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마신 진으로 인해 숙취해소가 힘들지만 움직이지 않으면 월요일에 찾아오는 우울증에 걸릴 것 같아 무거운 몸을 이끌고 동네를 걸어 본다.
동네 개들이 짖어대고 차가운 북대서양 바람이 나의 얼굴을 때 리치지만 내일 또 비가 올지도 모르는 날씨 때문에 이 순간에도 여유를 느껴 보리라 다짐해 본다.
겨울이 긴 아일랜드에도 봄은 온다. 봄은 기다리다 지칠 때쯤에 항상 살며시 얼굴을 내밀며 소리 없이 찾아온다. 봄에 운동도 더 많이 하며 다이어트하고 싶은 욕구가 치솟지만 매번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때마다 실망도 하고 회의도 하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실패도 어쩌면 이리 한결같은지... 아마 실패도 이젠 중독이 되어 나의 삶에 하나가 되어 버렸나 보다.
지금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이 발발하는 상황에서 나의 이런 독백과 사상이 First world problem 즉 가진 자들의 고민이 될 수 도 있으나 가지던 안 가지던 고민은 항상 따라오는 게 삶 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내 외로움과 실패에 좌절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오늘 성취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산책이 끝나서 집으로 돌아가 아침에 못한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이 학교에 다녀와서 먹을 줄 점심을 준비하며 주말에 고생 많이 하신 우리 남편님 아침식사 근사하게 대접하는 일 그뿐이다. 물론 읽던 독서도 하고 유튜브 시청도 해야 하는데 결국은 벽난로가 달아 오를 때 즈음에 소파에 앉아 골아떨어질 확률이 높다.
목표가 뚜렷한 삶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치열하게 살았던 20대와 30대를 돌아보며 성취감은 꼭 스트레스도 동반한 다는 걸 알기에 남은 40대부터는 대충 살려고 애쓴다.
직장에 다시 나가기도 싫고 그냥 비건 지향하면서 아이들 육아하며 큰 일 없이 사는 게 나의 꿈이다. 남들이 소위 말하는 평범하게 사는 삶의 기준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나에게는 오늘 하루를 잘 넘기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절대 알람을 맞추지 않고 늦잠 자면 늦잠 자는대로 대강 아침 준비하고 일찍 일어나면 일찍 일어나는 데로 아침식사를 더 챙긴다. 내 몸의 리듬대로 내 생활을 꾸리고 내 몸과 마음을 획일화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가 확증편향으로 사로 잡혔을 때는 중도로 다시 돌아오려 노력하고 그것조차도 힘들 때는 내 인생의 동반자와 상의하며 나의 생각을 정리한다.
자연은 한결같다. 봄은 어떤 상황에서도 반듯이 오고 그 향기, 색깔, 충만함을 내뿜는다. 봄은 몸과 마음이 일상으로 찌든 나를 위로하고 다시 시작하게 도와준다. 에너지 그 자체이다.
이 에너지를 받으며 오늘도 성찰해 본다. 벚꽃이 저 봉우리 안에서 꿈틀거리며 세상에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나도 무엇인가 해야 되지 않을까? 아니다. 이게 실수인 것이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나 자신을 그대로 바라보자. 무엇인가를 성취해야 인정을 받는 삶이 결코 행복의 길이 아님을 알아차리자. 모자란 나를 잘 데리며 사는 방법을 터득하자.
봄은 다시 왔다. 나도 여기에 서 있다. 오늘 할 일을 또 다 못하더라도 모자라도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지속하자. 내일도 모자란 나를 위로하며 편하게 살아보자. 못해도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
Epilogue
아일랜드에 거주하는 마스크비건의 한국, 영국 비건지향 가족의 흥미로운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