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사로서의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하는 편이다. 잘하고 싶은 욕심이 있고, 잘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여러 훌륭하신 선생님들에 비하면 정말이지 한참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목표를 세우고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하지만, 내 몸의 편안함을 이기지 못하고 현재에 안주할 때도 많은 그런 평범한 사람이다.
이런 내가 아기 생후 177일부터 이유식을 직접 만들어 먹이기 시작했다. 스스로도 자신 없었던 이유식 만들기가 생후 250일이 되는 오늘까지 어느덧 세 달 가까이 이어지고 있다. 묽은 쌀미음부터 시작해서 각종 야채와 고기를 넣은 죽을 만들게 되기까지, 지금까지 총 40가지의 메뉴를 만들고 24가지의 새로운 식재료를 시도했다.
이렇게 직접 만드는 나를 보고 대단한 엄마라며 엄지를 세워주는 사람들도 종종 만난다. 그런 말을 들으면 머쓱하지만, 이유식을 만드는 건 정말 손이 많이 가는 일이긴 하다. 매번 메뉴와 재료를 바꿔가며 장보기, 육수 우리기, 재료 손질해서 큐브로 얼리기, 죽 끓이기, 뒷정리 등을 하다 보면 날마다 할 일이 넘쳐 났다. 아기를 재우고 그나마 갖던 짧은 자유 시간마저 사라졌고, 모든 일을 마치고 잠들 때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이렇게나 힘들어하면서 왜 나는 이유식을 계속 만들고 있는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아기에게 좋은 재료로 맛있게 만들어주고 싶어서? 당연히 그렇기는 하지만, 시판 이유식도 직접 만든 이유식만큼 또는 그 이상으로 충분히 영양가가 높고 맛있다고 생각한다. 아기가 매일 먹는 분유조차 성분을 보고 고르기보다는 산후조리원에서 잘 먹던 것을 그대로 선택했으니, 파는 이유식에 딱히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그럼 만들 만한 상황이 되니까? 이것도 맞는 말이긴 하다. 무엇보다 아기가 내가 만든 이유식을 거부 없이 잘 먹어 주고 있으며, 남편이 산처럼 쌓인 설거지를 매번 도맡아 해준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무던한 아기의 성향으로 보아 시판 이유식을 먹여도 잘 먹을 것이고, 그러면 남편이 매일 고생해서 설거지를 할 필요도 없다. 무엇보다 내 몸이 정말 편해진다.
역시 곰곰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내가 이유식을 계속 만드는 궁극적인 이유는 조금 특별했다.
결혼 전이나 후나 나는 요리에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다. 가까운 친정이나 시댁에서 감사하게도 늘 국이며 반찬들을 넘치게 주셨고, 부지런한 남편이 장을 봐 이런저런 요리를 만들어주면 넙죽넙죽 먹고는 설거지나 했으며, 기분이 내킬 때면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당연히 부엌살림이 뭐가 어디에 있는지, 냉장고에 어떤 식재료나 반찬이 남아 있는지도 잘 몰랐고, 애초에 내가 못하는 영역이라 생각하니 딱히 시도해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랬던 내가 아기가 100일이 되기도 전에 이유식 책을 샀다. 익숙하지 않은 육아에 매일 좌절하며 각종 육아 책을 뒤적이던 때였다. 도대체 이유식이란 것이 무엇인지,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 건지, 먹이면 안 되는 음식은 뭐가 있는지 등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는 것이 스스로 너무 불안했다. 이유식을 만들든 사든 기본적인 지식은 알고 보자라는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
요리라고는 전혀 해본 적 없는 소위 '요똥(요리 똥손)'이었기 때문에, 필요한 부분만 찾아 읽는 요령도 피울 수가 없었다. 그저 시험 공부 하듯이 각종 주의사항을 형광펜으로 밑줄 치고, 식단표를 오리고, 레시피를 한 줄 한 줄 꼼꼼하게 읽어나갔다. 한 권으로도 부족하다고 느껴 책 세 권을 번갈아 읽으며 매일 밤 불안한 마음을 다스렸다.
