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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이 Feb 16. 2023

나의 글쓰기

초등학생의 일기부터 브런치 작가까지

내가 최초로 기억하는 나의 글은 초등학교 2학년 때 쓴 일기이다. 학교 운동회의 즐거운 기억을 일기장 한 페이지에 꽉 채워 담임선생님께 제출했다. 다음날 돌려받은 일기장에는 선생님이 빨간 볼펜으로 남긴 감상이 있었다. 어린 나는 선생님이 내 일기에 또 뭐라고 써주실지 굉장히 기대했던 것 같다. 그때부터 나의 일기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항상 줄공책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웠으니까.


그렇게 매일 열심히 일기를 쓰다 보니 참 많은 상을 받았다. 일기 쓰기 상은 물론이고, 독후감 쓰기, 현장체험학습 보고서 쓰기, 백일장, 과학글쓰기, 논설문 쓰기 등등. 국어 수업시간이면 내가 쓴 글을 발표해서 박수를 받았고, 학교 대표로 출전한 대회에서도 상을 받았다. 그렇게 학창 시절 내가 소개하는 나의 특기는 '글짓기, ' 장래희망은 '작가'가 되었다.




그랬던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일기 쓰기를 그만두었다. 본격적으로 영어에 관심을 가지면서 외고 입학이라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고, 부모님의 "작가는 돈 못 번다."라는 질책 겸 설득은 고분고분했던 내가 장래희망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런 것들은 궁극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어릴 때부터 타인의 평가에 예민했던 나였다. 그런 내가 계속 글을 쓰게 만들었던 '칭찬'이 사라졌고, '인정'이 간절하지 않아 진 것이다. 더 이상 일기장을 제출하지 않아도 되니 잘 쓴 일기로 칭찬받을 일이 없었고, 공부에 매진하기 시작하면서 글쓰기가 아니어도 인정받을 일은 많았다.


그렇게 오랫동안 글을 잊고 지냈다. 간간히 일상을 다이어리에 한 줄씩 남길 때도 있었지만, 작가가 꿈이었다고 말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었다. 운 좋게 교사가 되어 더 이상의 진로 고민도 하지 않았고, 그저 매일 주어진 하루에 충실히 살았다. 적당한 나이에 결혼을 하고, 원하던 해외여행도 가보고, 또 적당한 나이에 임신과 출산을 했다. 평범하게 살기가 제일 어렵다는 요즘 세상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음에 감사했다.

 



잊고 있던 글을 다시 찾은 건 신생아를 키우면서였다. 혼자 집에서 육아를 시작하면서 감정 조절이 참 어려웠고, 하루종일 아기 앞에서 즐겁게 웃으며 놀아주다가도 밤이 되면 서럽게 울었다. 그때 내가 어떻게든 마음을 다스리고 싶어 처음 선택한 것은 독서였다. 아기가 잠들 때마다 틈틈이 책을 읽고 메모를 남겼다. 감정을 어디든 토해내면 후련할 것 같았다. 그리고 그렇게 거칠게 쓴 메모들을 모아 브런치의 첫 글인 '『레슨 인 케미스트리』를 읽고'를 완성했다.


그 글을 쓰면서 나도 잘 정의할 수 없었던 스스로의 감정이 정리되는 기분을 처음 느꼈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머릿속에 떠돌던 막연한 생각들이 글로 쓰면 또렷해졌다. 별 것 아닌 일상도 글로 써놓고 보면 특별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글을 좀 더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 글을 쓰기로 마음먹으니 글이 생각날 때마다 메모해 두게 되었다. 좀 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내 주위를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썼던 일기를 다시 읽을 때마다 왜 그렇게 어색했는지 그때서야 깨달았다. 칭찬이 받고 싶었던 나는 언젠가부터 솔직한 내 생각과 감정을 담아 쓰기보다는 어려운 단어와 유려한 표현을 골라 쓰는 데 더 치중했던 것이다. 글을 쓰는 '나 자신'보다 '독자'를 더 염두에 둔 글이었다.

'나'의 글이 남(독자)에게 가닿는 것은 감동적인 일임에 틀림없어요. 하지만 글쓰기의 목적이 오직 '남'을 향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글을 좋아해 주는 분들이 생기고 그분들의 공감을 받으면 글쓰기가 더 즐겁긴 하지만, 그게 전부일 수는 없으니까요. 글쓰기는 '나'의 욕구, '나'의 생각, '나'의 감정, '나'의 가치관....... 결국 '나'를 쓰는 일이었습니다.

진아, 정아, 선량, 『쓰다 보면 보이는 것들』 P.36




앞으로는 좀 더 솔직한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내놓을 수 있는 그런 글을 쓰고 싶다. 물론 브런치에 글을 발행하기로 결심한 이상, 마구잡이로 내 감정을 쏟아내는 글만 쓰지는 않을 것이다. 내 글을 읽어주는 분, 감사하게라이킷과 구독을 눌러주는 분들이 생겼으니까. 그렇게 이제는 '쓰는 나'와 '읽는 독자' 사이의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글을 쓰면서 나 스스로 행복하고, 내 글을 읽는 독자도 행복하고, 그 독자 덕분에 나도 다시 행복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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