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은 어딘가 분명히 이상하다. 오래된 집이다.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아. 귀신 이야기를 하니 이사 전 실측을 하러 들렀을 때가 떠오른다. 세월이 많이 묻어있는 집이라 많이 어두워 전기 공사를 다시 해야 했고 상가처럼 뻥 뚫린 1층은 싱크대 외에는 아무런 살림이 없어 을씨년스러웠다. 겨울 늦은 밤에 왔으니 고조된 싸늘함이 느껴졌다. 어두운 계단을 지나면 불빛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2층 복도(라곤 쓰지만 한 평이 조금 넘는 문 앞 공간)에서 안방 문을 열었을 때였다. 평소에 나는 후각이 예민한 편이다. 그 예민이라고 해봐야 평균값보다 약간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정도. 갑자기 훅 하고 콧속에 냄새가 밀려들어왔다. 상큼하면서도 무거운 남자 향수 냄새였다. 길이나 버스에서 그 냄새를 맡았다면 고작해야 냄새의 주인이 언제쯤 샤워를 했는지 가늠하는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느꼈을 거다. 오래된 집에서 맡게 된 남자의 향수 냄새에 공포감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3개월 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았고 계약을 치러 왔을 때에도 아무런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그간 맡았던 냄새라곤 고작해야 건조한 시멘트 벽 냄새 정도. 틈이 많고 문이 많은 이 집 어딘가엔 누군가가 숨어있을지도 몰랐다. 이사를 온다고 해도 이 불안감을 어떻게 잠재울 수 있을까. 냄새는 상상해보지 않은 미래까지 예측하게 했다. 창고로도 사용이 불가능할 정도로 시멘트가 부서진 노후한 보일러실과 이웃한 옆집 사람도 마음만 먹으면 창문을 통해 넘어올 수 있는 옥상 계단, 그 계단과 실내가 연결된 얇은 나무 문, 1층 알루미늄 샷시로 된 양문형 대문의 기억은 거대한 누군가가 들어오고 있는 환영으로 바뀌었다. 고작 냄새 하나로 나는 앞으로 살게 될 집의 미래형 공포를 체감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마음을 달래고 사이즈를 쟀는데 가로 세로를 적는다는 게 가로의 길이에 세로의 길이를 적고, 3초 전에 잰 길이를 까먹어버리고를 반복했다. 방 창문으로 들어오던 가로등 불빛이 꺼졌을 때는 악! 하고 소리를 지르며 주저앉을 뻔했다. 아마도 누군가가 이 집에 있었으면 소리를 질렀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소리 지른다고 해도 누구도 듣지 못했을 거다. 옆방 사이즈를 잴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나는 정말 누가 이 집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살며시 방을 나왔다. 다시 어두운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올 땐 올라갈 때보다 훨씬 다급한 발걸음이 나를 아래층으로 밀었다. 화장실 문을 열어 확인하거나 보일러 실을 확인할 용기가 있었다면 옥상으로 올라가는 문을 열었겠지. 어둡고 노후한 공간은 냄새 하나로 모든 감각을 바꿔버렸다. 어렸을 땐 동네에서 아이들 중 가장 겁 없는 아이였는데, 나는 어느새 중년의 겁 많은 쫄보가 되어버린 거다. 누가 날 이 공간에 밀쳐버린 것도 아닌데, 나는 여기서 잠깐 스친 냄새 하나로 이렇게 겁에 질려있다.
사람이 있는 어두운 골목이 앞으로 살 집보다 안전하게 느껴진다는 게 조금 처량했다. 며칠 뒤면 이사인데, 나는 이런 불안감을 잠재우고 서둘러 이삿짐을 정리해야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너무 많은 생각들이 교차했다. 후각 공포가 그러넣은 앞으로의 그림들은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와서도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차라리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누군가가 있었다면 덜 무서웠을지도 모른다. 계약을 파기해야 하나? 저기요. 집에 갔는데 웬 남자 향수 냄새가 나네요? 이사하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계약 파기 부탁드려요. 설득력이 있나?
