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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림 Mar 16. 2022

함성 없는 공연

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 - SEOUL

 공연은 발생하는 동시에 소멸한다. 공연을 마치고 나오면 그것은 이미 세상에 없다. 남는 것은 흐릿한 기억과 부분을 담은 영상뿐이다. 계속 사랑하기에 충분한 파편들이지만 엉성하게 조립된 상태라도 붙들고 문장으로 남기고 싶었다. 훗날 추억하면서 그때 그런 일도 있었다, 하며 이야기할 수 있도록. 우리는 새가 날갯짓을 하듯 쉼 없이 종이를 놀리며, 이제 곧 다가올 완벽한 봄날을 기다렸다고.


 지난 2년 반을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봤다. 박수 한 번으로 잘 지냈다는 대답을 보냈다. 잘 지내지 못했어도 무한히 유예된 생에서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을 드디어 이뤄낸 데에 대한 예의였다. 밖은 삶과 죽음이 뒤섞인 소용돌이가 여전했으나, 입안을 뱅뱅 맴돌던 함성 한 마디조차 목구멍 안쪽으로 다시 들이밀어야 했으나, 우리는 그저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가슴이 뛰었다.


 만 오천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팔을 휘젓고, 종이를 내려치고, 비어있는 자리 하나의 틈으로 허리를 구부려 보았다가, 마스크 안으로 소리 없는 노래를 얹어가며 그들을 바라본다. 몸을 떠난 소리는 공기 중으로 부유하여 하늘로 날아오르다 무대에 닿아 흩어진다. 우리는 누군가 듣지 못하는 노래를 듣고, 누군가 보지 못하는 춤을 보았다. 다른 사람의 간절함이 공연장 안의 사람들보다 덜하지는 않았을 테니 그저 운이 좋았다 말하겠다. 무대 위를 뛰어다니는 일곱 명의 실루엣도, 여전한 우리 사이를 위해 특별하게 제작된 슬로건도, 아미밤과 아미밤이 만나 이루어내는 무지개도, 누군가 볼 수 없던 순간들을 아낌없이 즐겼다. 그럼에도 <BTS PERMISSION TO DANCE ON STAGE-SEOUL>라는 공연 명과 다르게 허락 없이 춤을 추지는 못한 채로.

 

 나는 또다시 잠실을 찾았다. 사실 첫날 공연이 끝나고 미처 완성되지 못한 공연에 대한 허망함에 마음이 복잡했지만, 전하지 못한 진심을 대신 질러주는 무참한 목소리를 한 번 더 듣고 싶었다. 시작의 순간에 도래하여 암흑으로 뒤덮인 무대 앞에서 나는 또다시 가슴 떨렸다. 첫날과 다른 시선으로 나는 무대뿐 아니라 다른 많은 것을 보았다. 노래가 멈추고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첫날에는 무대 위의 가수를 봤다면, 마지막 날에는 폭죽이 흩어지는 하늘이나 보랏빛으로 물든 관객석에 자꾸만 눈이 갔다. 오늘이 아니면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환호성 없는 공간의 구조, 바람의 온도와 내 몸의 기울기를, 그 순간을 둘러싼 모든 이들의 사랑을 훔쳐봤다.


 우리는 같은 언어로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각자의 불빛으로 파도의 물결을 만들거나, 막이 내린 공연장에 남아 열기를 느끼는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이러한 부재마저도 동시대적인 슬픔으로 작동하기에, 움직이는 그들을 관객으로서 마주할 수 있기에, 이 문턱도 같이 넘어갈 수 있기에 한 줌 부족한 공연의 아름다움을 기억하고 싶다. 그들의 말처럼, 완벽한 공연이 있을 가까운 그날까지.


참고문헌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 목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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