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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림 Dec 21. 2022

인생도 60점 합격이라면

자격증 수집가

 자격증이 하나  늘었다. 가족과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다가도 돌아오는 마지막 질문은  같았다. “도대체   거야?”  대답을 오늘 드디어 해보려고 한다.


 시작은 무지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구명조끼 같은 수단이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 사태로 시끄러웠던 시기에 무엇이 옳은지 스스로 판단하기 위해 근현대사를 더듬다 내가 이과였다는 사실을 방패 삼아 얼마나 역사를 잊고 지냈는지 깨달았다. 삼국시대의 목탑과 석탑 사진을 보면서 내가 어쩌다 이 이름을 외우고 있는 건지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수많은 독립운동단체들의 발자취를 지도에 따라 그리면서 감히 가늠할 수 없는 두려움과 그 두려움을 이기는 뜨겁고도 의로운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는 사실로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기억들이 파편으로 다시 흩어지기 전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응시했다. 지금은 한국사 자격증은 접수조차 어려운 전 국민 시험이 됐지만, 나의 한국사 1급 자격증은 취업과는 동떨어진 학업의 결과물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그 후로 경제 뉴스에 나오는 자산, 부채, 자본을 공부하다 전산회계자격증을, 엑셀과 매크로를 이해해보다 컴퓨터활용능력 1급을 취득했다. 전공을 너무 배반하고 지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난 뒤 전산응용건축제도기능사와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가 추가됐다.


 취미에 자격증 수집을 적어 낼 수 있던 시절을 지나 대학교로 돌아왔고, 한동안 멀어졌던 자격증에 대한 욕망은 취업 준비를 하면서 다시 부활했다. 남들은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 건축기사 책을 펼쳤다. 디자인은 답이 없는데 시험 문제는 답이 있었다. 내 디자인은 밤새 노력해도 더 좋아지지 않거나 때로는 후퇴하기까지 하는데, 콘크리트 종류는 밤새 공부하면 외워졌고 모의고사 점수도 올랐다. 포트폴리오는 제출 직전까지 더 나아질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면, 건축기사는 시험 당일에 60점만 넘으면 합격이라는 단어를 만날 수 있었다. 건축기사는 디자인 감각을 최대한 드러내야 하는 시기에 다른 방식으로 이 순간을 쓸모없이 보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도피 수단이었다.


 배울 거라고는 상사처럼 살지 말아야겠다는 반면교사뿐인 회사에서 나는 또다시 흘러가는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 도시계획기사를 공부했다. 일을 하면서 눈치껏 짐작하긴 했지만 혼용해서 사용했던 주거환경개선사업, 재개발사업, 재건축사업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되면서, 자격증이라는 목표가 없다면 관련 일을 하면서도 제대로 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지난날의 나를 반성했다. 쌍기사로도 만족하지 못한 나는 연달아 주변 사람들이 많이 땄다는 이유 하나로 건설안전기사에 도전했고, AI시대와 코딩 열풍이라는 단어에 현혹돼 정보처리기사까지 취득했다. 나는 끊임없이 내가 회사와 별개로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고, 자격증은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나는 불안정할수록 안정된 자격제도에 의지하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60점이라는 합격점수는 누가 처음으로 정했는지 모르겠지만 참 적절한 점수다. 내가 공부한 곳에서만 나오기를 바랄 수도 없을 정도로 광범위한 범위에서 절반보다는 조금 더 맞아야 합격할 수 있는 점수. 완벽하게 모든 것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대충 넘어가서는 안 되는 그 적정한 선을 지켜야만 얻을 수 있는 자격증. 나는 사실 알고 있었다. 건축기사가 아닌 다른 자격증들은 내 인생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이력서 한 줄로도 쓰지 않을 쓸모없는 자격증이라는 것을. 그럼에도 자격증에 계속해서 도전한 것은, 하루의 빈 시간들을 흘려보내지 않고 무언가에 집중할 수 있다는 열정과 100점이 아닌 60점으로도 충분하다는 위로에 중독된 탓이었다. 마침내 합격이라는 글자를 만나고 나면 열심히 살았다는 인정과 당분간은 방탕하게 놀아도 된다는 승인을 만난 것처럼 나는 한없이 기뻐했다. 자격증이란 그저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 주어진 것뿐이며, 또 다른 자격증은 그저 제자리걸음을 걷는 일이라는 사실을 애써 무시한 채.  나는 이렇게나 미욱했다.


  그러다 학교, 회사에서 나의 능력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할 때마다 인생도 60점만 넘기면 괜찮은 사람이라는  자격이 주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시기에 60점 정도만 노력해서 평생동안 노력 없이 적당한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인간관계에 지칠 때마다 그 사람의 행동을 일일이 욕하기보다는 남들과 같이 살아갈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이 편했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 난민 등 소외계층을 위한 사회주택을 졸업설계 주제로 선택한 내게 난민 혐오 발언과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인 배우의 찌라시를 말하던 친구나, 다른 팀에서 작업한 내용을 복사와 붙여넣기만 해서 금방 끝낼 수 있는 뻔한 내용이라고 폄하하면서 자신이 그린 스케치는 이전 프로젝트와 똑같이 별반 다를 것도 없어 보임에도 주말에 24시간이자 투자한 대작이라고 떠벌리던 상사가 완전한 악의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남과 살아갈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인생 자격이 나온다면 40점 정도로 불합격할.

  

 자격증은 나를 초급 기술인으로 인정해주는 최소한의 수단이고, 특급 기술인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오랜 기간 경력을 쌓아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 안다. 어디로부터 오는지도 모를 무분별한 증명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이제는 어제보다 능력도, 마음도 더 나은 사람이 되어보려고 한다. 언젠가 인생 자격증이 나오더라도 그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나는 꽤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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