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탠포드는 3학기 제이다. 션의 첫 학기는 적응 & 탐색을 했다면 두 번째 학기는 공부, 리서치, 사람 만나기 등 하고 싶었던 것을 마음껏 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조금이라도 했던 운동을 안 하게 되어 이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오랜 세월 션을 탐구해 본 결과로는 '운동'에 국한한 이야기만을 하는 것 같지 않아서 이참에 여러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렇다 보니 이번 션과의 통화는 부모로서 해 준 말도 있지만 사회생활을 오래 해 본 인생 선배로 해 준 말이 더 많다. 그동안 엄마 말 잘도 잘라먹더니, 이번 대화는 션에게 도움이 되었는지 아주 좋아했다.
션 : 엄마가 이전에 너무 열심히 힘들게 하는 것도 트라우마가 될 수 있다고 했잖아. 내가 그런 거 같아. 지난 학기 진짜 열심히 했거든. 그랬더니 이번 학기는 그 좋아하던 운동을 안 하게 되네.
* 참고: 이전에 엘리자베스 스탠리의 <최악을 극복하는 힘(클릭)>을 읽고 말해 준 내용을 기억하고 말하는 듯했다. 트라우마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중독인 사람들은 이 책 읽어보며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삼으면 좋을 책이다. (내가 일중독 스타일이다 보니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리뷰라도 읽어보시길 )
깡지 : 열심히 해서 생긴 트라우마는 좀 다른 거 같아. 우리는 그 정도는 아니고 열심히 했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한 상태를 오해했을 가능성이 더 커.
엄마 경우 빗대어 보면 프로젝트 하는 중에는 일에만 올인하면서, 프로젝트 끝나고 나면 이거저거 해야지 하는데 막상 프로젝트 끝내고 나서 시간이 나면 안 하게 되더라고. 그러다 보면 다시 프로젝트 시작하고 끝나면 하려고 했던 거 안 하고 또 프로젝트 시작하고. 무한 반복이었어.
사실 프로젝트를 마쳤을 때 하고 싶었던 것을 안 하게 된 건, 그동안 바쁘고 힘들게 일했으니까 이제는 몸이 휴식을 원한 거였는데 이해를 못 한 거였어. 내 몸을 이해 못 했으니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엄마 성격에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하지?' '왜 이렇게 게으르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프로젝트 마치고 하지 말고 어차피 바쁜 거 프로젝트 하는 동안 뭐라도 하나씩 끼워 넣어서 했어. 프로젝트 하는 중에는 일만 하는 게 아니라 '무언가 하고 있구나' 만으로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충분히 할 시간이 없더라도 은근 내가 기특한 거야. 프로젝트 마칠 무렵이 되면 했던 것들이 어느 정도 적응이 되니 그때 비중을 늘여서 할 수 있어서 실천하기가 훨씬 나아졌어.
션 : 음. 그런가. 그런데 친구들이 나보고 이전과 바뀌었다는 거야. 내가 생각해도 이전에는 하루라도 운동 안 하면 안 되었고 친구들에게도 운동 이야기 막 했는데, 지금은 안 해도 무덤덤해졌어. 운동을 안 해도 별로 신경이 안 쓰여.
깡지 : 혹시 복근도 사라졌냐
션 : ㅎㅎ.아직 남아있어.
깡지 : 그건 엄마가 보기에는 너의 우선순위가 바뀌어서 인 것 같아.
게을러진 것도 아니고, 의지가 약해진 것도 아니고, 네가 변한 것도 아니야.
고등학생 때까지는 공부에서는 네가 충분히 할만했기 때문에 운동을 할 여유가 있었던 거고, 운동이 너에게 1순위였잖아. 무조건 운동부터 하고 공부를 하건 놀건 자건 했잖아.
지금은 너의 우선순위가 공부가 1순위가 되어서 그런 거지. 네가 변한 게 아니라 넌 변함없이 우선순위에 따라 열심히 살고 있는 거야. 이전에는 운동이 우선순위가 높았으니까 내일이 시험이라고 해도 운동을 꼭 했다면 지난 학기까지는 공부가 우선순위가 높아졌으니 그걸 미친 듯이 하고 있는 거지. 그러면서 괴로워하는 게 아니라 재미있다고 난리였잖아.
오히려 엄마가 보기에는 네가 바뀐 게 아니라 (우선순위에 따라 행동하는) 너의 기질이 더 강해진 거 같던데?
지난 학기까지 네가 하는 말 들어보면 목표 같은 게 있었잖아. 그걸 해 내려다보니 너 시간을 다 때려 넣은 거고 거기 운동이 껴 들어갈 틈이 없었던 거지.
그리고 너 성격이 뭐든 하면 또 열심히 하잖아. 너 자신이 그걸 잘 알고 한번 시작하면 멈추지도 않으니 시작을 미루고 있는 걸로 보여. 운동을 하던 습관을 잠시 잃어버린 것이니까 다시 하면 잘 할거 같아.
게다가 넌 이미 방법을 알잖아.
운동도 처음 시작할 때 오죽 열심히 했냐. 어떻게 하면 되는지 이미 방법 알고 있고,
공부도 지난 학기에 열심히 해서 방법도 알고 어느 정도 궤도에도 올랐고.
얼마나 좋아. 각각 다 방법 아니까 이제부터는 두 가지 다 할 때 적응만 하고 습관만 잡으면 될 거 같은데?
우선순위는 공부에 두고 있는 것 같으니 운동을 젖히지 말고, 운동을 조금씩 병행해야 공부를 할 때 시너지 효과 날 거야.
