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랑 Oct 27. 2022

보광동, 어제의 카레

제일 맛있는 카레는 무슨 카레?


'만든 지 며칠 된 카레'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한 명씩은 있을 거다. 간결하게 '어제의 카레'라고 퉁치는 건 아마도 상징성? 또는 간결성? 때문이겠지. '어제의 카레가 제일 맛있다' 그 생각에 나도 동의. 왜 그럴까를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야채에서 흐른 야즙이(이런 말도 있나?) 카레와 섞여 풍미를 더해주니 입에 넣었을 때 여러 맛이 겉돌지 않아서인 듯싶다.


어제의 카레는 내가 보광동에서 제일 처음 먹었던 음식인 것 같은데, 그건 데이트도 혼밥도 아닌 인테리어 도와주신 선생님 모시고 근처 한 끼 해결할 곳 찾다가 우연히 발을 디딘 곳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꽤나 유명한 '어제의 카레'를 얘기하면 나는 단골이라도 된 듯, 써니 사이드 업을 꼭 하라 당부한다. 실제로 나를 알아보는 어카의 관계자는 전혀 없다.


'어! 그 집 맛 괜찮아. 취향대로 골라 먹을 수 있어'


처음 카레를 먹었던 건 엄마표 오뚜기 카레였던 것 같은데, 세상 카레는 단 한 종류밖에 없는 줄 알던 카레 촌뜨기 시절, 새로운 카레 가루가 나올 때마다 신세계를 체험하는 듯 신이 났었지. 고형 카레로 처음 카레 요리를 하곤, 카레의 끝판왕이 이거였구나. 하며 감탄을 했다.


실제로 골든 카레를 너무 좋아해서, 좋아하던 은사님께 만들어드린 적이 있었다. 항암을 끝내고 식욕이  돌기 시작하실 때였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위를 떼어내 자주 식사를 하셔야 하는데 손이 느린 내가 때가 한참 지나 선생님 집필실로 카레 상을 가져갔. 엄청 급하고 맛있게 카레를 드시는데 조금 민망할 지경이었음.   이후로 그때 만들어드린 카레가 맛있었노라고  번이나 말씀 하셨다.


어제의 카레에 처음 갔던 날, 공사하느라 집은 난장판이었는데도 나중에 선생님께 카레를 대접할 날이 다시 올까를 생각했다. 그땐 정말 아무것도 자신하기 어려운 상태였으니까. 다시 병상에 드신 지 한참이 지났기 때문.


많은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해주셔서 추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테지만, 카레를 떠올리면 선생님께 대접해드렸던 그날의 카레가 제일 먼저 떠오름. 병 중에도 몸 상각 안 하시고 도와달라는 손들 다 잡아주신 우리 선생님.


내일은 선생님 생각하면서 '어제의 카레'를 먹으러 가야겠다.


늘 어제에 살고 계실 그분을 떠올리며 '내일의 카레'를 먹어야겠다.


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꽃노털.

작가의 이전글 빛바랜 골목에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