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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이 Dec 18. 2023

'그냥 나'로 돌아갈 시간

복직을 앞두고

최근 복직을 신청하는 서류를 학교에 제출했다. 별다른 일이 없다면 휴직 직전에 근무했던 학교로 돌아가서, 내년 3월부터 다시 일하게 된다.




1년의 육아 휴직을 시작하고 처음 반년 정도는 얼른 복직을 하고 싶었다. 아기는 사랑스럽지만 육아는 대체로 답답했다. 지금 바로 다시 학교로 돌아가도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 휴직 직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 큰 보람을 느끼며 일했고, 그래서 아쉬운 마음을 한껏 안고 휴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육아 휴직이 계속될수록, 복직에 대한 자신감은 점점 사라졌다. 매일 수업 고민으로 채워졌던 일상은 이제 아기와 집안일로 가득 차서, 다시 교단에 서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두려웠다. 물론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그때로 다시 돌아가더라도 또 휴직을 할 것이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교사로서의 자아가 보이지 않는 내 모습이 이 갈수록 불안했다.


게다가 아기를 돌보는 일은 익숙해져도 익숙해지는 게 아니었다. 아기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면서 분유를 떼고 우유를 먹게 한다든가, 숟가락질을 연습시킨다든가, 이유식의 질감을 올려준다든가 등 엄마로서 해내야 하는 새로운 과제들이 끊임없이 주어졌다. 잘해나가는 것 같다가도 아기의 울음 한 번에 무너져 내리곤 했다. 결국 휴직의 하반기 어느 시점에서, 나는 교사로서의 자신감도 없고, 엄마로서의 자신감도 없는, 그냥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아도 학교도 전부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대로 돌아가기는 겁이 나고, 그렇다고 더 쉴 수도 없는 사정이었다. 쉽게 마음을 다잡지 못하던 중, 같이 근무했던 동료 선생님을 만났다.


 나와 신규 시절을 함께 보냈고, 나보다 먼저 육아 휴직에 최근 복직까지 한 선생님은 만나자는 나의 말에 한달음에 와주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 앞에서 나는 요즘의 내 고민을 술술 말하 있다. 도망치듯 복직하지만 그것조차 자신이 없다는 내 마음을 한참 들어주던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쌤, 우리 같이 근무했을 때 쌤 진짜 멋있었어요!



그 말을 듣고 며칠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멋있었다고? 내가 뭘 했지? 나는 어떤 사람이었지? 기억을 더듬어 보니 나는 학교에서 나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잘하지도, 그렇게 열심히 하지도 않지만, 나만의 소소한 도전을 즐기는 사람


아! 그러니까 나는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리고 '스스로 인정할 만큼' 열심히 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루하루 주어진 수업과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에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그러면서 여력이 되면 조금씩 새로운 걸 시도해 보길 좋아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나는 그런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복직을 앞두고 마음이 다급해져서 내가 대단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이상한 부담감을 안고 있었나 보다.




휴직을 하는 동안 수업 방식이나 학습지 만드는 법을 잊어버린 게 문제가 아니었다. 어떤 마음으로 10년 가까이 교직에 임해왔는지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잘하는 나'가 아니라 '그냥 나'로 다시 돌아가면 되는 거였다. 나는 원래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었으니까. 창한 성과는 없지만, 매일의 수업과 눈앞의 아이들에게 진심을 다해왔다. 다시 그렇게 하면 된다. 너무 잘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 사람도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내년 3월이 오면 '잘하는 나'가 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나'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다시 찾야겠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부터 천천히 준비해야겠다.


그리고... 벌써 몇 번이나 스스로에게 되뇌었던 말이지만, 육아도 너무 잘하지 않아도 된다. '잘하는 엄마'가 아니라 '그냥 엄마'도 멋진 사람이니까. 엄마가 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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