귀신보다 두려웠던 그날의 사람 체취. 나는 다시 상상력을 동원했다. 누가 집에 들어왔을까? 그때의 감정으로는 분명, 흉가 같은 곳에 모여들어 무전취식을 하는 노숙자의 모습이 가장 설득력이 있었다. 하지만, 집을 들어섰을 때 어디고 억지로 문을 부순 흔적은 없었다. 흔히 영화에서 보았던 라면 봉지나 담배꽁초, 널브러진 옷가지 같은 것도 없었다. 그렇다면?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누군가가 들어왔겠지. 그렇다면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전에 살던 사람들? 여자 둘이 살았다고 부동산 중개인에게 전해 들었다. 그렇다면 남자의 향수 냄새는 뭘까. 부동산 중개인도 분명 여성분이셨다. 나보다 나이가 지긋하신 분. 아니면 누군가가 집을 보러 왔다? 아니다. 분명 계약을 했고 더 이상 집을 보여줄 이유가 없었다. 부동산에서 어떤 통보도 받은 적이 없고 그날 중개인에게서 비밀번호를 받았다. 조금만 더 꼬리를 물어보자. 음... 중개소 사무실엔 남자 직원분도 있었다. 추운 겨울이었다. 그러니 추운 겨울 동파 걱정으로 중개소 사무실의 다른 직원분이 방문해 집을 살폈을 거다. 그래 이게 제일 합리적이다.
다음 날 확인 전화 한 통만 했어도 모든 게 명확해졌을 거다. 하지만 전화하지 않았다. 낯선 공간의 예민함이 부른 감정의 참사 정도로 정리하는 게 나의 신뢰도와 연결이 될 것 같았다. 호들갑 떠는 사람으로 비춰지고 싶지 않았다. 사실 가격 대비 너무 좋은 조건의 집이었다. 어쩌면 이 현실이 모든 것을 긍정하도록 유도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이삿날은 다가왔다.
이사 온 첫날밤은 너무 힘들었고 문단속만 한번 한 뒤 침대로 올라가 쓰러졌다. 공포심이 살짝 귀찮았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제대로 된 침략자라면 이런 날 들어왔겠지? 다음 날 눈이 뜨자마자 그 께름칙한 것들을 정리해야 했다. 나는 집의 틈을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문으로 향하는 여정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과 틈들은 그동안 살던 집들의 답답함을 해소하기 좋다고 판단하기 시작했다. 집 뒤켠으로 뚫린 문을 지나면서는 계약된 평수보다 자투리 공간이 많았다. 정말 이 동네와 닮아있었다. 들쑥날쑥하게 생긴 집이라 정 사각, 직 사각이 아니다. 그렇다 보니 합리적으로 설계된 어떤 가구와도 합이 맞지 않았다. 방이 죄다 마름모 꼴이다. 아주 티가 많이 나는 것은 아니지만 한쪽을 맞추면 한쪽이 들떴다. 사각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침대나 책상을 배치하면 협탁 하나 정도가 너끈히 들어갈 정도의 공간이 남았다. 전혀 합리적이지 못한 각에서 나는 그동안 살았던 집에서 느끼지 못한 유머를 발견하고 있었다. 뭐 이래? 하다가도 그 틈이 재밌었다. 내 성향이 조금 이상한 건가? 실성한 것인가! 한옥 이야기를 할 때, 창틀과 창문의 합이 맞지 않은 걸 두고 조상들이 현명하여 통풍이 잘 되도록 설계했다는 이상한 국뽕식 해석은 이렇게 출발했을 수도 있었겠다 싶었다. 아파트의 베란다 확장을 무슨 대단한 히든카드라도 되는냥 떠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롯이 혼자서 쓸 수 있는 히든 공간이 정말 많은 집이었다. 이사 온 후 줄곳 실용성과 합리성에서 먼 이 공간을 계속 소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작 이 집을 소유한 사람들은 재개발 투자 외엔 애착이 없는 사람들인데. 집이 아깝다는 생각이 자주 든다. 이 집의 틈에서 느끼는 자유와 유머를 알아주는 사람은 내가 마지막이려나. 집주인을 얼마 전에 대출을 더 땡겨 받은 걸로 알고 있다.
이 틈은 3년 후엔 실용성과 합리성이 넘치는 아파트 단지로 변모할 예정이다. 내겐 참으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임은 틀림없다. 사는 동안이라도 집에 이름을 지어줘야겠다. 막 생각나는 건 재밌는 집. 퍼니 하우스. 아니다. 이왕이면 보다 고민하여 구체적인 이름을 붙여줘야지.
틈 집. 으앙. 이것도 별로다. 더 더 고민을 해보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