 원한 대상이 아닌 이상 습격을 할 때는 약해보이거나 작은 쪽을 노린다. 반격당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이다.
해당 사건이 기묘하게 보인 것은 그 본능에 가까운 영역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한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닌데 가장 젊고 건강한, 습격에 실패했을 시 역으로 공격 당할 가능성이 높은 2,30대 남성만 노렸다는 것은 그 리스크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건 개인대 개인간에는 원한 관계가 없을지라도 사회에 대해서는 더 이상참기 어려울 정도의 원한을 갖고 있었다는 뜻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 이유야 뭐 들자고 하면 많겠다. 앞서 경제얘기도 했고, 경찰대학 치안 정책 연구소에서 발표한 "경제고통지수와 범죄율의 연관성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경제고통지수가 1% 상승하면 강도, 절도, 살인, 폭력 범죄율은 각각 9.36%, 3.76%, 2.54%, 1.73% 증가한다고 한다. 경제 고통지수가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을 합친 값인 것을 생각하면, 실업률과 물가 상승률이 모두 하락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2023년 중에는 더 많은 사건 사고를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기분이 들곤 한다.
90년대 말, 최초로 엽기라는 단어가 유행할 때는 아직 사이코패스라는 개념도 없었고, 원한이나 금전적 관계가 없는 살인에 대한 케이스도 많지 않아 묻지마 살인에 대한 수사가 어려웠을 뿐더러 지금만큼 과학수사가 발전하지는 못했던 시기다. 덕분에 중범죄를 저지르고도 오랫동안 잡히지 않는 경우가 지금보다는 많았다. 그러나 현재는 살인/강도/강간/폭력 범죄의 경우 90%이상이 검거된다. 그리고 거의 대다수의 국민이 한국의 중범죄 검거율이 높다는 것, 그리고 범죄 이력이 장기적으로 자신의 인생에 걸림돌이 되리란 사실을 알고있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스스로를 내던지기로 판단을 내렸다는 것은 그들이 더 이상 사회에 속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을 죽였지만 이들의 심경은 자살시도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태인 셈이다. 나는 그렇기에 지금이 신엽기의 시대가 될 수 있고, 그렇다면 25년 전보다 훨씬 엽기적일 수 있게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한다. 물론 검거율은 그때보다 훨씬 높고, 그렇기에 연쇄살인까지는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 때문에 23년 8월에 일어난 서현역 칼부림사건이나 신림역 칼부림 사건처럼 그 자리에서 여러명을 죽거나 다치게 하는 일은 더 늘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한다.
지난 10여년 간 서브컬쳐 판에서는 이세계물이 유행했다. 나는 이것에 대해서 죽지 않으면 현재의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그 향유계층들이 생각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오타쿠 밈 중에 "오타쿠는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살을 하지 않는다. 다음 주에 나올 최신화를 봐야 하기 떄문에" 라는 말이 있었다. 하지만 방에서 묵묵히 다음화를 기다리던 이들이 더 이상 다음화를 기다릴 가치를 느끼지 않게 된다면?
죽음으로서 현재의 세계를 떠나 인정받는 상상이, 그런 상상을 하다보면 언젠가 괜찮은 날이 올지 모른다는 기대가 한계가 온다면?
최근들어 이세계물이나 빙의물의 인기가 시들하다. 지난 계절부터 히키코모리 청년에 대한 다큐멘터리들이 많이 보이고 있다. 인과성을 설명할 방법은 없다. 깊이 있게 연구되고 있는 분야도 아니니까. 그냥 편협하고 오타쿠같은 내 눈에 두 사이의 인과성이 과연 없을까? 라는 의문이 들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