공부만 하는 건 엄마도 바라지 않아. 길게 보면 체력, 정신력이거든. 그냥 냅다 공부만 하면 정신력은 있을지 몰라도 체력이 발목 잡을 수 있어. 그리고 몸을 써야 머리도 더 잘 돌아가. 잠도 자고 휴식도 취하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
션 : 엄마 말 맞는 거 같아. 사실 운동하고 싶기도 한데, 한동안 안 하다 보니 운동 시작하면 초반에 몸이 엄청 피곤하잖아. 그러면 또 공부에 방해가 될 거 같거든.
깡지 : 그렇지. 그러니까 다른 걸 조정해야지. 엄마도 운동 쉬었다 다시 했다 반복해 보니 운동 시작하고 2주일 정도는 더 피곤하더라고. 그런데 그 이후는 적응이 돼서 괜찮더라. 새로운 거 하나 시작할 때는 뭔가 조정해서 스케줄 맞춰서 잘 끼워 넣으면 할 수 있을 거야.
엄마도 하나씩 껴 넣다 보니 지금 일하면서 독서에, 리뷰에, 운동에, 그림 그리기에, 여행/전시장 구경, 블로깅까지 다 하게 되더라고. 엄마도 우선순위 한 가지만 하고 곁다리로 새로운 거 하나씩 해 본 건데 시간 지나니까 익숙해져서 이것저것 다 하게 되는 거 같아.
사실 이게 다 션 덕분이야. 특히 운동.
네가 하는 거 보고 '나도 해 볼까' 하고 시작해서 바디프로필도 찍어보고 지금은 마라톤도 10km 지만 신청한 거거든. 네가 하는 거 보니 엄마도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션은 아기 때부터 정말 몸을 쓰지 않았고, 나 역시 심각한 몸치로 평생을 살았던 사람들이다. 우리 모자가 운동을 하는 건 물고기가 날아다니는 것에 비유해도 될 정도)
션 : 응! 친구들 동생들도 그러더라. 특히 동생(후배)들은 막 연락 와서 같이 만나서 운동같이 해 보고 같이 밥 먹으러 이야기해 보고 싶다고 그래. 나한데 배우고 싶은 게 많다고.
깡지 : 그래, 넌 뭐든 시작하면 열심히 진심으로 하니 잘할 수 있을 거야.
그게 얼마나 고될지 알아서 그런 거지 시작만 하면 또 다 해낼걸?
운동이나 공부나 다 해 본 거라서 둘 다 충분히 잘 해 낼 수 있을 거야.
션 : 그래! 이런 격려 오랜만이네. 이런 말 듣고 싶었어. 크니까 칭찬, 격려 이런 게 없더라고.
깡지 : 그렇지.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하면 칭찬은 사라져. 그러니까 셀프 칭찬해야 해.
남의 시선이나 남의 눈에 멋있어 보이고 근사하게 보이고 잘하게 보이는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스스로에게 '나는 잘하고 있고 멋있다!' 이렇게 칭찬해야 해.
션 : 아, 그래서 외적 칭찬에 연연하지 말고 내면에서 찾으라는 거구나.
깡지 : 그렇지, 나 스스로 부끄러움 없이 해 내고, 스스로 칭찬하고 만족해야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지.
너의 반응은 정상이고 잘 살고 있어.
교육제도를 보면 초, 중, 고로 바뀌잖아. 이때 환경만 바뀌는 게 아니라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확 바뀌어.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뇌 발달도 안되어서 긴 목표 잡기 힘들어해. 그래서 단기 목표 주거나 눈앞의 미션 줘서 이루게 성취감느끼게 하고 이걸 계속 유지시켜주기 위해서 칭찬, 보상 시스템 잘 되어 있는 거지.
대학생부터는 장기전이야. 이제부터는 10년, 20년, 30년 후 결실 보는 일이 많아. 하고 안 하고도 다 자기 몫이고 자기 책임이야. 이제 부모나 선생님이 뭘 시키는 것도 없고 다들 남에게 별 신경도 안 써.
뭐든 좋으니, 숨 고르기 해 가면서 계속해 나가면 돼. 고등학생 때까지와 달리 결실이 바로바로 오지 않으니 거기서 지치면 포기하게 되니까 이때 필요한 건 지치지 않는 마음이거든.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뭐든 해 봐. 중간에 하는 일들이 서로 따로 노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면 거미줄같이 어느 날 딱 엮이는 날이 오게 돼. 그때부터 날개 달게 되는데 생각보다 그 기간이 길어.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그리고 방금 엄마가 말한 것도 깨달아 가는 중 같네. 그냥 하던 대로 하면 하면 돼.
지금 너무 열심히 잘 살고 있는데 운동을 이전같이 안 한다고 내가 변했나 의지가 약해졌나다 이런 생각 하지 말고.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의지기 더 강해졌어. 단지 우선순위에 따랐을 뿐이고, 새로 생긴 1순위를 얼마나 잘할지 온 신경이 집중되어서 거기 올인해서 그런 거니까 운동은 이전처럼 과하게 하지 말고 습관만 잘 집어넣어.
엄마가 해 보니 1순위가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습관 새로 만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2주 정도는 매일 한다' 더라. 이 기간에 잠시 다른 걸 조절해서 빼고.
두 번째 중요한 건, 계속하던 것도 처음 쉴 때는 괜찮으나 '두 번째 쉴 때는 이게 바로 새로운 습관이 된다'야.
뇌는 기본적으로 게으른 것을 좋아해서 2주 내내 무언가를 해도 한번 쉬고 두 번 쉬면, 겨우 두 번 쉰 게 바로 습관이 되어 버리더라. 그것만 이겨내면 그 이후는 그동안 한 게 아까워서라도 계속하게 되는 거 같아.