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게. 나는 왜 여기 있을까. 나는 너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일까.그 순간에는 미처 답하지 못했다. 당황스러워 그저 대답을 얼버무리고 말았던 그 질문은 두고두고 마음속에 남았다.
어쩌다 내가 외고 졸업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체로 "대단하다, " "멋지다"라고 말해준다. 졸업한 학교의 이름만으로 인정받는다는 것은 민망하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한 일이다. 그런데 정말 가끔 다른 유형의 반응을 마주칠 때가 있다. 바로 위의 학생 A 같은 반응이다. "왜 여기 계세요?"라는 질문의 속뜻을 적나라하게 해석하자면 "외고를 졸업할 정도로 공부를 잘했는데 왜 고작 교사를 하고 계세요?" 정도일 것이다.
중학생이었던 나는 영어 문법을 좋아했고, 내신 성적이 좋았으며, 학교 수준이 높아 보인다는 이유로 큰 고민 없이 외고에 지원했다. 나에게 딱 맞는 곳일 것이라는 왠지 모를 자신감을 품고. 그랬던 나는 외고 재학 시절 '선생님'이라고 불리는 나 자신을 그려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적어도 수능 시험을 치기 전에는 말이다.
나의 수능 점수는 평소 보던 모의고사보다 딱히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12년의 노력을 딱 한 번의 기회로 결정짓는 시험에서 실력만큼 결과가 나왔으니 감사해야 했다. 수험생 시절 내내 더 큰 기적을 바랐지만, 욕심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렇게 지원한 대학교 세 곳 중 두 곳에서 합격증을 받았고,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던 나는교사가 되겠다는 결정을 아주 빠르게 내렸다.
모교 근무는 모든 선생님이 한 번쯤 꿈꿔볼 만한 로망이다. 내가 졸업한 학교로 돌아가서 나의 후배이자 제자들을 가르친다면 얼마나 감개무량하겠는가. 나의 학창 시절이 고스란히 담긴 교정을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거닐고도 싶을 것이다. 학생들에게도 누구보다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을 것이고, 사립학교를 졸업했다면 은사님과 동료로 근무하는 영광을 누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모교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의 외고 재학 시절은 돌이켜보면 너무나 눈부시지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 가장 깊은 곳에 묻어둔 잊힌 감정들을 다시 마주하는 게 두려웠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왜 여기 계세요?"라는 질문을내가 졸업한 학교에서만큼은 정말로 듣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절대로 될 리 없다고 생각하고 지원한 모교에 덜컥 발령받았을 때, 설렘보다는 두려움이컸다. 이렇게 쉽게 갈 수 있는 곳이었다고? 나의 개인적인 두려움을 뒤로하더라도, 성과도 실력도 늘 부족하다고 느끼는 내가 과연 외고에 근무해도 되는 영어 교사인지 의문이 들었다. 너무 생각 없이 지원했다는 후회감까지 들었다.
그랬던 나는 모교에 근무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수업을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길지 않은 교직 생활이지만 손꼽히게 행복하다고 느끼게 되었다. 후배이자 제자였던 학생들과 헤어질 때 아쉬움의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마침내 "왜 여기 계세요?"라는 질문에 진심을 담아 답할 수 있는 교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