이유식 초기의 미음은많은 엄마들이 직접 만든다고 했다. 조리법도 간단하고, 하루에 한 끼만 먹이면 되기 때문이다. 레시피라고 하기도 민망할 만큼 쉬운 쌀미음 조리법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고는 '이 정도라면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마음, 그리고 잘 못 하겠으면 언제든지 그만두겠다는 마음으로 쌀가루와 각종 조리 도구들을 주문했다.
그렇게 온갖 부산을 떨며 만든 쌀미음을 아기가 처음부터 잘 먹어주었기에, 그다음으로 각종 재료의 추가가 이어졌다. 유모차를 밀고 동네 정육점에 가서 한우를 샀고, 유기농 가게에서 브로콜리와 청경채를 고르며 비싼 가격에 놀랐다. 생전 처음 사본 단호박이 생각보다 너무 단단해 남편의 도움을 받아 겨우 썰었고, 닭안심의 힘줄을 긁어내다 손이 베일 뻔했다. 고구마를 찌다가 냄비를 다 태워먹기도 하고, 비트를 썰자 나오는 새빨간 물에 놀라기도 했다. 케일을 가리키며 아욱이 맞는지 물어보고, 연근을 찾아 동네 가게를 다 돌아다니다가 지금은 철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모든 일들이 힘들지만은 않았다. 출산 후 약해진 손목으로 죽이 눋지 않게 계속 저은 탓에 밤만 되면 통증으로 끙끙 앓았지만 기분은 좋았다. 딱 마음에 드는 질감과 입자로 완성되어 용기에 가지런히 담긴 이유식들을 보면서 어디 올릴 것도 아닌 사진을 그렇게 찍어 댔다. 식단표에서 새로운 재료를 보면 이번엔 어떻게 손질을 하고 남은 재료로는 무슨 요리를 할지 묘한 설렘이 생겼다.
남편: 여보, 힘들면 이제 그만 사 먹이자. 난 사 먹이는 것도 괜찮아.
나: 아니야. 힘들긴 한데, 뿌듯해. 아기가 잘 먹어서 뿌듯하기도 한데, 좀 다른 뿌듯함 같아.
남편: 뭐가 뿌듯해?
나: 내가 뭔가 발전하는 것 같아. 못하던 일들을 하나씩 할 수 있게 됐잖아.
그랬다. 이유식을 만들면서 나는 그새 까맣게 잊고 있던 성취감, 무언가를 해냈을 때의 기쁨이라는 감정을 다시 느끼고 있었다. 그동안 일을 쉬면서 느끼는 무료함을 아기와의 놀이, 외출, 문센 수업 등으로 채워왔지만, 바로 눈에 보이는 결과물이 없어 아쉬웠다. 그런데 이유식은 만드는 대로 결과물이 나왔다. 그렇게 아예 하지 못하는 영역이라 여겼던 요리를 조금씩이나마 해내고 직접 만든 요리를 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유식의 달인'이 되었다거나, '요리의 달인'이 되었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여전히 시도해보지 못한 재료와 요리가 셀 수 없이 많고, 재료 손질이나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요리책과 검색용 스마트폰부터 식탁에 펼쳐놓아야 한다. 아직도 채썰기가 어려워 아슬아슬한 칼질로 당근을 썰고, 남은 재료를 아무렇게나 때려 넣고 끓인 밍밍한 어묵탕을 저녁으로 차려내기도 한다.
그래서 나에게 이유식이란 '나만의 소소한 도전'이다. 부지런하고 솜씨 좋은 엄마들에 비해 그렇게 열심히 살지도 그렇게 최선을 다하지도 않는 부족한 엄마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요리에 도전하면서 더 나은 엄마가 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는 엄마. 그게 이유식을 직접 만들기 시작한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가 되고 싶었던 엄마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나만의 소소한 '육아 도전'을 해나가고 싶다.
그리고 나의 이 모든 도전을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며 도와주는 남편과, 엄마의 어떤 이유식이든 (아직까지는) 다 잘 먹어주는 아기를 위해 언젠가 꼭 나만의 레시피로 만든 근사하고 따뜻한 밥상을 차려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