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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병준 Mar 08. 2022

영화, 그 뒤의 이야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우에다 신이치로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삼류 영상감독이 우연히 원테이크 좀비 방송을 연출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촬영중 일어나는 돌발상황에 맞서 방송을 잘 끝내려고 노력하는’ 이야기다.


 내러티브를 먼저 살펴보자면 정말 기발하고 참신하다. 초반 35분 정도의 ‘좀비에 맞서는 남녀의 이야기’는 프롤로그로, 나머지 1시간의 러닝타임동안 이 이야기를 찍게된 과정, 그 메이킹을 다룬다. 이 프롤로그에 속하는 ‘좀비에 맞서는 남녀의 이야기’는 과장된 연기, 설명적 대사, 줄곧 유지하는 하이키 조명, 활동성이 낮아 우스꽝스러운 좀비로 B급 영화 감성을 가진다. 관객은 이 B급 감성의 이야기를 보며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는 영화는 이런 감성의 이런 이야기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감독’이라는 사람이 카메라를 똑바로 쳐다보며 ‘카메라를 멈추면 안돼!’라고 외치는 장면, 실제로 원테이크로 촬영하며 멈추지 않는 카메라는 조악한 스토리에도 불구, 이것이 메인스토리라고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된지 40분도 채 되지 않아 올라가는 엔딩 크레딧은 관객을 혼란에 빠트린다. 그리고 시작되는 이 B급 감성의 영화의 메이킹이라고 볼 수 있는 영화 감독의 서사. 관객은 앞의 조악한 스토리에서 가졌던 의문이 풀리며 신선함을 느끼게 된다. 뒤의 메인 내러티브는 프롤로그에서 관객이 느꼈던 의아함을 연료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향해 달려간다.


 촬영과 미쟝센을 보자면, 인상적이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롱테이크’다. 앞서 표현한 ‘프롤로그’ 35분 정도는 쭉 원테이크다. 렌즈에 튄 이물질을 감독이 티슈로 닦기도 하고, 핸드 헬드 카메라는 사정없이 흔들린다. 그러나 이것은 관객의 감상을 방해하기보다 흥미로움을 더한다. 감독이 의도하여 B급 영화를 만들었다지만, 관객이 이 35분 가량의 프롤로그 부분에서 심각한 수준을 느끼고 극장을 나가버린다면 뒤의 이야기를 전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원테이크 촬영은 앞의 빈약한 스토리를 효과적으로 가려준다. 앞의 이야기-프롤로그라고 표현한 부분-에서 B급 영화 감성을 유지하는 방법도 흥미로웠다. 영화는 분명 공포스러운 상황을 보여주지만 하이키 조명과 작은 노출값은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게 도와준다. 장면에 메타포는 존재하지 않고 직관적이다. 관객은 직관적인 화면에 자신을 맡기고 깊은 생각 없이 유쾌하게 보게된다. 따라서 유혈이 낭자함에도 불구하고 유쾌한 B급 영화 정도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핸드헬드 카메라는 관객이 이 영화-프롤로그라 표현한 부분-의 유쾌한 참여자로서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으로 재미를 더한다. 뒤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나서는 화면이 정적이다. 카메라 무빙을 최소화한 느낌. 이런 연출 덕분에 앞 이야기와 대비가 되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좋은 분위기가 형성된다. 쉬는시간에 교실에서 뛰어놀던 아이들 사이에 선생님이 들어와 무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는 느낌.


 영화의 메시지는 주관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영화는 겉으로는 ‘가족애’, ‘가족의 화합’을 나타내고 있다. 현장의 자질구레한 사정보다는 작품을 우선하는 딸, 방송의 재연장면이나 만들며 작품보다는 빠르게 만드는 것을 중시하는 아빠, 배우의 꿈을 가지고 있는 엄마는 이 원테이크 촬영을 통해 화합한다. 딸은 아빠가 연출하는 모습을 보며 아빠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엄마는 배우로 출연하며 배우의 꿈을 이룬다. 겉으로는 이런 메시지가 나오지만 좀 더 깊숙이 생각해보면 다른 메시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처음 35분 가량의 프롤로그 부분에서 관객의 웃음은 어쩌면 비웃음이 섞여있었을 것이다. 과장하자면 ‘저 정도 영화는 나도 만들겠네’라고 생각했을 수도. 그러나 뒷 이야기가 시작되고, 아빠(감독)의 노력을 보며 생각은 바뀐다. ‘아, 이렇게 힘들었구나’. 대부분의 관객이 관심 가지지 않았던 촬영 현장이 드러나며 스탭의 노력, 감독의 노력이 관객에게 보여진다. 좀 더 확대 해석해보자면 극 중 딸과 아빠의 관계를 관객과 감독의 관계로 대입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관객들은 작품성을 추구한다. 그 어떤 사정이 있었든 작품성이 없으면 혹평을 날리는데 주저않는 사람들. 극 중 딸의 모습과 비슷하다. 진짜 눈물, 리얼함, 작품성을 추구하며 가짜눈물을 쓰며 빨리 찍는데 치중해 그럭저럭한 아빠의 영상은 채널을 돌려버리는 등 무시한다. 그런 딸은 촬영 현장에 와서 돌발상황에 대처하며 작품을 추구하는 아빠를 보며 갈등을 해결하고 아빠를 이해하게 된다. 관객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고군분투하는 스탭, 감독을 보며 생각이 바뀌었으리라. 아빠가 연출하는 방송이 나가는 동안 중간중간 방송국 제작사 사람들의 반응샷이 나온다. 약간의 의문(“너무 긴 거 같지 않아요?” 등)을 표하긴 하지만 웃으며 유쾌하게 보는 사람들, 처음 프롤로그 부분을 보는 우리의 반응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마치 과거의 나를 보듯 이 반응샷을 보는 관객들. 자신의 태도에 대해 다시 생각하며 감독이 전하는 메시지를 오롯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다. 결국 이 영화는 이동진 평론가의 말마따나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한 그 모든 땀과 눈물에 바치는 연서’인 것이다. 프롤로그도, 메인스토리도 끝나고 ‘진짜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며 나오는 영화의 ‘진짜 메이킹’이 마음 깊이 박히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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