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페이버릿의 감독 요르고스 란티모스와 배우 엠마스톤이 다시 만난 것만으로도 큰 화제가 된 작품 "가여운 것들"이 드디어 정식개봉을 했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떠들썩했던 만큼 나 또한 작품을 얼른 보기만을 기다렸다.
영화를 보기 전 여자 프랑켄슈타인을 엠마스톤이 연기한다는 정보를 접했었는데 영화가 시작할 즈음의 벨라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멀쩡한 모습이지만 어색한 걸음걸이와 말투가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벨라는 갓윈 벡스터 박사에 의해 태어났다. 어떠한 이유로 자살을 선택해 뛰어내린 시신을 박사가 발견했고 뱃속 아이의 뇌를 그 여자의 머리에 이식해 하나의 실험체로 만든 것이다.
박사는 벨라의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차단하고 있었다. 그것은 누군지 모르는 시신인 만큼 그 존재를 아는 사람들에게 발견될 가능성이 있을 시 발생할 문제점들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벨라의 앞에 덩컨 웨더번이 나타나며 벨라의 세상은 급속도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덩컨 웨더번과의 여행 초반의 벨라는 성에 관한 호기심, 맛있는 음식 등의 순수한 동물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한 욕구를 충족하며 벨라의 흑백 세상은 컬러로 변했고 그때부터 벨라의 세상에 대한 호기심은 급속도로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성에 대한 욕구외에 지식에 대한 욕구도 갈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화 초반에 무언가를 죽이고 찌르는 것에서 재미를 느끼던 벨라는 배 아래 죽어가는 아이들을 보며 또 하나의 감정을 배운다. 그동안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들을 돌아보고 그런 것들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을 가엽게 여기는 마음을 배운 것이다. 이때부터 벨라의 성격이 크게 변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호불호가 나뉘고 문제가 되는 부분은 벨라가 성을 파는 모습이다. 영화는 벨라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욕구에 충실함과 동시에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그렇게 표현한 것으로 보였고 영화 내에서 벨라가 가장 성장하는 것은 매춘을 하던 그 장소 안에서였다. 나 또한 성을 파는 것을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려냈다는 점은 마음에 드는 묘사는 아니었으나 영화 내의 기괴한 분위기 벨라의 호기심이 성으로 표현됐다는 점을 놓고 보면 벨라의 성장을 그려내는 방식으로써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이 되어 크게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나는 영화를 보며 원래 벨라의 몸의 주인과 벨라의 모습이 완벽히 상반된 점이 흥미로웠다. 같은 몸으로 살아갔지만 한 명은 자살을 택했고 한 명은 주체적으로 성장을 하여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택하는 삶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모든 호기심에 대한 것들을 충족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 대해 말해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이 영화에서 보인 묘사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매 챕터의 시작마다 보이는 벨라의 묘사도 독특했고 구름이나 연기가 알록달록한 색감으로 펼쳐진 모습 또한 벨라의 호기심을 표현한 것 같아 흥미로웠으며 현대와 중세의 특징을 접목시킨 것 같은 벨라의 의상디자인도 눈길을 끌었다. 그동안 본 퍼프방식과는 다른 사선으로 절개를 넣어 흐르듯 표현한 퍼프와 패딩을 넣은 의상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솔직히 문제작이라는 표현이 제일 맞을 듯싶다. 같은 영화를 보고서 주체적인 여성을 표현했다는 의견과 여성을 성에 국한해 남성적인 시선으로 표현했다는 의견이 완벽하게 충돌하는 재미있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사실 여성의 해방, 여성영화라는 관점을 떠나서 아까 위에 적었듯 같은 몸인데도 어떤 환경이 주어지냐에 따라 사람이 행복해질 수도 불행해질 수도 있구나라는 점에 주목해서 이 영화를 보았고 그래서 나중에 가여운 것들을 알게 될 정도로 성장하는 벨라의 모습이 뭔가 나도 할 수 있다고 위로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